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아홉 생의 맛 - 쌍둥이 넷을 키우는 이주부의 글쓰기 여정
이유경 지음 / 꽃고래책다방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젊음이 충만한 20대에는 연륜 쌓인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삶이 부러웠다. 깊은 내공으로 축적된 삶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엔 한껏 여유로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제 마흔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 선 난, 그때의 나보다는 많은 경험치를 획득한 여자가 되었다.

 

오롯이 나 하나만 돌보던 그때보다 챙겨야 할 가족이 늘어났고, 오롯이 나 하나만 생각하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의 나는 어느새 뒷전으로 물러나있었다.

 

그런 나에게 '서른아홉 생의 맛'이라는 책은 글쓴이의 이야기면서 내 이야기였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내, 엄마, 주부로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열 살 딸, 여섯 살 아들을 키우는 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대단한 여자가 있다. 바로 이번에 내가 만난 책의 저자 이유경 님이 그러하다. 그녀 나이 서른둘에 쌍둥이 아들을, 서른셋에는 쌍둥이 딸을 낳아 도합 넷이다. 책은 쌍둥이 넷을 키우는 글쓴이의 가슴에 쌓인 체증을 풀어놓은 집약서같은 느낌이다.

 

지치지 않고 울어대는 풀벌레들을 배경 삼아 노트북을 열고 아이들의 말들을 기록하고, 꾹꾹 눌렀던 감정도 표현한다. (p.20)

 

그러고 보면 글이라는 수단이 있어서 그녀가 무너지지 않고 그렇게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 같다. 말로는 쉽게 할 수 없는 것들도 글을 통해서는 봇물 터지듯 속에 쌓인 웅얼이를 풀어낼 수 있으니.

 

새벽을 채우는 겸손한 소리를 들으며 나도 분주했다. 우유 배달원의 가벼운 발소리, 청소차의 후진음은 삶을 더욱 채찍질했다. (p. 20)

 

돌봐야 할 어린아이가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여유로움을 꿈꿀 수 없다. 끼니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살기 위해 먹는 수준일 터이다. 몸이 천근만근 무너질 듯 힘들어도 옆에 있는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 짓고 마는 것이 엄마가 아닐까.

 

거울 앞에 서면 언젠가부터 내가 아닌 내가 서 있는 듯하다. 윤기를 잃은 머리카락은 어느새 흰머리가 자라나고, 푸석푸석한 얼굴 위로는 기미가 군데군데 생겨있다. 첫아이를 낳고 나서까지도 피부 좋다는 소리를 듣던 나인데, 이제는 언감생심 그런 말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둘째를 배속에 품고 나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기미는 점차 개수가 늘어나더니 색 또한 짙어지더라.

 

몇 해전 여권 사진을 찍으러 간 사진관에서 유난히 개중에서 크고 짙은 기미 하나를 두고, 사진사가 '여권 사진은 보정이 안 돼요'라며 말했던 게 생각이 난다. '이게 원래는 없던 건데 아이를 낳고 나서 호르몬의 영향으로 생긴 거 같아요'라는 말로 보정된 사진을 결국 손에 들었었다. 그리고 예전의 나를 사진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어머니가 되기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 과중한 업무들은 언제 좀 편해질까. 워킹맘이든 아니든 어느 편을 택하든 무거운 마음은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그 모든 건 당신 때문이 아니다. 당신은 매우 잘하고 있다. (p. 116)

 

지금의 나는 아이들이 제법 커서 이야기가 통하니 힘든 게 사실상 없다. 아니 적어졌다. (아이를 키우면 그에 맞는 고민거리는 생기기 마련이니.) 그런데 책을 읽으니 예전 기억이 불쑥 찾아왔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여자, 엄마, 육아... 공통분모가 많은 우리들은 그렇게 가까워져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잘하고 있어, 충분히 넌 멋져.

그런 위로의 말을 나지막이 내뱉어본다.

잃는 것이 있으면 얻게 되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오늘도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가족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서_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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