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스터 북 by 에곤 쉴레 아트 포스터 시리즈
에곤 실레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에곤 실레에 관한 영화를 봤다. <에곤 실레: 욕망이 그린 그림>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예술가의 이기적 태도와 사랑이 퍽 인상적이었다. 다소 특이한 부분에 매료되는 버릇이 있는 나는 한동안 그의 일생에 매료되어 그림을 찾아봤었다. 얼마 전에는 그의 에세이도 읽었다. 말하자면 스며들듯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된 케이스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와도 꽤 연이 닿아 있다. 스티커북으로 완성한 그의 작품 <키스>가 집에 있기 때문이다. 척 보기에도 복잡해 보이는 그림을 눈으로 계속 좇으며 핑글핑글 돌았으나 그만큼 화가의 고충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와 연결되어 있는 이 두 사람은 아르테 더 포스터 북이 이번 달에 선보이는 화가이다. 두 화가가 생전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덕에 더욱 애착이 생겼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클림트전은 몇 번 개최되었지만 에곤 실레 전시회는 개최된 적 없으므로 만나 보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에곤 실레의 작품에서 아무래도 가장 친근한 것은 <꽈리 열매가 있는 자화상>이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표지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품. 미술에 관심이 없어도 이 그림만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워낙 인기가 많으니 제쳐 두자고 생각하면서도 책을 열고서 홀린 듯 한참 바라봤는데, <헌신>과 <손을 덮고 있는 보라색 가운을 입은 젊은 남자> 역시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 <죽음과 소녀>가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레만의 독특한 색채가 담겨 있는 그림들로 가득해 다각도로 찬찬히 관찰했다. 에곤 실레는 신체의 어떤 부분도 쓸데없는 판타지로 미화하거나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 그 완성작에는 적당량의 혐오감과 애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는 확신이 든다. 야위거나 살찐 그들이 좋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은 에곤 실레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에곤 실레의 그림은 정적이고 바싹 마른 듯 보이지만, 클림트의 그림은 얼굴 부분만 사진을 잘라 붙인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눈빛과 살결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인상 때문이다. 대표작 <키스>와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에는 노란색이 지배적이다. 채도와 명도가 다른 노랑은 그의 캔버스 위에서 반짝거린다. 바라보고 있으면 노란색이 이렇게 다양하고 활기를 띠는 색상이었나 자문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처녀들>이다. ‘클림트=황금색’이라는 공식을 벗어나 다양한 색채로 장식한 점이 돋보였다. 뒤엉킨 처녀들의 모습이 역동적이다. 항상 옷이나 배경에 쓰인 도형들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건지 궁금했는데, <처녀들>의 옷에 그려진 도형들은 꼭 꽃이 핀 모습처럼 보였다.

  이들의 그림을 보며 예술과 외설에 관해 생각해 본다. ‘예술가’와 ‘빈곤’이 한 쌍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일반적인 노동이나 업무와 달리, 인정받지 못한 예술은 빈곤으로 직결되게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를 포기하고 원하는 예술을 할 것인지, 부를 택하고 예술가로서의 긍지를 버릴 것인지 택하는 일은 주된 번뇌로 등장한다. 가시적인 반응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일은 힘들다. 대부분의 화가나 작가들에게 큰 부담이겠지만 빈곤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생활에 타격까지 받았던 클림트와 실레에게는 더욱 무겁게 다가왔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인간성을 떠나 예술이라는 분야에는 언제나 선구자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앞서는 이가 없으면 신선하지 않은 답습만 계속되기에. 그래서 그들이 도전한 흔적에 자꾸 눈길을 주게 된다. 현대 미술을 받아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사진술의 발달로 예술이라는 분야에서 가품과 진품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아우라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났다. 연극이나 전시회를 직접 관람할 때면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이다. 하지만 때로,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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