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랜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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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슈든 초점을 잘못 잡으면 변질되기 쉽다. 페미니즘이 인터넷에서 이따금 과열되는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가 아니다. 그 자체로 남녀 평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지 않음을 주장한다는 입장이다. 이 맥락에서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일부 억압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핀트를 잡지 못하고 단순히 남성 반대 혹은 혐오로, 여성이 남성보다 월등하다는 입장으로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는 시작된다. 단순히 페미니즘이라는 운동을 이해하는 데에서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올랜도』는 성별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롯이 “올랜도”라는 인간의 생애와 내면에 집중하는 특징을 보이는 소설이다.

  올랜도는 잘생긴 귀족 청년이다. 가벼운 사랑만 했던 그는 모스크바 여인 사샤와 사랑에 빠진 뒤, 레이디 마거릿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함께 도피할 준비를 한다. 그러나 약속 장소에 사샤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일로 큰 상처를 받은 후에는 명성을 얻기 위해 전력으로 글을 쓴다. 유명 작가 닉 그린을 초청해 대접하고 자신의 작품을 보여 주지만, 그린은 집에 가자마자 올랜도를 풍자하는 시를 쓴다. 이 일로 낙담한 올랜도는 인간과 명성에 회의를 느끼고, 앞으로는 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이후 해리엇 그리젤다라는 대공 부인이 올랜도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는 그녀를 피해 터키로 떠난다. 그곳에서 공작 직위를 수여받던 날 원주민들이 난동을 일으킨다. 소동을 겪은 뒤 혼수상태에 빠진 듯 오래 자고 일어난 올랜도는 여성이 되어 있다. 그녀는 집시를 따라 떠나 행복을 만끽한다. 그러나 곧 자신과 그들의 차이를 깨닫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그녀는 문득 자신이 요구했던 여성성과 여성의 조건을 이제는 자신이 감내해야 함을 깨닫는다.








  여성과 남성은 큰 차이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리 주목할 만한 부분은 아닐지도 모른다. 올랜도의 성별이 바뀐다는 사실은 책의 중심이 되는 큰 사건인데,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하인들마저 간단한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성 전환을 다룬 대다수의 콘텐츠에서 새로 생긴 부위를 만져 본 뒤 사실을 깨닫게 된다거나, 주변에 납득시키기 위해 애쓴다는 내용을 의무 사항처럼 넣는 데에 비하면 특이한 지점이다. 여전히 내면은 다채로운 올랜도인 그녀의 모습을 통해 ‘성별이 뭐가 그리 중요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 느껴졌다. 또한 소설 속에는 올랜도에게 큰 좌절을 맛보게 했던 이가 둘 있다. 첫째는 그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던 여성 사샤, 둘째는 풍자 시를 쓰고 그의 문학을 유린했던 남성 닉 그린이다. 이들이 상처를 준 것은 여성이거나 남성이라서가 아니다. 한때 올랜도를 매혹하려 했던 해리엇 그리젤다의 정체성도 그렇다. 쉘머딘과 올랜도가 서로의 성격을 두고 남성이 맞는지, 여성이 맞는지 묻는 부분에서는 생각에 더욱 힘이 실렸다.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더불어 예술을 떠올렸다. 이 소설에서도 역시 버지니아 울프의 단골 주제인 글쓰기와 인생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올랜도가 처음 인정받기 위해 썼던 글은 닉 그린에게 풍자당한다. 이 일을 계기로 문체가 크게 바뀌고, “화려하게 장식된 두루마리 족자” 대신 “「참나무, 한 수의 시」라는 제목이 붙여진 한 권의 낡은 공책”에 글을 쓰게 된다. 삼백 년 뒤 재회한 닉 그린에게 “현대 정신의 흔적이 없다”며 출판 권유를 받는 원고이다. 어떤 목적을 지니지 않고, 내려놓은 채 쓰는 글을 쓰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다잡았다. 또한 닉 그린은 “책은 300년 전에만 쓰인 것이면 그 책에 관해 최고의 찬사를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태도에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책이든 영화든, 고전 명작이라는 평을 듣고 나면 나도 모르게 인상적인 부분을 애써 찾아가면서 읽지는 않았던가. 지속적으로 고심하고 경계하는 부분이기에 눈길이 가는 부분이었다. 사교계의 허와 실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놓지 못하는 올랜도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까지 접한 울프의 글 중 페미니즘 색채를 가장 강하게 띠는 소설이었다. 게다가 다소 환상적이다. 덕분에 쉬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깊어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채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도 글쓰기에 갈망을 느껴 돌아온 올랜도의 삶을 곱씹어 본다. 더불어 몇 번의 좌절에도 굴하지 않고 끝없이 썼던, 어떤 상황에서든 원고를 품에 지니고 다녔던 모습을. 무언가 열성을 다해 하다 보면 초심과 사뭇 다른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가 있다. 특히 개방된 공간인 SNS에 업로드하면서는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 것 같다. 기왕 쓰는 글, 다른 사람들도 좋아해 줬으면 하는 기대감. 하지만 그런 글을 쓰기 시작하면 도전하기 어려워진다. 반대 의견인 사람에게 비판받을까 봐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세간의 평가가 부정적이어도 끝없이 도전했던 사람들에게 새삼스러운 애정이 솟았다. 남을 만족시키기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자는 지향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올랜도』는 버지니아 울프가 마냥 어렵게만 느껴지는 이에게도, 예술의 목적성과 정체성에서 갈피를 잃고 고민하는 이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명성이나 영광 같은 것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않는다. 차세대들은 나나 포프 씨에 대하여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시대’란 정녕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란 무엇이란 말인가?”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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