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 - 기후변화부터 자연재해까지 인류의 지속 가능한 공존 플랜 서가명강 시리즈 11
남성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야생에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던 동물들은 사람의 사회로 편입되며 온갖 병에 시달린다. 예전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에는 ‘세상에 인간이 한 명 남을 때까지 인류는 끝없이 편을 갈라 싸울 것’이라는 대사가 나왔었다. 기우가 아닌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면 어김없이 암담한 기분이 든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상처 입히는 일만 잘할 수 있는 걸까? 그 외에도 사람이 파괴하고 있는 것에 무엇이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환경이다. 초등학생 때 환경 일기를 쓰면서 함께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그때도 지금도 한국은 물 부족 국가이다. 학급 친구들 모두가 ‘쓰지 않는 콘센트는 뽑아 두기’나 ‘빨래는 모아서 하기’, ‘플라스틱은 되도록이면 쓰지 않기’ 등을 반복했다. 친환경 에너지를 주제로 그림도 여러 장 그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종말은 더 가까이 도래해 있다.

  『위기의 지구, 물러설 곳 없는 인간』은 이런 사태의 한가운데에 화두를 둔다.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관한 책이다. 시작에 앞서 환경과 관련된 유사어들의 정의를 바로잡고, 재해를 일으키는 원동력에 관해 설명한다. 익숙한 태풍과 홍수부터 미세먼지와 해양 오염까지,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와 심각성을 짚는다. 이후에는 해결책을 강구한다. 대표적으로 해양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설명한 뒤, 해양 관측의 역사와 전망을 이야기한다. 책의 막바지에서는 공학과 과학의 협력을 장려한다.

  서가명강 시리즈의 한 편답게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3학점짜리 교양 수준으로 풀어냈다. 나 역시 뚜렷한 해결책 없이 무작정 공학적인 부분으로 우선 접근하려는 시도에 부정적이기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종종 환기하려 하지만 자주 잊고 사는 지구의 소중함을 새삼 깨우쳤다. 다른 이의 서평을 읽은 뒤 관심을 가지고 있던 책 『재난 불평등』이 언급되었을 때에는 왠지 잘 알던 친구의 이름이 등장한 듯한 기분이 었다. 특히 방재와 방제, 기상 현상과 기후처럼 혼동하기 쉬운 단어들을 바르게 정의해 준 덕에 앞으로는 혼동해 사용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탁상공론은 이제 그만두고 체계적인 분석과 플랜을 발빠르게 실행해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도 공감했다.

  아쉬운 점은 전체적으로 인간 중심적인 시선이 너무 강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책에서 환경 오염과 그로 인한 변화를 대하는 자세를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전투”에 임한다고 표현한다. “환경 변화를 관측하고 감시할 능력”을 갖춘다고, 지구를 버릴 수 없는 인간이지만 “인간을 버릴 수 없는 지구”라고, 해양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 미지의 세계인 해양을 더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 쓰인 단단한 단어를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 과학을 무기처럼 두른 인간이 자연에 대적하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망칠 대로 망쳐 놓고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궁리하겠다는 이기적인 태도가 한껏 느껴져 민망했다. 하다 못해 지구 온난화를 늦추거나 되돌리려는 데에도 과학과 공학이 고개를 들이민다. 공존? 과연 누구를 위한 공존일까. 이제 더 이상 공존은 없고 인간의 이기적인 생존만 있을 뿐이다. ‘그냥 다 같이 죽자’는 무책임한 말 이상은 되지 못해 늘 속에만 담아 두었던 생각이 떠올랐다.

  책은 계속 재앙을 막기 위해 마련해야 할 과학적 대안의 중요성을 설파하는데, 그 반대로 생각이 뻗치는 것은 어째서일까. 나는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이 많고 그와 관련된 소재들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따위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때, 차라리 최대한 대비하는 선택지만 존재해서 오면 오는 대로 대가를 치르던 때가 차라리 나았던 게 아닌지 요즘 자꾸 생각한다. ‘재앙은 어느 한 순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짝씩 우리 스스로가 나아가는 것’이라는 영화 대사가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나,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특별히 큰 해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까. 득이 될 만한 행동도 마찬가지로 하지 않았다.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반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너무나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최대한 지구에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살겠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그러나 과학의 힘을 빌려 최대한 틀어막으면서라도 꿋꿋하게 인간이 설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자신이 없다. 이 순간에도 나는 재앙으로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인간이 초래한 결과라면 아등바등 애쓰지 않고 그냥 숭고히 맞으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생각.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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