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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우주는 나에게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이다. 우주와 관련해서는 가장 마지막으로 본 <애드 아스트라>에서도 인간이 소음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너무 조용해서 변화하지 않는 듯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런 우주와 가장 상극일 것만 같은 디스코 볼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제목은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을 통칭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우주와 음악의 조화를 꾀했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좋아하는 영화 <라라랜드>의 제작진이 영화화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띠지의 문구도 빠질 수 없는 매력 포인트였다. 둘을 어떻게 접목시켰을지 기대되었다.
영국 출신인 대니시 얄로는 한때의 글램록 스타이다. 데시벨 존스로도 더 잘 알려진 그는 미라 원더풀 스타, 오르트 세인트 울트라바이올렛과 함께 ‘앱솔루트 제로스’라는 록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미라가 로드킬을 피하려다가 차량 사고로 죽은 뒤 밴드는 잠정 해체의 길을 걷는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 외계인인 로드러너의 말에 따르면 은하에는 이미 다양한 종족과 연합이 있으며 인간 역시 지각력 있는 존재임을 입증해야 한다. 로드러너는 “당신들이 인간의 불유쾌한 부분의 합보다 크고” “부끄러운 인류 역사에서 뭐든 배웠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말살하지 않고 연합에 소속시켜 주겠다고 말한다. 외계인들이 추린 후보 중 유일하게 살아 있는 앱솔루트 제로스가 인류 대표로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에 참가하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연주해야 한다”는 주제가 신선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이 과거를 두고 투닥거리거다가 화합하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마치 해외판 <슈가맨>을 보는 듯 향수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은하에 입주해 있는 다양한 주민들을 두루 조명한다. 그동안 외계인은 <E.T>에서 시작해 <스타워즈> 시리즈, 그리고 최근에는 <발레리안: 천 개의 행성>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우주와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택한 이 소설에서는 어떤 종족을 창조해냈을지 주목하는 것도 간간했다.
소설 속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데에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깔려 있다. 은하계에서 인간은 무량억겁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발견’되었으며, 그들이 이룬 업적은 지각력을 증명하는 대신 평가절하 당하고, “해로운 자아도취자 무리”로 인식된다. 하물며 오르트의 고양이 카포의 시선에서도 오르트와 데시벨의 언쟁은 “커다란 원숭이다운 문제로 커다란 원숭이식 법석”을 떠는 것처럼 보인다. 인간 중심적이었던 시각이 범우주적으로 넓어지며 직면하게 되는 초라한 실체는 열없고 계면쩍은 한편, 지구에 가장 늦게 등장한 존재로서의 자세를 다잡게 했다. 하지만 우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다. 장소만 지구에서 우주로 확장되었을 뿐 약육강식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고, 흠결 없을 줄 알았던 체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은 오묘했다. 성질이 사나웠으나 일종의 교육 과정을 거쳐 순해진 종족 “에스카”의 일례는 지각력을 테스트한다는 핑계로 본성을 거세하고 억누르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게 했다.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의 꼴찌는 말살한다는 관습 역시 결국은 힘을 무기 삼아 위계서열을 단단히 다지는 것처럼 느껴져 섬뜩했다.
탐사와 연구의 결과로 나 역시 우주에 인간 외의 다른 생물이 없다는 데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구석에는 어딘가 츄바카와 그루트 같은 미지의 생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다. 이제는 순수한 궁금증이나 의심보다 그렇기를 바라는 소망에 가깝지만. 『스페이스 오페라』는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소설은 아니다. 앱솔루트 제로스의 콘테스트 준비 근황과 우주에 거주하는 다수 주민 소개가 크로스오버된 탓인지, 책을 읽는 도중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앱솔루트 제로스의 이야기에 적을 둔 채 새로운 종족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려 애썼다. 몰락한 가수가 극적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희망이 되는 스토리는 얼토당토않은 클리셰처럼 느껴지면서도 훗날 넘어져도 다시 한 번 도전하라는 격려 같았다. 꺼두었다는 사실조차 한동안 잊고 살았던 ‘스페이스 오페라용 방’의 불을 밝히기에는 충분한 소설이었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