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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 - 지식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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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재해, 전쟁, 소행성의 충돌.. 지구의 멸망은 어느시점에 갑작스럽게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의 가능성 중 하나이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시베리아에서 살아남기 등등 인류는 여러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왔으나 과연, 지구의 멸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며 어떠한 대처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당신이 지구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최후의 인류가 된다고 생각을 해보자.


몇일이나 우리는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전류도 끊기고 건물들은 모두 무너졌다. 최소한의 물자인 의식주를 충족시키기 위해, 또는 영양실조와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서 나 혼자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최소 6개월에서 1년정도는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다. 이 식량으로 버틴다고 해도 동력과 기술이 뒷받침 되지 않는 한 우리는 지속적인 생존에 있어서 리스크가 굉장히 크다. 불이 안들어오고 난방을 못하며 원시적인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을까? 심지어 시계도, 자동차도, 약도 우리는 설명서가 있다해도 만들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만드는 기계들도 부품도 재료도 직접 수급해야 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발달한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원시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보다는 나을 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어 식물에 잠식당하고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건조한 기후에 진입한 도시는 순간 우연히 화재가 일어날 수 있다. 일년에 산불은 언제든지 일어난다는 실제적 자료가 있듯 태풍, 토네이도, 지진등에 미리 대비할 기상청 홈페이지 정보도 없는 하나의 고립된 생명은 그 자리에 있는 의식주를 놓고 도망치는 수 밖에 없다. 일궈놓은 문명에 내쫓긴 인간은 다시 하루하루 생존을 목표로 사는 원시시대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책은 종말 후의 생존자들이 누려왔던 산업화의 삶을 재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전제하에 쓰여졌다. 그에 따른 최소한의 과학 지식인데, 사실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에겐 최대한의 과학지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다소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일궈왔던 것들이 얼마나 발달해 있었고, 이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할지 기초 지침서가 되어준다. 모든지 일을 착수할때는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상황에 따른 메뉴얼을 통해 붕괴 상태에서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지 대략적인 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인류사회의 발전에 있어서 과학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몸소 느낄 수 있다. 과학적 용어들이 다양하게 나오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멸망에 대비하여 내가 모르는 과학적 이론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그래서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실천해볼 수 있는 지식으로 축적이 된다면 인류의 멸망이란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것 같다.


"종말이 오지 않은 미래를 대비하며"

나는 아직 오지 않은 종말을 미리 걱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수많은 과학적 지식을 읽게 되면서, 멸망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하다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녹색 문명'에 대한 지식은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인류가 기술을 접하고 다시 리셋이 된다고 해도 살아남은 인류가 적다면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의 세월이 지나야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시간에도 지구의 온난화는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하나의 멸망으로 가는 전초일 수도 있다. 멸망 후의 자연에서 살아갈 인류를 상상하기 보다 멸망하지 않은 지구를 염원하며 지금 이시간에도 문명의 발달에 힘을 쓰고 있는 과학자들에게 경애를 표한다. 또한 자연에서 찾아낸 기술의 발달을 당연시 받아들이지 않고 왜 이렇게 발달 할 수 있었는지 최소한의 정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 과학이 있어야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이을 최소한의 수단을 지킬 수 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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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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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이라면 21세기 청소년들이라면 한 번 쯤은 꼭 들어봤을 시인이다.

내가 처음으로 정호승 시인의 시를 접했던 것은 수능특강에서 자주 나오던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중략)··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슬픔이 기쁨에게 中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사람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라는 대목에서 역설법을 통해 통념적인 관념을 깨트려 준 것이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사랑은 슬픔을 어머니로 하고 눈물을 아버지로 한다. 사랑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바로 고통 때문이다." 문장의 말뜻을 해석해 보자면, 사랑이 슬픔과 눈물로부터 태어나며 진정한 사랑이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슬퍼하고 눈물 흘릴 줄 아는 태도에서 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슬픔으로 가는 길, 슬픔은 누구인가 등등.. 정호승 시인의 작품중 슬픔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시들이 많았다. 슬픔이라는 깊숙하고 음습할 수 있는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지닌을 느낄 수 있었으며 슬픔에 빠진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손길과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용기를 복돋아줌이 온몸으로 와닿았다.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또 읽다보면, 그 시대와 장면이 그려지곤 한다. 가로등 불빛 담벼락밑에 기대있는 소년, 거리에서 부둥켜 안고 울고 있는 사람들, 새벽에 입을 꾹 다문채 편지를 쓰고 있는 이 등등..


마치 작가님의 시가 편지로 둔갑하기도 하고, 제 3의 입장에서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들ㄹㅕ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단편 하나하나를 보았을 때는 그 장면에만 주목을 하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우리 역사의 시대상을 스윽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간다.


슬픔에 대한 위로 뿐만 아니라 개개인에게 부족하고 힘든 부분을 간혹 채워주기도 하는 게 "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감명깊었던 시는 빈 그릇이 되기 위하여 이다.


빈 그릇이 빈 그릇으로만 있으면 빈 그릇이 아니다

채우고 비웠다가 다시 채우고 비워야 빈 그릇이다

···

채울 줄 모르면 빈 그릇이 아니다

채울 줄 모르는 빈 그릇이 되라고 하시는 것은

먼저 내 빈 그릇을 채워 남을 배고프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채운 것이 없으면 다시 빈 그릇이 될 수 없으므로

늘 빈 그릇으로만 있는 빈 그릇은 빈 그릇이 아니므로

나는 요즘 추운 골목 밖에 나가 내가 채워지기를 기다린다

p.394


빈 그릇이 되어야 하는 것이 정호승 시인의 이상이라면 내가 채워지는 것. 바로 나를 채워 이롭게 하는 것이 남을 위해 베풀수 있는 일이고 이로운 일들을 남에게 주어 나를 비우는 것 또한 남을 위한 일이다. 이 글에서 선생님을 떠올릴 수 있었고,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생각이 났으며, 수많은 우리나라의 영웅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나의 빈그릇을 채워 나눠주고 다시 빈그릇이었던 나로 되돌아오는 것이 삶을 가치있게 살았다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암울함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만 글에 힘이 있다는 말이 있듯 슬픔을 이겨내려는 그의 결의가 글자 사이사이 마다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슬픔을 노래하고 때로는 인간사의 잔잔한 기쁨을 표현하며 그 중간을 유지하는 절제미를 갖춘 시들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더욱더 극대화될 수 있었지 않을까.


처음으로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봤다. 원래 알고 있던 시 또한 나이를 좀 더 먹고, 생각이 깊어진 후 읽어보니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 생각보다 우리의 다양한 경험들이 자신의 글이나 사진 그리고 그림 등등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성으로 언뜻 드러난다. 다양한 책을 읽어보았지만 이처럼 색상이 짙게 느껴지는 장르는 시가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해석해보고 또 그에서 많은 상상력과 깨달음을 많이 얻어가는 것 같다. 시적 허용의 표현들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는 또 다른 길이고 고정관념을 깨고 창의성을 건드려준다. 무채색의 현대인들을 다양한 색상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동력을 마련해주는 마중물의 역할으로써 한번쯤은 시집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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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쓰는 용기 - 정여울의 글쓰기 수업
정여울 지음, 이내 그림 / 김영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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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글쓰기를 꿈꾸는 크리에이터들이여,

타인의 악의적 댓글에 무너지지 말기를.

기꺼이 오해받을 준비, 언제든 비판받을 준비를 하되,

마침내 이해받고 공감받을 준비를 합시다.

정여울 작가의 일러두기 중에서


우리는 언제나 글을 씁니다. 일기와 방명록, 편지와 독후감.. 막상 종이와 펜이 있으면 흰 종이에 잠식당한 듯 한동안 가만히 생각을 하죠. 어떻게 글을 쓸지, 이 글이 가치가 있을지. 막상 한 줄을 시작하기가 버겁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과 글을 적고 있는 저로서도 한참을 고민하며 한 줄 한 줄 적어나갑니다. 이 모든 일들이 끝나고 후련할 나 자신을 상상해보세요. 어때요?? 자 이제 다시 시작해봅시다.


정여울 작가님의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보셨나요? 저는 사실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참 고등학교 때 학업에 치여 대학생이 되면 유럽으로 여행 가야지, 하며 찾아보게 된 책 중에 <<내가 사랑한 유럽 10>> 이 있었지요. 각박한 수험생 생활 기간 동안 정여울 작가님이 정성스레 정리해 준 유럽의 여행지들이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왔었습니다.


사실, 책을 읽다 보니 저와 정여울 작가님과의 공통점이 꽤나 많더군요. 저도 어렸을 적 작가라는 꿈을 키운 적이 있었어요. 사실 너무 어릴 적, 초등학생 때 일이었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진취적이시고 굉장히 적극적이셔서 반의 홈페이지도 만들어주셨고 어렸을 적 패기였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홈페이지에 연재를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단편작이자 "강아지 똥"에 영감을 받아 강아지 똥의 여행기를 동화 형식으로 지어봤는데 학급 친구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 이후로 친구들의 응원에 힘입어 여러 가지 연재작들을 해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처음 써 봤던 소설이 아직도 그 카페에 존재하고 있답니다. 담임선생님은 저를 보고는 당시 백일장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하셨죠. 하지만 저는 정여울 작가님보다 더 소심 쟁이었나 봐요. 막상 전날이 되자 도저히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아쉬웠어요. 제가 봐도 당시에 썼던 소설들은 꽤 괜찮았거든요:)


저도 재능을 과시하는, 과대평가하는 문화를 좋아하지 않았었나 봅니다. 정여울 작가님이 말씀하신 "긁지 않은 복권"에 저는 그치고 말았지요. 그때부터 움츠려든 저는 글쓰기를 꾸준히 하진 못하였지만 지금 그걸 이겨내고 다른 꿈인, 사서의 꿈을 가지고 있어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보다는 그 이야기를 전해주길 바라는 사람이 되었죠.


사서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소중히 여기는 감각을 말하는 거예요. 이 책은 어떤 사람에게 필요하겠구나,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감식안이 생길 때까지 수많은 장서를 소중히 아끼며 읽어 내려가는 것이지요.

p. 136


문장 : 눈부신 마지막 문장이 보일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기


모든 책은 존중되어야 해요. 한 문장을 쓰더라도 작가들의 입장에서는 허투루 쓴 글자가 없지요. 한 문장이 빠지거나 잠깐 긴장 없이 글을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되듯, 글쓰기는 우리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은 자신의 삶과 일치하는 문장, 문장 자체가 자신의 영원한 분신이 되는 그런 문장을 꿈꿉니다. 좋은 말이에요. 딱 이 글을 보았을 때 아 "이 작가님의 문체 같아", 딱 보고 느껴진다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말이 있을까요? 그래서 글쓰기는 자아성찰이자 자신만의 레이스라고 생각됩니다. 한 글의 방향을 잡으면 거기서 벗어나면 안 되죠. 갈팡질팡하는 불안한 마음이라면 그것을 대변하듯 바로 태가 납니다. 여울 작가님이 감명을 받으셨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지요. 저도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싶기도 하네요.


아날로그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전자책만의 장점도 물론 있겠습니다만, 종이책의 겉표면과 출판사들의 정성스러운 띄지, 일러스트, 종이의 넘김, 새 책 냄새.. 이 모든 것이 없는 전자책은 다소 밋밋하고 딱딱한 느낌을 줍니다. 또한 이 모든 과정은 작가 혼자만의 레이스가 아닌, 편집자와 출판사의 구성원들과 함께하게 됩니다. 다수의 사람이 한 권의 책을 만들기까지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면 깜짝 놀랄 수도 있습니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먼저 글을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맺기 전 신뢰를 쌓기 위해 인사를 하는 것과 같죠. 이런 글, 저런 글을 읽다 보면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글을 찾을 수 있게 되기도 하죠. 모든 일은 뚝딱 해결되지 않지요, 그래서 자신의 글이 안 풀린다고 함부로 단언하고 판단하고, 오만하지 않도록 주의력을 기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종종 슬럼프에 빠진다면 가까운 친구에게 물어봐야 하겠네요.


우리가 끝까지 해보았던 일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금방 싫증이 나거나, 벽에 막혀 좌절하거나, 생각지도 못하게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에게 끝맺음이란 매우 소중한 것이죠. 우리 인생에 마지막 문장과 더불어 마침표를 찍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했던 자신에게 박수를 쳐줄 준비를 합시다.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고, 한 문장이라도 써보고. 다음날 두 문장을 써보고 그렇게 매일매일 툭툭 나오는 글들을 뭉치면 책 한 권이 완성이 됩니다.


절대적 고독 속에서 자기 안의 가장 빛나는 용기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p.296



자소서를 쓰거나 서평을 할 때, 항상 막히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글이 정말 막힘없이 쓰일 때가 있고, 한 문장 쓰고 노트북을 닫은 적도 있어요. 다시 생각해 보자면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때 글이 잘 안 써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울 작가님이 말씀하셨던, 나 자신 안에서 글이 나오기 때문에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하셨죠. 누군가에게 칭찬받은 기억을 다시 받기 위해 억지로 글을 써보기도 하였고, 어제 써보았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동안 쓰지 않았던 기억도 있어요. 하지만 꾸준함이 이긴다는 것이 그리고 글을 쓰며 자신을 감동시키라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저는 누군가에게 읽히고 싶은 글을 쓸 뿐이었지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방향을 잡았으니 차근차근 시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 때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이유에서 발견했네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막상 쓰게 되는 순간 고독함을 이길 수 없었던 모든 글린이 분들에게 꼭 추천하는 책입니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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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 AI와 통제 문제
스튜어트 러셀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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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학생의 관점으로 쓰인 서평으로, 전문성이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 ※

 

 

책의 개요

1-3장 인간과 기계의 지능

4-6장 기계에 지능을 부여할 때 생기는 문제들

7-10장 AI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기계가 인류에게 도움을 주는 상태로 영구히 남아있게 할 방법

 

현시점에서 머신러닝, 딥러닝, AI가 각광받는 이유는 이미 산업 발전이 정점을 이룬 시점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선 가장 큰 발전을 가져다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AI에 대한 두려움의 인식을 가지게 만들어준다.

 

인간은 글을 읽음으로써 그 동작과 행위를 상상하고 즉시 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감정, 지능, 해결 능력 등등

 

이것을 AI로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고민은 지금도 수많은 공학자들이 고군분투하여 해결하려는 난제이다.

 

사실상, 파이썬이나 자바를 현 대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배우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AI라고 여기는 것들은 거의 대부분 프로그래밍을 개발자들이 입력해놓은 것으로, 아직 기계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인간적 지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대학교 프로그래밍 수업에서도 기계는 철저히 멍청하다는 것을 먼저 배우고 시작한다. 바로 0과 1의 기계어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초기 인간은 그것을 01, 011, 0101, 등 하나하나 입력하였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자도 한글 - 자음 - 몇 번째 - 모음 - 몇 번째 - 띄어쓰기 등등 여러 가지 구성을 0과 1의 조합으로 입력받아 무수한 숫자를 입력받고 반환하여 화면에 이렇게 출력시켜주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컴퓨터학과 학생들의 여담에 따르면, 프로그래밍과 코드 노예가 있을 정도로 코드를 짜는 것은 길긴 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단, AI를 이용해 인간의 지능과 같이 돌발 상황에 대응하고 학습효과를 보이면서 우리가 원하는 요구대로 어떻게 구축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은 여기서 나온다.

그런 행동들이 라이브러리에 들어 있으면, 우리는 그런 높은 수준의 행동을 엮어서 더욱 높은 수준의 행동을 생성할 수 있다.

···

"문명은 우리가 무심코 할 수 있는 중요한 조작의 수를 늘림으로써 발전한다.(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p.134

 

게임이론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논증을 펼치는 것을 보며, 왜 인문학적 소양과 공학적 소양을 동시에 가진 융합적 인재가 각광받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공학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있어 가장 처음에 하는 것은 마인드맵이나 의사결정 트리를 통해 논증해보는 것으로 어떤 것이 최대 이익과 최소의 손실을 가져다주는가에 의해 가장 최적화되었는지 분석하는 단계이다.

 

이러한 점증적인 방식으로 인공지능 또한 학습을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인간이 권리를 가지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논쟁하는 등의 다양한 양상을 기계의 의사결정에 어떻게 주입을 시켜야 할까? 또는 딜레마와 윤리에 대해서는 정해진 정답이 없는데, 이러한 것을 감안하여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것에는 정답이 없을뿐더러 인간들도 의견이 분분하게 갈린다. 이에 인공지능이 안전하다는 논리가 흔들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들 속에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편향된 생각과 방향을 가지고 기술을 개발하게 되는 것을 막기만 하면 된다. "

 

설령 모두가 동일한 선호 구조를 지닌다고 해도 균형은 필요하다. 모두의 선호를 최대로 충족시키는 것은 대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도록 한다. 다소 사소한 가설을 가지고도 인간의 입장으로만 생각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논제들이 인공지능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놓치고 지나갔던 것이 있었다. 공리주의 입장에서와 소수의 입장, 사람 대신 로봇을 이용해 공격하고 로봇이 피해를 대신 입는 경우. 만약 초지능이 실현되어 인공지능이 여러 시험을 통해 사람의 권리와 자신의 권리를 동일시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생존본능이 발휘될까?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지만 내 생각은 인공지능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계가 최적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인류를 파괴한다는 것은 프로그래밍 입장에서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학자들 말에 동의하는데, 모든 확률을 계산하는 장치임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놀랐던 것은 범용적인 기법으로 탄생된 알파고가 그 엄청난 양의 바둑 전용 코드를 짜지 않은 채 개발했다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는 데 쓰는 전방 탐색과 판세를 읽는 법을 배우는 데 쓰는 강화 학습이 실현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로써 사람들이 AI가 인간을 정복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어 놓게 된다. 하지만 딥러닝도 결국 인간이 구축한 것이고, 인간의 지능 및 감성 등을 복제하기 위해서는 뇌구조를 파악하거나 신경망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연구는 인간도 아직 진실에 도달하지 못했다. 알파고와 같은 AI는 이전에 이겼던 사례들을 시뮬레이팅을 통해 최적의 대안을 내었다. 만약 그런 사례가 없고 지는 것을 "이기는 것"이라고 학습시키는 것은?

 

인간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대처능력이나 그에 따른 감정 표현은 정의 내리기가 힘들다. 나는 이렇게 예를 들어보고 싶다. 어떤 한 지문을 가지고 문과와 이과에게 보여주었을 때 문과는 그 지문을 느끼고 여러 가지 비유 표현, 직설법, 반어법 등을 사용해 또 다른 관점으로 창조해나가는 반면, 이과는 그 지문을 있는 그대로 분석한다. 그런데 이것도 일반화가 아닐까? 오히려 이과가 여러 가지 관점이었을 수도 있다. 그 지문이 공학적 수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혀 다른 딜레마들과 사소하지만 맹점을 찌르는 논점들을 통해 저자는 우리가 인공지능과 철저히 다른 이유, 인공지능과 인간을 동일시하면 안 되는 이유들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다만, 당장 우리를 잠식해오는 시행착오들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딥페이크로 인한 온라인 성범죄, 또는 인공지능, 키오스크 등으로 일자리를 잃어가는 사람들. 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과 기계가 발전하는 간극이 벌어질수록 어떻게 분석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며 그렇게 지능이 떨어지는 인간은 단순노동, 서비스업과 같은 감정노동의 일자리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단순노동 또한 충분히 대체될 수 있다. 우리는 어느 관점에서든지 균형을 지켜야 한다. 오로지 인간의 발전을 위해 개발에만 몰두해왔던 지금 공리주의를 둘러싼 철학적 논쟁과 경제적 논쟁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의 무궁한 발전에 반대하는 사람으로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다. 한 가지에 치중된 지식이 아닌 여러 방면으로써 딜레마에 빠져도 보고, 현실을 직시해보며 인간의 현 위치가 어디인지 잡아주는 정보를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교과서였던 책을 써왔으며 어떤 면에선 가장 인공지능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 경험자임이 느껴졌다. 그런 저자가 하는 말을 우리는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고 생각이 된다. AI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집어주고, 왜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들이 말이 안 되며, 또 말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지 인간의 전반적인 지능 면에서 여러 가지의 예를 들어주기도 한다. 다소 전공지식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말 미래가 궁금하고 인공지능이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알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매우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야 하고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 미래에는 이 일이 재앙이 될 수도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그 본질에 대해서 알아놓아야 할 것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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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조선 -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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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조선인들은 질병을 어떻게 이겨왔을까?

백성들부터 임금까지 전염병 앞에서는 한낱 인간일 뿐이었다.


백신을 안맞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다. 백신이 없었던 조선시대에서는 역병이 돌 때마다 이와 마찬가지로 봉쇄령과 접촉 금지법을 시행하였다. 현대의 의학 기술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의료 시설을 갖추고자 하였고, 수많은 의학 서적을 편찬하여왔다.


사실상 조선의 의료체계는 임금과 관료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의원은 내의원이었으며 왕실을 전담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을 보면 47세이다. 조선 시대의 백성들의 평균 수명이 35세 정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음식도 잘 먹고 생활환경 및 의료체계가 갖추어진다면 기대 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대 왕 중 지병이 없었던 왕은 태조와 영조 뿐이었다. 환갑을 넘긴 왕중 정종, 광해군, 고종은 왕위에서 물러나거나 쫓겨난 뒤에 환갑을 맞았다. 정무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다수라고 하기엔 거의 대부분의 왕들이 종기의 고름과 심열증에 시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세종대왕 또한 고름과 합병증으로 인해 고생하였으며 악화되어 시력을 잃었으니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서양에서 의료기술이 빠르게 넘어오고, 의학적 영웅의 탄생이 빈번했으면 우리 나라의 역사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의료사고로 인한 죽음을 맞은 왕또한 있었고 그 시기에 명의가 없었거나 그 명의의 대를 이을만한 실력자가 이어 나오지 않았다는 것도 요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찜질방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가?

바로 한증소라고 불리는 곳으로 한증막의 시초이기도 하다. 한증소에서 땀을 빼다 죽어가는 이들이 늘어나자 그곳에 의관을 배치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브란스의 기원은 서양식 국립병원, 제중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으로 국립병원이자 의과대학으로써 본격적으로 의사를 양성하는 기관이었다. 미국의 선교사들이 맡아서 관리하였으며 근대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록에 기록된 유일한 여의사 (=의녀) 대장금

유교사상으로 인해 바깥일을 할 수 없었던 여자들에게는 실록에 기록될 일이 궁중의 여인이 아니고서는 거의 드문일이었다. 하지만 여러번 등장할 뿐더러 당대의 왕이었던 중종은 장금을 어의보다 더 신뢰하였으며 "대"라는 칭호를 붙일 정도로 진맥을 대장금에게만 맡기었다. 드라마 대장금은 실화의 몇 줄을 각색하여 살을 붙인 것으로 허구 사극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감기와 독감을 구별하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고 치질은 만성이고 풍에 맞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였으며 병에 걸렸음을 핑계 대신 둘러대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전염병에 걸린다면 죽을 확률에 대한 공포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만약 현재가 조선시대의 의술의 단계였다면 우리는 이미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후 였을지도 모르겠다.




메디컬 조선은

제 1장 '조선의 의료 체계와 의료 시설'

제 2장 '조선 백성들을 괴롭힌 10대 질병'

제 3장 '조선 왕들의 질병과 죽음'

제 4장 '조선을 풍미한 명의'

제 5장 '조선 의학의 초석이 된 의서'


이렇게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역대 왕들이 속앓이 등을

스치는 이야기처럼 엿볼 수 있다.


역사에 어렵고 멀게 느껴질 때 메디컬 조선을

보면 좋을 것 같다. 역대 왕들도

아픔과 죽음을 괴로워했고 병을 얻은

이면의 스트레스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유추할 수 있다. 마치 독살을 당했을 것이라고

여겼던 왕들도 증상의 맥락을 살펴보며

현대 의학으로 어떤 병증을 앓았을지

진단해보거나 역사의 관점을 새롭게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돋울 수 있다. 역대 왕들의 대부분이 병마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은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평생 정무를 보며 백성들을 걱정했던 왕들도 단 하나의 종기로 명을 달리하였다. 조선의 의술 중 한의학에 대해서는 신뢰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고칠 수 없었던 병들이 있었으니, 옛날 사람들이 병에 걸리면 얼마나 두려워하였을지 산속으로 숨어들어갔다는 것을 보니 느껴졌다 . 또한 봉쇄령이 내려졌을 당시 백성들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알 수도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치료법이나 서적을 통해 치료에 필요한 약을 알아도 비용을 댈 수 없어 죽어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질 수 있었을지 가늠이 안되었다. 옛날에 홍역이나 죽을 병에 걸리면 무당을 찾아가거나 무녀를 찾는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바로 이러한 두려움을 세속신앙을 통해 이겨내고 싶어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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