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독자에게 정의할 수 없는 기분이나 감정을 꼭 어떤 범주로 몰아넣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 게이인 ‘나’가 여자와의 연애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자 “경악”하는 친구들의 반응은 지극히 보편적이다. 순도 백 퍼센트의 사랑이나 우정보다 우리가 살아가며 더 자주 느끼는 것은 그 사이의 어딘가일 텐데, 언제부터인지 사랑은 때로는 끝나거나 때로는 지속되는 것으로, 변함없이 곁을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향할 때만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 외의 관계는 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배제되며 때로는 소외당하기까지 한다. 또한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공소시효가 지나 원고인을 맞닥뜨린” 듯한 인상을 주고, 결국에는 이미 지난 시절을 살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저릿한 감각”만 남기지만 순간 달콤함에 젖어들게 하는 시절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작가는 그 시절이 있어 더 아름답다는 쪽에 조심스레 추를 올리는 듯 보인다.
‘동성애자’와 ‘과거 헤테로 연애’라는 소재 모두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말미에서 그래서 과연 그가 “엑스 헤테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달리 원망하거나 미워하려 드는 대신 기약 없이 기다리기로 한다. 삶의 어느 순간 찾아온 그 떨림이 멈추지 않기만을 바라며 몇 번이고 사랑할 인간과 그 감정을 음미할 뿐이다. 김봉곤은 앞으로 품을 감정과 살아낼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환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름에 이어, 이번에는 늦은 봄을 그만의 무늬로 덧씌우려 한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