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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반양장) -전16권
박경리 지음 / 솔출판사 / 1993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나는 일본인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없었다. 전부터 갖고 있던 일본인에 대한 이유없는 적개심에 일본인들의 그 자신들이 일등국민이라고 하며 우리민족을 억압하던, 생체실험을 자행하면서도 대일본제국을 위한것이라며 떳떳해 했던 모습, 그리고 남경 대학살, 동경 대지진의 조선인 학살등을 보면서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 질 수 있는지가 의심되어질 정도였다. 조선 땅에서 장사를 하는 일본인이 아이에게 돈을 받고도 눈깔사탕을 아이와 부딪치지 않도록 하며 줄 때, 직접 보지도 못하는 아이지만, 소설 속의 아이지만, 설움이 밀려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난 늘 그들을 비웃어왔다. 미개한 족속? 대일본제국? 어쩌면, 그 시대의 일본인들은 대부분 미쳐있었는지도 모른다. 홍이나 길상등의 일본에 대한 분노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생각들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유없는 적개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불쌍한 민족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코 그들에게 오가다 지로가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무시했던 것에 대한 반박이 조금 거세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사실, 관동진재나 남경 대학살때의 일본인들은 동물조차 아니었으며, 다만 피를 마시며 그 상을 매기는 살인에 미친 귀기들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전체 줄거리는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 그 집의 수난으로부터 시작한다. 당주인 최치수가 죽고, 인척인 조준구에의해 집을 빼앗기고 멀리 떠나야만 했던 서희와 그 집 하인이었던, 하지만 서희와 결혼하게 된 길상의 이야기와 그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이 책 전권을 통틀어 내가 제일 좋아했던 사람은 주갑이였다. 그는 용이가 용정에 있을 때 만난 이로써, 용이나 그 아들 홍이, 길상등과 여러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자유로움, 이 말 한마디는 그의 인상에서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고 조여진 곳이 없어보이는 그의 풀어진 듯한 모습. 그런 모습이 가장 좋아보였던 것은 왜일까? 어쩌면 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평화로움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에게는 늘 희망의 빛이 넘쳤기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줄거리를 잡고 있는 인물은 서희와 길상이다. 토지의 전체 인물들이 내린 서희에 대한 평은 대체적으로 날카롭고 굳센 여자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보다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줄거리의 바깥에서 그녀를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녀는 조선의 한의 대표이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정서라고도 불려지는 한. 서희의 땅에 대한 집념은 별당아씨가 나간 이후부터 시작된 연속된 불행들 때문인지, 매우 차디차고, 그 깊이가 깊다. 어릴 적부터의 많은 고난. 그녀가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면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까지 읽고나서 마무리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궁금했다. 두만이의 다툼, 윤국이의 행방, 민우의 행방 등을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로 남겨둔 채 토지는 독립소식을 들은 장연학이 춤을 추며 마을로 돌아오는 것으로 그 끝을 맺는 것이다. 16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끝내놓고도 17권이 아쉬운 것은 그만큼 토지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것이고, 다음에는 이렇게 됬을 것이다라는 독자의 상상력을 펼치게 해주는 작가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토지를 읽고, 한동안 감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다 읽고나서 되새겨보면 일제시대를 한번 훑으면서 조선 민족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에서 수많은 보석들을 캐내어 가질 수 있었다. 비록 미군의 원자폭탄에 의해서 일본이 항복하긴 했지만 실제로 우리의 독립은 내가 캐내었던 보석들의 빛, 모든 조선인들의 한과 의지가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좋은 책이 이 세상에 있음에 작가 박경리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기회가 되면 다시한번, 아니 몇번이든 또 읽어보고 싶은 책, 토지, 그 속의 수많은 이들의 모습이 당분간 내 기억과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