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였을 때
민카 켄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굴 도둑>이라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제목처럼 주인공 세바스티앙은 타인의 얼굴을 훔치고, 그 사람의 삶을 모방하는 데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느낀다. 그는 어느 순간 그런 삶을 끝내고자 다짐한다. 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부유한 바이올리니스트 앙리로 다시 한 번 살게 된다. 영화의 말미에 세바스티앙은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타인으로 사는 와중에 등한시하던 자기 삶의 귀중함을 깨닫고, 자신은 알지 못했던 삶의 단면을 타인이 알아보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의 ‘가짜 나’는 도플갱어 개념과 다르다. 처음부터 같은 두 사람이 아니라, 단어만 들어도 섬찟한 도용과 사칭이다. 『내가 너였을 때』는 그와 결을 같이하는 소설이다.

브리엔 두그레이는 이 년 전 괴한에게 습격당한 뒤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녀의 집에는 의사 나이얼 엠벌린이 세들어 살고 있다. 사고 뒤로 친구들과 모두 연락이 끊긴 브리엔에게 나이얼은 유일한 친구이다. 그러던 어느 날 HPG 부동산그룹에서 브리엔 앞으로 열쇠가 동봉된 우편을 보낸다. 전화를 건 브리엔은 ‘당신이 원룸을 임대했다’는 답변을 받는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살고 있다고 직감한 브리엔은 주변에 도움을 청하려 한다. 하지만 경찰은 금전적 피해가 없어 받아 주지 않고, 사립탐정은 브리엔이 미쳤다고 말한다. 결국 브리엔은 혼자 해결하기 위해 직접 원룸을 찾아간다. 원룸으로 들어온 여자는 브리엔과 차, 머리 모양, 가방 등 외관뿐만 아니라 음악 취향까지 똑같다.






저자는 과거의 폭행이라는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을 언급하는 동시에 새로운 사건을 발생시킨다. <메멘토>처럼 주인공의 기억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아 둔 상태에서, 온통 수상해 보이는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의 기억과 주변인의 악의, 둘 중 어느 것이 정답일지 간파하고픈 마음에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크게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과연 우리는 겉모습만으로 상대의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와 “타인의 것으로 이룩한 행복은 얼마나 가치 있는가?”이다. 사실 전자는 스릴러 장르에서 주로 대두되는 질문이기에 그다지 특별할 것 없다. 그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후자이다. 『내가 너였을 때』는 두 번째 질문에 가스라이팅 개념을 보다 직접적으로 결합시켰다. 더불어 후반부로 들어서면서는 주체적 여성 서사를 넘어 여성 캐릭터 간의 연개로까지 이쓸고 나가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다만 후반부의 여러 부분에서 개연성이 떨어지는 등 치밀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스릴러는 현실과 가까울수록 빛을 발하는 대신, 현실성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 변하는 몇 가지는 있다. 나 역시 스스로 변했다는 생각에 놀랄 때가 있다. 그중 하나는 과정과 결과에 관한 입장이다. 과정을 중시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의 나는 결과를 중시한다. 결과 중심 사회에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고 탓할 수는 있어도, 변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타인의 것으로 행복을 이룩하고자 했던 이의 모습에서 결과 중심적 사고에 다시 한 번 경계심을 품었다. 그와 더불어 아무리 노력해도 줄어들지 않는 사회 격차와 불합리한 구조에 관해서도 생각해 본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상대에게 다시 가스라이팅의 화살을 돌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타인의 인생을 망가뜨리고자 했던 이에게 동정심이 든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출발점이 다른 이들은 그들뿐만이 아니기에 쓰다. 두 여성의 행보 덕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인생에 더욱 큰 애틋함이 느껴진다. 킬링 타임용으로 딱 좋을 줄 알았던 『내가 너였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는 소설이었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