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학 얼과 길 - 하늘 땅 사람 더불어 사는 살림길 평화살이
철호 지음 / 밝은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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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사람, 삶은 모두 생명살림, 살림살이라는 뜻을 담은 말이다. '살림'은 생명을 살리는 실천(살림살이)을 말하고, 살리는 실천을 하는 주체를 '사람'이라 한다. 사람이 생명을 살리며 사는 것, 살림살이를 '삶'이라 한다. 생명은 늘 다른 생명의 살림살이 덕에 산다. 동시에 다른 생명을 살리며 산다. (13-14쪽)

생명은 다른 생명의 살리는 행위가 없다면, 살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 분명한 사실은 우리 경험에서도 그러하고, 과학적으로도 밝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 '사람', '삶'이라는 말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이 참 신비롭다. 

 

인류의 지배문화는 오래전부터 살림살이를 노예, 여성과 아동, 노동자들에게 맡겨 폄훼하고, 관념의 묘미에 빠진 채 진리를 궁리하는 부질없는 짓을 해왔다. 스스로 살림살이할 능력을 잃으면, 그 일을 맡길 존재를 늘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지식문화가 늘 권력작용, 지배와 함께 가는 것이다.  하늘 땅 만물 생성변화와 사람의 오장육부, 삶의 진선미를 하나로 관통하는 뿌리가 살림살이다. (53쪽)

그래서 '살림'은 하찮은 것이 아니다. 이 시대를 좌지우지 하는 자본의 힘은 노동력을 만들어내는 대상인 사람 생명이 살아가는데 살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살림을 임금노동 외부의 영역으로 설정하여 다스린다. 살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필요하지만, 가치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빈틈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노동이 임금으로만 치환되고 노동의 결과를 알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이 곧 창조인 것을 경험을 하는 살림살이의 장이 마을과 두레다. 


근대화, 도시화, 자본주의화, 세계화 과정은 정치 경제 문화를 통틀어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제국주의 전쟁과 식민지배 속에서 기존 삶의 생태계, 생명살림터(마을)가 파괴되고, 국가와 자본이 결합한 권력이 만든 질서를 강요당했다. 이 과정에서 '분리해서 지배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지배전략이 작동해 삶의 관계가 철저히 분절되었다. (86쪽)

마을은 생명의 근본 생태 관계망이기에, 마을이 파괴되면 분절된 새채게 되어 길들이기 좋은 대중으로 전락한다. 모든 것, 생명까지도 상품관계로 바꾸는 반생명문화의 거친 물살에 쉽게 휩쓸리게 된다. '조작된 욕망과 조장된 불안'에 무기력하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노동상품이자 소비대중으로 길들여진다. (87쪽)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청년들은 단절된 채로 살아간다. 단절되어 겪는 어려움을 특화하여 해결하려고 한다. 이는 청년과 어른 세대의 단절과 갈등을 초래한다. “꼰대 짓 하지 말라”는 불문율은 어른들이 청년들이 하고픈 대로 내버려 두고 관심을 끊게 만든다. 자본과 기업은 청년을 새로운 문화의 상징으로 그리고 이를 엮어서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는 주체로 호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년들에게 특화된 복지적 처방을 한다. 중앙정부, 지자체는 물론 시민단체들까지도 그렇게 한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것 같지만, 결국은 지속 불가능한 의탁과 의존에 길든다. 

 

청년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쌓이는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게임을 하고 영상을 본다. 청년활동가의 복지를 외치며 마련된 안식월 제도를 활용하여 일본, 호주, 베트남 등으로 여행을 가서 SNS에 사진을 올린다. 활동과 일을 더 잘하겠다는 명분으로 고가의 최신 기기들을 때마다 장만한다. 기후위기를 막고자 열정을 다하고자 시간을 아끼려 즉석 음식과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다. 청년 복지정책 입안에 사활을 거는 정당에서 활동하는 청년이 결혼을 하는 데, 그 정당 동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스드메로 획일화된 결혼식에 돈을 보태는 것이다. 


생명살림터인 마을은 본래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생명살림의 근본 생태계이지만 특정한 힘, 반생명문명의 힘에 의해 매우 주도면밀하게 깨졌기 때문에 살림터인 마을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살림터를 회복할 백성의 주체적 지향과 주체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 생명살림의 관계망인 마을을 새롭게 만들지 못하면 마을을 파괴한 힘이 규정하고 제시하는 대로 살게 된다. 삶의 관계망을 파괴한 그 힘의 욕망을 마치 자기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며 욕망하는 삶이 더욱 강화된다. (103쪽)
 
반생명문화를 만드는 자본의 구심력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구심력은 하늘 땅 사람 더불어 사는 철학과 생활양식을 담는 얼을 밝히는 것이다. 하늘 땅 사람 서로 살리는 얼을 밝히고, 더불어 사는 생활양식을 만드는 것이 새 문명을 여는 실천의 중요한 과제다. (117쪽)

살림학은 자치 자족 자립하는 마을(살림터)을 일구고, 마을들이 자율적으로 서로 곱게 어우러져 생명살림과 평화를 증언하는 살림생태계, 살림문명을 일구는 운동이다. 하늘 땅 곳곳에서 일어나는 생명살림과 평화 일구는 삶을 서로 잇고 돕고 어우러지도록 하여, 살림길 평화살이를 실천하고 재생산하는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일구는 운동이다. (131쪽)
새로운 삶은 먹고 입고 자고 늘고 일하는 일상의 삶에서 판가름난다. 마을은 이러한 일상을 지어가는 생명살림의 관계망이다. 지구 전체에서 강력한 힘(구심력)을 발휘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 살아가는 새로움이 여기에 있다. 이 새로움은 구조적으로 뻗어간다. 자치 자족 자립하는 마을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림생태계를 만든다. 이것이 살림학 운동이다.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지구 생태계 위기와 무수한 전쟁, 엄청난 풍요를 누리고 있는 데 가난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현실에서 불가능할 것 같고, 꿈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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