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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넌 도일 -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20
이다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창조자와 창조물의 관계는 묘하다. 작가의 인터뷰를 읽을 때면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구절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만화가가 인기 많은 캐릭터의 죽음을 그렸다가 항의 연락을 받은 뒤 생명에 진지한 위협을 느껴 번복하는 일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죽음에 대해 독자들이 앞서 협박 편지를 보내는 일도 있다. 그렇듯 잘 만들어진 캐릭터는 작가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주지만, 때로 마음대로 행동해 애먹이거나 나아가 작가의 삶 전체를 흔들기도 한다. 캐릭터는 어떻든 소유물일 줄만 알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작가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 있기도 한 것이다. 클래식 클라우드의 20번째 주인공은 자신의 캐릭터 셜록 홈즈를 한 번 죽였다가 살린 『코넌 도일』이다. 나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한 권도 읽지 않았다. 그저 유명한 탐정이고, 왓슨과 한 쌍이며, 죽었다가 부활했다더라. 여기까지가 책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있던 기본적인 정보였다.
런던에는 셜록 홈즈와 관련된 장소가 많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런던 시내 거의 전 지역을 무대로 삼은 탓이다. 특히 셜록 홈즈 박물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서 들어간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작가인 코넌 도일의 인기는 ‘안습’이다. 사람들은 그를 셜록 홈즈를 만날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의 부친상에는 관심 없는 반면, 홈즈의 사망에는 맹렬히 반기를 들며 비난한다. “셜록 홈즈에게 시달렸다”는 도일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에든버러에 위치한다는 ‘코넌 도일’ 펍에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어렸을 적부터 코넌 도일에게는 이야기를 잘하는 재주가 있었지만,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몇 번 거절을 맛본 뒤에 마침내 셜록 홈즈와 왓슨을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된다.
셜록 홈즈의 인기가 특히 대단히 다가온 이유는 영상 미디어의 힘을 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이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이미 셜록 홈즈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내 세대에 가장 인기 있다고 할 수 있는 캐릭터는 해리포터 삼총사인데, 물론 소설도 대단히 사랑받았지만 그들에게 더욱 힘을 끼얹어 준 것은 영화 아니었던가. 실체화된 적 없는 캐릭터가 그토록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런가 하면 셜록 홈즈가 아니라 코넌 도일이 이 책의 주인공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듯 코넌 도일의 이야기를 전개한다. 『정감록』처럼 범죄와 잡히지 않는 범인이 판치는 시대적 배경과 셜록 홈즈의 등장이 맞물렸던 점, 한 회에 끝내는 데에 승부를 걸었던 연재 기술, 심령술에 심취했던 그의 말년 등. 특히 여성과 관련해서는 관대한 시선을 보내지 않는 이다혜의 시선이 좋았다. 스릴러 분야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그녀가 인정한 걸작,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에도 관심이 생겼다.
과거에 범접할 수 없는 인기를 끌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처음에는 내가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며 새삼스러운 감상에 젖고, 조금 더 빠져들면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워진다. 그렇게 고무되어 있는 동안 동년배의 심드렁한 반응을 목격한다. 이 과정에서 문득 나 역시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거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서글퍼진다. 다음 세대에는 그들이 더더욱 잊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서라도 자꾸 과거에 실재했던 이들의 흔적을 찾게 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예술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생애 전반을 아우른다는 점이 곱씹을수록 큰 장점이다. 이다혜의 첨예한 시선 끝에서 코넌 도일의 허와 실을 파헤치고, 그 지식을 기반으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시리즈 『페르메이르』가 어서 읽고 싶어져, 가지런히 놓여 있던 책을 뽑아 첫 장에 북마크를 꽂아 두었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