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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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전한행복 #완행리뷰대회​


한국문학, 서스펜스, 스릴러, 이 세가지를 거론했을 때 '정유정'이 안나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정유정 작가의 글을 만날 때마다 숨을 고른다.

자, 이번에도 한번 잘 따라가 보자. 뒤쳐지지 말고.

<완전한 행복>

듣기만해도 아주 평온한 제목이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에 '행복'이란 글자라. 나는 조금 의아한 기분을 느끼며 첫장을 펼쳤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의 대한 이야기다. 라는 소개를 보았을 때도 나는 응? 싶었다.

내가 아는 나르시시스트란, 그저 과할 만큼 넘치는 자기애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조금 별난 사람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부류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관심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니까. 나르시시스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읽을 수록 되묻게 되는 '그녀는 누구일까' 라는 질문의 답을 서서히 알게 될때까진.

온갖 소름과 탄식과 함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작가의 말에 적힌 이 말을 읽을 때까진.

'덧붙이자면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사이코패스는 아니지만 모든 사이코패스는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스트다.'

자, 서론이 길었다. 어디 한 번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

주인공 '신유나'는 오리고기를 잘 만든다. 딸 지유는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다.

[1부 그녀의 오리들] 초반에서 지유는 엄마가 알려준 오리에 대한 지식을 술술 풀어낸다.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한때 '서지유'였던 '차지유'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엄마가 화날 때, 기분이 좋을 때, 언짢을 때 등등 엄마의 기분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자신이 행동하는 법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아이의 세계는 부모가 만드는 것이며 그 세계에서 부모는 전지전능한 신이므로.

오리고기를 잘 만드는 지유의 절대신 신유나는 변함 없이 한 가지를 찾고 바란다. 바로 완전한 행복이다.

그녀가 찾는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유나의 목표는 단 하나. 재혼한 남편과 지유와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이야기의 전체를 꿰뚫는 유나의 행복에 대한 집착은 무서우리 만큼 완벽하고 철저하다. 그래, 무섭다. 자신을 위해 타인의 행복까지 앗아가는 나르시시스트 신유나의 행동력은 말이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얘기해봐."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유나의 답은 그녀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이 답을 유나의 목표에 대입해보자.

1. 재혼한 남편과

2. 지유와

3. 셋이서 행복하게 살기

유나의 현 상황은 아직 이 목표와 멀다. 재혼한 남편에게는 전처와 만든 아들이 버젓이 살아있고 지유는 아직 전남편의 흔적인 '서지유'를 법적으로 벗지 못했고 전남편은 제 딸 지유를 보기 위해 끈질기게 유나를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나가 할 일은 하나다. 행복을 위한 뺄셈이었다.

유나의 뺄셈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가속한다.

지유를 만나러 왔다가 행방불명된 전남편. 수면 위로 떠오르는 유나의 과거. 그녀의 죽은 옛 남자들. 돌연사한 현남편의 아들.

***

정유정 작가 특유의 숨막히는 이야기 전개는 그녀의 뺄셈을 위한 사고 방식과 무서우리 만큼 잘 어우러진다. 새삼스레 말하자면, 완전한 행복의 장르는 [스릴러]다. 단 한 장면도 놓치지 못하게 하는 작가의 탄탄한 사건 구성과 그 속에서 춤을 추듯 우아하게 움직이는 신유나. 앉은 자리에서 끝장을 보게 만드는 이 압도적인 서사에 나는 숨 한 번도 제대로 쉬기가 함들었다.

완전한 행복이 더욱 공포스러운 이유는, 작중 화자가 단 한번도 유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유나의 딸, 전남편, 현남편, 친언니, 전남편의 여동생, 현남편의 친구. 모든 화자는 유나의 주변 인물이다.

그들은 유나를 지켜보고 겪어왔으며 그녀의 특기이자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인 '가스라이팅'을 당해왔다.

이들 중 몇몇은 심지어 그녀의 '오리들'이다.

그런데 왜 신유나는 행복을 덧셈이 아닌 뺄셈이라고 생각할까?

이러한 궁금증이 들때쯤, 유나의 과거가 드러난다.

지유만큼 어렸던 유치원생 유나는 홀로 할머니집에 강제적으로 보내진 시절이 있다. 엄마의 병간호로 어린 딸을 둘씩이나 돌보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현재 유나의 사고방식에 대입해보자면 유나는 가족에게 뺄셈 당한 것이다. 자신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제거당한 셈이다.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유년기 시절을, 유나는 그렇게 보고 배우고 자랐다.

"집에 있으면 할머니 때문에 숨이 막혔거든. 우리 할머니는 옛날에 초등학교 선생이었대. 학교에서 소문난 마녀 선생. 날마다 할머니가 정해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했어. 할머니한테 시험도 봐야 했고, 점수가 나쁘면 벌을 받아야 했어. 자기 같으면 그런 걸 참을 수 있겠어?"

"난 2년이나 참았잖아. 할머니까지 나를 버릴까봐."

최근 정신질환의 영향으로 범죄자가 된 자들이 모이는 치료감호소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환자들은 높은 확률로 어릴 적 가정환경이 좋지 않았다. 폭력적인 부모 아래 자란 아이는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나르시즘 부모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아이들은 낮은 자존감으로 우울감에 빠진다. 평범하게 자란 사람일지라도, 사내 따돌림이나 학교 폭력으로 사회에서 배척당해 자살까지 가는 경우도 우리 사회에서는 흔하다.

만약 그 시골집에 간 사람이 재인이었다면, 유나는 달랐을까?

"아버지가 가고나면, 할머니는 화를 냈어. 집안 사정도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군다는 거야. 나는 할머니한테 대들었지. 내가 성질이 좀 있잖아? 아니지. 누구라도 나 같은 일을 당하면 없던 성질도 생길걸. 그러면 나를 달래줘야 맞잖아? 성질부릴 때마다 다락방에 가둘 게 아니라."

답은 알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유는 그리 되지 않았다. 지유는 이겨냈다. 엄마라는 신을 거스르고 재인을 구하기 위해 엄마가 만든 방문이라는 성역을 제 발로 벗어났다. 지유의 행동에서, 나는 작은 희망을 보았다. 인간이라면 응당 갖는 그 희망의 빛을. (여담이지만, 일본어로 free를 뜻하는 자유의 발음도 '지유'다. 작가님의 의도가 들어간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유가 자신의 의지로 자유롭게 행동하는 모습에서 내적 환호를 질렀다 :)

***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요 몇 년 사이 대중에게 알려진 한 단어가 있다. 바로 '가스라이팅' 이다. 더 흔하게 사용되는 다른 말로 치환하자면 '데이트 폭력, 가정 폭력' 등이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특히나 가스라이팅의 선수다. 작중 유나는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시전한다. 이야기의 초점과 관점을 감정과 입장에 두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만들고 꾸며내는 귀재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마음따위 아무상관도 없다는 듯이.

에필로그는 신유나의 과거를 보여준다. 유나는 어쩌다가 이런 말도 안되는 행복을 찾으려 했는지, 나는 그저 안타까웠다. 동정과는 달랐다. 그녀가 불러일으킨 결과를 보면 절대로 동정할 수가 없다. 다만 지유를 생각하면 다행이었고 이 이야기가 현실같은 허구임에 또 한번 탄식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원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그 사실을 우리는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도 강요하고 있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나 자신만을 위해. 우리는 고유한 한 사람이지만, 그건 모두에게 공평한 사실이다. 나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한 국가와 사회에 소속된 일원이자 구성원이며 나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이 소설을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병자에 대한 에세이도 아니다.

정유정 작가는 우리 사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의무는 하나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中-

우리의 명치를 묵직하게 누르는 <완전한 행복>에 대한 질문은 현대 사회에 사는 모두가 한번 쯤은 생각해볼 테마다. 이 사회는 나를 우선하고 지키지 않으면 너무나 살기 힘든 곳이다. 각박한 현실에 내던져진 우리는 생존 본능처럼 나를 0순위에 둔다. 하지만 그 사실이 과연 타인의 행복을 침범할 자격을 주는 것일까. 인생을 휘두르는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코로나 팬데믹에 놓인 지금이야말로 이 질문에 답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를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누군가가 이 사회를 힘겹게 하고 타인을 괴롭게 만든다.

내 인생을 선택하는 건 나 자신이다. 그 누구도 내 인생에 관여할 수 없다.

타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다만 늘 기억해야 한다.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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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야구에 홀라당 빠져서 겨울 내내 야구 시즌이 다시 돌아오길 목빠지게 기다렸습니다ㅠㅠ 그새 못 참구 시범경기 날마다 야구장 기웃기웃거리고 있네요ㅎㅎ 목 터지게 응원하고 오는 날이면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와서 넉다운이에요. 스카우팅 리포트도 작년부터 찜꽁해놓고 사야지 벼르고 있었어용ㅎㅎ 드디어 산다!! 다 좋지만 그래도 내가 특별하게 더 좋아하는 허슬두!! 두산!! 2014 뒤흔들 허슬두!!♥ 작년엔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올해도 V4를 외쳐봅니다. 올해는 우승하자 두산ㅠㅠ 두산베어스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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