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겨진 눈 아래에 - 브릿G 단편 프로젝트
정도경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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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겨진 눈 아래에⟫는 황금가지 출판사의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엄선된 중단편 모음집이다.

총 7인의 작가가 쓴 일곱 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제목 ⟪감겨진 눈 아래에⟫는 책에 마지막 장에 실린 작품으로, 가장 긴 분량을 띈다. 아담한 판형과 강렬한 표지. 각도에 따라 제목과 비파가 번쩍이는 유광 코팅으로 인쇄되어 있다. 총 351페이지 분량으로 종이도 얇아서 두께감도 적당하다. 이동할 때 읽기 딱 좋다. 서문이나 작품 해설 따로 없이 오롯이 작품만 실려있다.



앞날개에는 각 작품의 짧은 줄거리가 소개되어있어서, 미리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고 순서에 구애받지 않고 흥미나 관심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어서 유용했다. 일반적으로 저자 소개가 앞날개에 소개되는 보편적인 도서와는 달리 각 작품 장 표지에 제목과 저자에 대한 소개가 실려있다. 저자의 이력보다는 작품으로 기억될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일곱 작품은 '현재'의 '한국'이라는 배경에 국한되지 않고 가상의 세계일 때도 과거이거나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독자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삶이 쉽게 그려질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문득 궁금해졌다. 여성들의 비참한 삶이, 억압되어지는 욕망과 유린당하는 인권을 적나라하게 그린 이 소설을 읽은 남성 독자들의 감상이.)

작품들이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엄선된 이유가 있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개성과 메시지가 강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망선요>는 모녀의 대화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인데 독특하고 그만큼 강렬했다. 화자들의 혼란스러움이, 외면하고 은폐했던 기억을 마주하는 고통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취향과 가장 맞닿아 있는 두 작품은 이산화 작가의 <아마존 몰리>와 김이삭 작가의 <애귀>였다. 




이산화 작가의 작품 추천을 많이 보았던 터라 늘 읽어봐야지, 읽고 싶다, 기회만 엿보던 중 <아마존 몰리>를 읽게 되었고 역시나...! 일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되는데 '나'는 과학잡지기자로 여성을 폭행한 남자를 인터뷰하면서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서서히 풀리는 의문과 드러나는 진실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실린 작품 중 상대적으로 가장 유쾌한...?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 자체가 가볍다는 뜻은 결코 아니고 소재...라고 해야 하나. 결말이 궁금해져서 중간에 멈추지도 않고 한숨에 훅훅 읽어버렸다. 또 인터뷰 대상인 남자의 말과 생각 하나하나가.. 기시감이 느껴지는 날 것의, 현실적인 무언가라 웃겼다. 단편을 읽을 때 마지막 결론부의 임팩트를 좋아하는데 <아마존 몰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애귀>는 씁쓸한 작품이었다. '애귀'라는 귀신이 탈북 여성인 '너'를 관찰하는 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동남아 출신 이주 여성, 탈북 여성, 조선족 여성은 한국 내에서 인권 보호 우선순위의 가장 최하층이지 않을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살림살이를 위해, 자유를 위해, 가족을 뒤로한 채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온 이들에게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은 정말 박하고 모질다. 그렇기에 이 작품 속 그녀 또한 그 어느 땅에서도 마음 한 번 편하지 못하다. '강웨이'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마음 한편의 짐이 덜어졌길 바란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더 힘들고 어려워질게 현실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짐작할 수 있다. 읽으면서 마음 아프지만 그만큼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다.




표제작 <감겨진 눈 아래에>를 이야기 안 할 수 없다. 너무나도 적나라한 현실과 진실을 직면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자주 쉬고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표제작으로 선정된 만큼 몹시 강렬하고... 현재 한국 상황을 낱낱이 언급하며 이대로 가다간 초래될 수 있는 근미래를 다룬다. 혹자에겐 과하고, 지나치고, 비약인 가정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근미래의 상황이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닌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었던 과거를 기반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읽기가 더욱더 힘들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최악의 가정에서 약간의 희망을 선사한다. "떳떳하게" 잘 살아감으로써, 지지 않고, 맞서 싸우고, 진실을 밝히고, 더 언성을 높이며, 여성들의 "발 아래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만큼, 찬란하게 밝은 하늘 아래서" 잘 살아가보자고 말한다. 



유쾌하고 밝은 여성 서사를 기대한 독자들은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성들이 어떤 사회 속에서, 어떤 대우와 취급을 받으며 살았는지를 안다면. 내가 겪지 않았어도 타인의 불행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여성의 삶은 결코 가볍게 다루어질 이야깃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되고 책의 묵직함이 납득된다. 독특하고 개성 있고 강렬한 여성 서사 단편을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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