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과 기분
김봉곤 지음 / 창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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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재작년 이맘때쯤 『여름, 스피드』로 이름을 알렸던 김봉곤의 신작이 발간되었다. 이번에도 감각적인 제목과 “어쩜 사랑을 그렇게 그려내느냐”는 박준의 추천사에 잔뜩 기대하던 중, 창비에서 진행하는 사전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된 덕분에 가제본을 먼저 받아 누구보다 빠르게 읽어 볼 수 있었다. 내가 받은 가제본에는 표제작이 실려 있어 아무래도 더 특별해진 기분이 들었다. 「시절과 기분」은 한때 꿈을 공유했던 두 친구가 칠 년만에 재회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작가가 된 '나'에게 과거의 친구 혜인이 연락을 해 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절이라는 단어를 적어도 나는 보통 '그 시절', '그때'와 같이 과거의 한 순간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데, 그럴 때마다 꼭 참 힘들었다거나 참 좋았다는 식의 철 지난 감상을 동반하기 때문에 슬프다는 인상이 강했다. 땅을 파다 보면 습기 머금은 흙이 나오듯이, 기억도 파다 보면 질척하고 찌질한 게 우르르 쏟아져서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인데도 자꾸만 회상하는 버릇을 싫어하는 탓도 있었을 것이다.

                       

 


                             소설은 독자에게 정의할 수 없는 기분이나 감정을 꼭 어떤 범주로 몰아넣어야만 하느냐고 묻는다. 게이인 ‘나’가 여자와의 연애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자 “경악”하는 친구들의 반응은 지극히 보편적이다. 순도 백 퍼센트의 사랑이나 우정보다 우리가 살아가며 더 자주 느끼는 것은 그 사이의 어딘가일 텐데, 언제부터인지 사랑은 때로는 끝나거나 때로는 지속되는 것으로, 변함없이 곁을 줄 수 있는 한 사람을 향할 때만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 외의 관계는 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배제되며 때로는 소외당하기까지 한다. 또한 어느 날 불쑥 찾아와 “공소시효가 지나 원고인을 맞닥뜨린” 듯한 인상을 주고, 결국에는 이미 지난 시절을 살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저릿한 감각”만 남기지만 순간 달콤함에 젖어들게 하는 시절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작가는 그 시절이 있어 더 아름답다는 쪽에 조심스레 추를 올리는 듯 보인다.

                       


                          
                       


                          
                       


                             ‘동성애자’와 ‘과거 헤테로 연애’라는 소재 모두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야기의 말미에서 그래서 과연 그가 “엑스 헤테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달리 원망하거나 미워하려 드는 대신 기약 없이 기다리기로 한다. 삶의 어느 순간 찾아온 그 떨림이 멈추지 않기만을 바라며 몇 번이고 사랑할 인간과 그 감정을 음미할 뿐이다. 김봉곤은 앞으로 품을 감정과 살아낼 시절을 어쩔 수 없이 환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여름에 이어, 이번에는 늦은 봄을 그만의 무늬로 덧씌우려 한다.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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