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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원 기행 - 역사와 인물, 교유의 문화공간
김종길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베란다에 해바라기를 키운다. 화분만 두고 키우기에 정원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모양새이다. 전에는 몰랐던 사실인데, 식물은 생각보다 훨씬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 나의 경우에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과 흙내음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겉으로는 내가 해바라기를 키우고 있지만, 속으로는 해바라기가 쓰러지지 않고 클 수 있게 나를 붙잡아 주고 있는 셈이다.
제목에서 예고했듯 『한국 정원 기행』은 한국의 정원으로 떠난다. 들어가기에 앞서 정원이 각국에서 어떤 의미로 다르게 표현되는지, 한국 정원에는 특히 어떤 정신이 깃들어 있는지 등 사전 정보를 제공한다. 1부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된다. 관람 순서, 심긴 식물이나 조형물, 지은 사람과 관련된 일화, 평가한 문헌 소개까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 지루하지 않다. 하나하나 경청하는 동안 바람이 머리를 간질이는 듯했고, 단아한 동양의 흥취에 흠뻑 젖어들었다.


이 책에는 정원을 배운다기보다 여행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정원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경로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주는 형식 덕분에 직접 거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다녀온 뒤 기억을 더듬으며 쓴 글이 아니라 저자가 길 위에서 열심히 적은 글이라는 생각이 여실히 들었다. 그 발길을 따라 종종 걷다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의 정원은 조급히 화려하지 않는 여유가 포인트임을 깨달았다. 대부분이 정원 안에서는 바깥이 보이지 않도록 차단해 두었다는 부분에서 은둔이라는 목적의 매력이 물씬 풍겨 나왔다. 그뿐 아니라 공간이 현실의 문제와 맞물리는 지점에서는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공간을 향한 인간의 욕심이, 김흥근과 흥선대원군 사이에서처럼 정치적 보복으로 이용되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남간정사, 명옥헌을 비롯한 몇 군데는 처음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모종의 이유로 원형을 읽었다는 곳들이 아쉽기도 했다. 특히 정약용이 잊지 못했다는 백운동이 여전히 궁금하다. 언젠가 직접 눈에 담으러 향하고 싶어졌다. 동백이 만개할 봄에.
잘 모르는 분야를 알아가는 일은 큰 기쁨이다. 요즘에는 유튜브에도 브이로그라는 이름으로 일상이나 기행기를 다룬 비디오가 수십 건씩 업로드되지만, 그런 영상보다 종이 책을 먼저 찾게 되는 걸 보면 나 역시 아날로그 세대가 아닌가 싶다. 일독만으로 모든 내용을 기억하고 장소와 일화를 연결 짓기는 어렵다. 한 번에 기억하려 하지 않고 행선지를 정한 뒤 방문 전 읽거나, 다녀오고 나서 책을 다시 펼쳐 읽는다면 더욱 풍미로운 산책이 될 것이다. 태어난 이래로 쭉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그다지 아쉽게 느껴지는 점은 없었다. 크면서는 더욱 그랬다. 베란다에도 식물은 충분히 키울 수 있고, 보안 측면에서는 오히려 아파트가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어린 날의 소망이 되살아났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