지상의 노래

지상의 노래 ㅣ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1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강영호가 죽은 뒤, 동생 강상호는 형이 한국의 오지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책을 출판하는 과정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원고는 모두 완성된 상태인데, 헤브론성이라고 불리는 천산수도원만큼은 메모 형태로만 남아 있다. 천산수도원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져 버린 미스터리한 곳이다. 강상호는 형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직접 수도원에 찾아간다. 그렇게 출간된 책은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묻힌다. 후는 헤브론성이 있는 산 아래에 사는 남자아이다. 누나 연희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박영민을 향한 복수심으로 칼을 휘두른 뒤, 아버지의 말에 따라 수도원에 들어간다. 교회사 강사인 차동연은 헤브론성을 취재하기 위해 재생요양원의 장을 만난다.

이승우는 『캉탕』에서처럼 특유의 붕 떠 있는 오묘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나간다. 읽으면서 문득 <미션>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렴풋하지만, 영화를 본 당시 나는 어느 쪽에 감화되어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답답하고 폭력적인 광경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색으로도 물들지 않은 원주민에게 구태여 종교를 전파하려는 신부도, 구태여 그곳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침략자도 반갑지 않았다. 『지상의 노래』는 어떤 사물 혹은 사람의 속성이 이용하는 이에 따라 어떻게 변질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예컨대 헤브론성은 후에게는 어떤 범죄든 저지르고 숨을 수 있는 도피처이며, 장군에게는 한정효가 세상에 풀려나는 것을 막는 공간이다. 누군가에게 전부인 공간을 자기 색으로 물들여 이용하려는 인간의 이기심이 더부룩했다. 이 이기심이 사람을 향하면 더욱 끔찍해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죄악은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지경이다. 연희와 다말은 어쩌면 수도원과 흡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자신의 의지는 완전히 배제당한 채 삼촌과 박 중위, 압살론과 암논 사이에서 사랑을 가장한 욕구 분출 대상으로만 소비되고 굴려진다. 후회하는 이가 선택하는 건 벽서다. 성경을 쓰고 읽으며 거울 삼아 자신을 바라본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히 아름답지 않았기에 읽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성범죄와 여성 형제를 향한 부적절한 감정. 소재의 채택만으로도 불편한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꾸 칭해지니 화가 났다. 더군다나 참회하지 않는다면 정말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참회로 죄가 사해지는 것도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그들이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성경과 자기 반성을 이용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대적 배경과의 연결성이 부자연스러워 아쉬움도 남았다. 이승우의 책은 표현이 어지럽다. 대체로 같은 내용의 문장을 주술 관계를 바꾸는 등 조금씩 변형해 여러 번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심리를 빙빙 돌아 쿡 찌르는 식이다. 그런 반복이 싫지만은 않다. 오히려 조금 더 읽어 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지상의 노래』는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서포터즈로서 만나는 마지막 책이었다. 신기하게도 미션 도서였던 세 권 모두가 결국 ‘쓰기’라는 한 점을 관통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도서가 들려 주는 글 이야기 덕분에 쓰는 일에 관한 애정이 더해졌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