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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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익숙해서 꼭 읽어 본 것 같은 책이 있다. 나에게는 『걸리버 여행기』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어렸을 적 동화책에선가 보았던 소인국 사람들에게 꽁꽁 묶인 걸리버 삽화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의사였던 걸리버는 1부에서 단조로운 생활에 염증을 느껴 여행을 떠난다. 배가 난파되어 도착한 첫 나라 릴리퍼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인국이다. 처음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나 여러모로 협력하며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 그러나 소변으로 화재를 진압한 일로 황후의 미움을 사고, 적대국인 블레푸스쿠를 식민지로 삼는 대신 동맹을 맺을 것을 제시해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이후 모함하는 세력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했다가 간신히 블레푸스쿠의 힘을 빌려 탈출한다. 2부에서는 여행을 떠난 걸리버가 물을 구하러 선원 몇 명과 내렸다가 거인과 조우하는데, 이곳이 거인국인 브롭딩낵이다. 그는 농부에게 주워져 이웃마을 장터를 전전하며 공연을 선보이게 되고, 혹사당해 죽어갈 무렵 왕비를 만난다. 왕비와 국왕에게서 귀여움을 받지만, 실수를 저지르면 궁궐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등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결여된 자신의 생활에 절망한다. 고국이 그립다고 생각할 무렵 산책을 나갔다가 독수리 덕분에 탈출한다. 3부는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와 라퓨타의 국왕이 다스리는 땅 발니바르비, 마법사의 섬 글럽덥드립, 그리고 영생불멸인 스트럴드브럭이 사는 럭낵을 여행한다. 영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잠시 일본을 거치고, 4부에서 선상 의사가 아닌 선장으로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열병 때문에 죽은 선원들의 대타를 구했으나, 그들 중 대부분이 해적이었던 터라 배를 빼앗기고 버려진다. 이성을 가진 말들의 나라 휴이넘이다. 자연 그대로의 생활을 하며 급기야는 그들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하던 도중, 의회의 결정으로 떠나라는 권고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휴이넘을 떠난다.


  우선 목차를 보고 가장 놀랐던 부분은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 외에도 다양한 나라를 여행했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어느 나라에 가든 사람들의 비위에 맞추어 공연까지 마다하지 않는 걸리버의 태도는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하녀 거인의 티눈을 떼어 두었다가 속을 파내어 컵을 만든다거나, 국왕의 수염으로 빗을 만든다는 발상은 굉장히 참신하고 세밀해서 혹시 작가의 실제 경험이 아닌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의심이 잠깐 들기도 했다. 더군다나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면서도 <천공의 성 라퓨타>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번에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한 부분은 풍자였다. 생각을 떨쳐내려 노력했지만 이미 풍자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완전히 옆으로 밀어 두고 읽을 수 없었다. 풍자는 이야기 곳곳에서 속속들이 나타나는데, 후반부로 가며 점점 강화된다.







우리의 모습을 3인칭으로 바라보기

  배은망덕을 벌한다면서 황제 자신부터 배은망덕한 데다가 고작 ‘달걀을 넓은 쪽과 좁은 쪽 중 어느 쪽으로 깨는가’와 같은 사소한 것으로 다투는 릴리퍼트 사람들의 모습은 인간 사회를 가감 없이 보여 주는 것처럼 보였다. 현실에서도 대의를 붙여 가며 편을 가를 뿐, 아주 작은 데에서 분열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브롭딩낵의 현명한 국왕은 걸리버와 대화를 나누며 걸리버의 고국인 영국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영국뿐만 아니라 아마 지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비가 식사하는 모습이나 거인들의 털 등을 보고 역겹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누군가에게 나 자신의 모습도 역겹게 보이지 않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렇듯 인간인 자기 자신의 모습과 사회에서 조금씩 거리를 두며 은근히 나타나던 인간 혐오는 휴이넘의 생활로 정점을 찍는다. 휴이넘에서 인간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야후’는 야만적인 동물이며, 말의 필요에 따라 집에서 떨어진 헛간에서 길러지고 말을 위해 노동한다. 한술 더 떠 의회에서 인간이 말을 효과적으로 길들이기 위해 거세하는 방식을 야후에게도 사용하자는 안이 건의되기도 한다. 사람과 말의 역할이 완전히 반전되는 장이다. 조금의 이성을 가졌다고 해서 똑같은 생명을 지배하려 하고, 가혹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정이 떨어지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나 역시 그 사람들에게 역할을 떠맡겼을 뿐 다 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을 왜 감추라고 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옷도 입지 않고,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다는 개념 없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휴이넘의 세계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며 말 그대로 이상 세계처럼 느껴졌다.








과연 우리는 누구에게 돈을 내고, 무엇을 믿고 있는가?

  라퓨타와 발니바르비는 오로지 허무맹랑한 신식 기구 개발과 효과적으로 국민을 탄압하는 방법 등을 연구하는 이들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한편, 웃을 수 없는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소설 속 수백 명이나 되는 연구원들은 뚜렷한 결과도 내놓지 못한 채 몇 년씩 얼토당토않은 연구에 매진하는데, 건물을 지을 때도 지붕부터 짓자가나 언어를 폐지하자는 등의 발상이 그것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지점은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 “국민을 괴롭히지 않고 세금을 거둘 수 있는 방법”이나 의심가는 사람을 감시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반란 음모를 사전에 발견하는 방법”이라는 부분이다. 그런 공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돈을 바칠 수밖에 없는 일개 국민의 운명이나, 세금을 내고 고용한 것과 진배없는 대리인들이 도리어 국민을 탄압할 방법을 궁리하고 모의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였다.

  글럽덥드립에서 등장하는 망자들은 자신들과 역사 대부분이 의도적으로 미화되었다고 말한다. 선인은 음모를 뒤집어쓴 채 반역자로 남거나 역사에 기록되지조차 못하고, 역사의 승자로 남은 악인에게만 유리하게 편찬되었으며 실수로 나온 결과도 가치를 지니면 그에 맞게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특성 자체가 객관적으로 기록될 수 없는 게 역사이지만, ‘과연 누구의 입맛에 맞게 쓰였는가’라는 직구를 던지는 부분이었다. 럭낵에서 영생을 누리는 존재 스트럴드브럭의 일생 이야기는 서글프다 못해 애끊듯 아프게 다가왔다. 그들에게도 신체적 노화는 계속 진행되지만, 여든에는 국가의 주도로 사망 신고 후 강제 유산 상속을 해야 한다. 걸리버를 만나 여행담을 듣고도 신기해하는 대신 “기념품을 달라”는 그들의 모습은 이미 다채로운 경험을 했기에 무뎌졌다기보다는 완곡된 표현으로 구걸할 정도로 생활을 이어가기 힘든 것으로 보였다. 그 바탕에도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지배층의 속셈이 숨어 있어 역겨웠다.


  걸리버는 책 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인간 사회와 영국 사회를 맹렬히 비판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그가 자신의 조국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는 영국을 모욕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들으면 발끈하면서도 “우리 유럽에서는 누가 발명한 것인지 가려내기 어렵도록 남의 발명을 가로채는 습관이 있다”는 등 자랑스럽게 설명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이 애국심 강한 국민조차 부끄러운 줄 모르고 이야기할 정도로 통상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해 효과를 극대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또한 가공의 나라만 등장하는 줄 알았는데, 일본과 일본의 십자가 밟기(후미에 밟기)도 함께 언급되어 신기했다. 부가적으로 거인국 부분에서는 묘사가 뛰어나서 나라면 소인국과 거인국 중 어느 곳에 사는 것이 더 고역일지 상상해 볼 수 있었고, 삽화 덕분에 눈의 피로를 덜어 가며 책의 재미를 풍부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소설이 풍자 소설로 분류되어 소개되는 것이 싫다. 자세히도 써 놓고 이제 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걸리버 여행기』에는 기가 막힌 상상력을 바탕으로 세워진 세계가 있는데, 풍자 소설로 알고 한정해 둔 채 읽는다면 걸리버의 흥미진진한 여행을 따라가며 탐구하기보다도 어느 부분이 풍자인지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적이라는 특성을 부여하는 순간, 더 이상 청소년이 호기심을 가득 품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닌 어른을 위한 ‘어려운 책’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지도 모른다. 소설의 시작을 열기 전, “이 책이 청소년들에게 흔해빠진 정치와 정당과 사회의 잡서보다는 재미있고 유익한 호기심 천국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당부 역시 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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