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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맥베스 - 167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ㅣ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맥베스를 읽고 이런 얘기가 우습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런 꿈을 꾼 적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음성만 들렸는데 그 음성이 나더러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한 꿈이었다. 내겐 이미 두 아이가 있었는데 말이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내겐 정말 아기가 생겼고 그리고 열 달이 지나 아기를 낳았다. 계획에 없던 셋째의 출산은 그리고 요즘같은 저출산 시대에 세 아이를 낳는 것은 마치 미혼인 처녀가 임신을 하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 들게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 전에 꾸었던, 혹은 꿈결에 들었던 그 음성 때문에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미 그렇게 정해진 일이었다고 말이다. 사실 선택은 내 몫이었는데도.
스코틀랜드의 덩컨왕에게 반역하는 자들을 제압하고 돌아가는 맥베스와 동료장군 밴쿠오 앞에 마녀 셋이 나타난다. 그들은 예언을 들려준다. “맥베스 만세! 글래미스 영주 만세! 맥베스 만세! 코더 영주 만세! 맥베스 만세! 앞으로 국왕이 되실 분!” 그러자 곁에 있던 밴쿠오가 자신에게도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고 했다. 이에 마녀 셋은 이렇게 답한다. “맥베스보다 못하지만, 위대하신 분. 맥베스보다 못하지만, 더 운 좋으신 분. 왕은 아니지만, 여러 왕을 낳으실 분!” 무시할 수도 있겠으나 누구나 이런 말을 듣게 된다면 신경이 쓰일 것이다.
그런데 맥베스는 신경만 쓴 게 아니고 그 예언을 현실화하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기까지 했다.
왕이 되기 위해, 충직했던 그가, 왕을 죽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맥베스도 고뇌했다. 옳지 않다는 생각과 살인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맥베스의 아내가 거세게 밀어부친다. 맘먹은걸 지키라고, 실행으로 옮기라고, 자기 같았음 진작 했을거라고... 왜? 이유가 달리 있었겠는가. 욕망이었겠지. 그런데 그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마녀의 부추김으로 발생한 욕망이었다기 보다는 어쩌면 원래 지니고 있던 마음이 마녀들의 예언으로 점화되었을 지 모른다.
요즘같은 시대에 아이를 셋이나 낳다니 미개해보여..라고 느끼면서도 실은 아이 다섯 낳는 게 소원이었던 나는 꿈결에 들은 음성을 핑계로 운명이었다고 나 스스로를 속인것처럼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왕이 될 거라고 했지 왕을 죽이라고 한 게 아님에도 맥베스는 적극적으로 살인을 했고 보초병에게 누명을 씌웠고 그렇게 왕이 되었다.
왕이 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죄책감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그는 잠을 도둑맞았고 환영을 보며 시달렸고 왕위의 보존을 위해 전전긍긍 하게된다 그래서 저지르는 연쇄적인 살인 또는 살인교사. 죄는 더 큰 죄를 낳으며 맥베스는 한없는 비극으로 치닫는다.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저 위대한 냅튠의 모든 바닷물을 쓴다고 해도 내 손에 묻은 피가 깨끗이 씻길까? 아니다, 내 손이 오히려 그 무한한 바닷물을 핏빛으로 물들여, 푸른 바다를 붉게 바꿔 놓겠지." 레이디 맥베스 역시 암살을 종용할때만 해도 피는 약간의 물만 있으면 닦아낼 수 있다고 했으나 일이 벌어진 후에는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으로 꿈에서조차 손 씻는 것과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여기 아직도 피비린내가 나는구나. 온갖 아라비아의 향수를 다 써도 이 작은손을 다시는 향기롭게 만들지는 못하리라." 라고 한다.
맥베스는 햄릿과 다르다. 햄릿은 어찌나 번민과 망설임과 생각이 많은지 대사도 긴 반면 맥베스는 장면전환도 빠르고 전개도 빠른 느낌을 준다.
내용도 흥미진진(?). 이제 그만! 아 왜 또..!?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욕망으로 시작된 악행은 결국 자신들을 죽게 하고서야 끝이 났다.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악을 악으로 덮는 잘못을 나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고 4막1장. 맥베스가 다시 마녀를 찾아가는 대목. 어릴때 맥베스를 읽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여서 이번에도 이 부분을 기대하며 읽었다. "빙글빙글 돌아라. 가마솥 주위를. 독이 든 내장을 던져 넣자. 서른한 번의 낮, 서른한 번의 밤 동안 잠자고 독을 뿜어내는 두꺼비야. 네 놈이 맨 먼저 끓어라. 마법의 가마솥 안에서.고통도 두 배로, 근심도 두 배로, 불꽃아 타올라라, 가마솥아 끓어올라라. 늪에 사는 독사의 살점아, 끓어라, 익어라, 가마솥 안에서. 도룡뇽 눈알과 개구리 발가락, 개 혓바닥과 박쥐 털, 독사의 갈라진 혀와 장님뱀 독침도, 도마뱀 다리도, 올빼미 날개도, 무서운 재앙을 몰고 올 마력을 위해 끓어라. 지옥의 죽처럼, 끓고 끓어라, 끓어올라라.... 용의 비늘, 늑대의 이빨, 마녀의 미라와 바다에 사는 상어 밥통과 아가리, 밤중에 캐낸 독초의 뿌리, 신을 모독한 유태인의 간, 산양의 쓸개, 월식 때 베어 낸 주목 가지, 터키인의 코와 타타르인의 입술, 창녀가 개천에서 낳고 목 졸라 죽인 아기의 손가락, 모조리 넣고 끓여라. 진하고 탁하게. 호랑이 내장을 더해, 걸쭉하게 끓이자...원숭이 핏물로 식히자..."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해 냈을까. 예언하는 마녀보다 이런걸 가마솥에서 끓이는 모습이 더 마녀 같아서 난 이상하게 이 부분이 늘 기억에 선명하다.
암튼 여기서 맥베스는 마녀들에게 또다른 예언을 듣고 오는데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맥베스에게 희망적으로 보였던 마녀들의 예언은 현실이 되면서 맥베스는 비극을 맞는다.
엄청 용감하며 운명에 맞서 계속해서 싸우지만 욕망이 불러온 화 앞에 그저 허우적 거리는 것처럼 보여서 맥베스는 읽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결국 아침이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죽은 덩컨 왕의 아들인 왕자 맬컴이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처절한 맥베스의 죽음과 대조되면서 한편으로는 이제 드디어 멈출수 있다는 안도감이 같이 드니 더 비극이었다.
같은 내용으로 초판본 표지 디자인의 맥베스도 나왔다. 1673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의 맥베스를 읽으면 더 셰익스피어 가까이 다가가 고전을 읽는 기분이 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