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 새하얀 밤을 견디게 해준 내 인생의 그림, 화가 그리고 예술에 관하여
이세라 지음 / 나무의철학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은 그 주제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에서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별것 아닌 듯 느껴졌던 책이 상황이 맞물릴 때나 힘들 때에는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다시 다가오는 경험은 나도 여러 번 했다. 뉴스 기사를 읽은 후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의 나열일 뿐, 어떤 특별한 감정을 담고 있지 않기에 극히 드물지 않나 싶다.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자신이 위로를 받았던 명화를 소개하는 에세이이다. 칼럼처럼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그와 접점이 있는 화가나 그림을 연결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감상을 나누는 방식이다.

나는 대개 역사나 미술처럼 스스로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야의 책을 좋아한다. 하지만 바쁠 때에는 가장 선호하지 않는 종류이다. 급하게 읽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소설을 읽을 때에도 독서 노트에 감상을 적거나 정말 좋았던 부분은 필사를 하기에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지만, 지식을 얻기 위한 목적의 독서는 더욱 그렇다. 나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바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는 꽤 추천할 만하다. 한 작품이나 화가에 관해 깊은 내용을 꾹꾹 눌러담은 전문적인 책은 아니다. 대신 다양한 작가들과 관련된 일화나 정보를 ‘1분 시사 상식’처럼 얕게 다루어 준다. 나는 미술을 좋아하면서도 지식이 많지 않아 우선 화가 라인업이 마음에 들었다. 잘 알려진 화가들이 많지 않아 얼른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아직 명화가 어려운 사람, 차곡차곡 얕은 지식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다만 미술 사이사이에 영화가 끼어 있어 구성상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기에 2장 첫 글에서 <브루클린>이 소개되었을 때 조금 당황하면서도 ‘2장은 영화를 소개하는구나.’ 하고 기대했는데, 이어지는 글은 다시 그림이었고, 그림 에세이 몇 편 뒤에 다시 영화 에세이가 등장하는 식이라 혼란스러웠다. 책에 소개된 영화 자체는 취향에 맞아 좋았다. 차라리 영화에 관련된 글들은 수가 비교적 적더라도 따로 모아 분리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책을 읽으면서는 무엇보다 여성 위주인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 전쟁 기념관에 관한 의견이 흥미로웠다. 토레스의 작품 이야기를 읽을 때에는 ‘퀴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받는 세상이 사라졌으면 하는 저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다. 삼백 쪽이 조금 넘는 종이 속에 담긴 화가들의 인생이 모두 사랑스러웠지만, 그중에서도 르누아르와 소로야의 그림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렸다. 행복한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짧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울이 찾아오면 떨쳐내지 못하고 자주 가라앉는다. 이유 없는 우울은 몸을 바삐 움직이면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 있는 우울에 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세 시간 남짓한 독서 뒤에 예상치 못한 답변을 얻었다. 미술보다 인생에 관한 정보를 얻게 되어 조금 당혹스러우면서도 홀가분하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