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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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조선인들은 질병을 어떻게 이겨왔을까?

백성들부터 임금까지 전염병 앞에서는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백신을 안맞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 백신이 없었던 조선시대에서는 역병이 돌 때마다 이와 마찬가지로 봉쇄령과 접촉 금지법을 시행하였다. 현대의 의학 기술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의료 시설을 갖추고자 하였고, 수많은 의학 서적을 편찬하여왔다.


사실상 조선의 의료체계는 임금과 관료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의원은 내의원이었으며 왕실을 전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을 보면 47세이다. 조선 시대의 백성들의 평균 수명이 35세 정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음식도 잘 먹고 생활환경 및 의료체계가 갖추어진다면 기대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대 왕 중 지병이 없었던 왕은 태조와 영조 뿐이었다. 환갑을 넘긴 왕중 정종, 광해군, 고종은 왕위에서 물러나거나 쫓겨난 뒤에 환갑을 맞았다. 정무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다수라고 하기엔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종기의 고름과 심열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세종대왕 또한 고름과 합병증으로 인해 고생하였으며 악화되어 시력을 잃었으니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서양에서 의료기술이 빠르게 넘어오고, 의학적 영웅의 탄생이 빈번했으면 우리 나라의 역사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의료사고로 인한 죽음을 맞은 왕또한 있었고 그 시기에 명의가 없었거나 그 명의의 대를 이을만한 실력자가 이어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요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찜질방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바로 한증소라고 불리는 곳으로 한증막의 시초이기도 하다. 한증소에서 땀을 빼다 죽어가는 이들이 늘어나자 그곳에 의관을 배치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브란스의 기원은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으로 국립병원이자 의과대학으로써 본격적으로 의사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맡아서 관리하였으며 근대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여의사 (=의녀) 대장금

유교사상으로 인해 바깥일을 할 수 없었던 여자들에게는 실록에 기록될 일이 궁중의 여인이 아니고서는 거의 드문일이었다. 하지만 여러번 등장할 뿐더러 당대의 왕이었던 중종은 장금을 어의보다 더 신뢰하였으며 "대"라는 칭호를 붙일 정도로 진맥을 대장금에게만 맡기었다. 드라마 대장금은 실화의 몇 줄을 각색하여 살을 붙인 것으로 허구 사극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감기와 독감을 구별하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고 치질은 만성이고 풍에 맞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였으며 병에 걸렸음을 핑계 대신 둘러대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전염병에 걸린다면 죽을 확률에 대한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만약 현재가 조선시대의 의술의 단계였다면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후 였을지도 모르겠다.




메디컬 조선은

제 1장 '조선의 의료 체계와 의료 시설'

제 2장 '조선 백성들을 괴롭힌 10대 질병'

제 3장 '조선 왕들의 질병과 죽음'

제 4장 '조선을 풍미한 명의'

제 5장 '조선 의학의 초석이 된 의서'


이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역대 왕들이 속앓이 등을

스치는 이야기처럼 엿볼 수 있다.


역사에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 메디컬 조선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역대 왕들도

아픔과 죽음을 괴로워했고 병을 얻은

이면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유추할 수 있다. 마치 독살을 당했을 것이라고

여겼던 왕들도 증상의 맥락을 살펴보며

현대 의학으로 어떤 병증을 앓았을지

진단해보거나 역사의 관점을 새롭게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돋울 수 있다. 역대 왕들의 대부분이 병마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평생 정무를 보며 백성들을 걱정했던 왕들도 단 하나의 종기로 명을 달리하였다. 조선의 의술 중 한의학에 대해서는 신뢰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고칠 수 없었던 병들이 있었으니, 옛날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얼마나 두려워하였을지 산속으로 숨어들어갔다는 것을 보니 느껴졌다 . 또한 봉쇄령이 내려졌을 당시 백성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 수도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치료법이나 서적을 통해 치료에 필요한 약을 알아도 비용을 댈 수 없어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수 있었을지 가늠이 안되었다. 옛날에 홍역이나 죽을 병에 걸리면 무당을 찾아가거나 무녀를 찾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바로 이러한 두려움을 세속신앙을 통해 이겨내고 싶어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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