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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옮기는 기도 - 가장 확실한 믿음의 무기
존 엘드리지 지음, 김성웅 옮김 / 넥서스CROSS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어느 날 밤,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우리교회 집사님의
전화였는데 울면서(분노에 의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믿는다는 게 뭐냐고, 신앙생활이란 게 뭐냐고, 왜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없는 말 지어내는 사람들에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들만 늘 이렇게 힘이드냐고, 하나님은
진짜 계시냐고...
사람들은 기도한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 남편의
승진을 위해, 자녀의 안전과 시험 혹은 취업을 위해, 병을 고치기 위해,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등등. 그리고 자신이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며
섬기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자주 실망한다. 헌금도 하고 봉사도
했는데 게다가 기도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병에도 걸리고 위험이 나를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걸린 맹장염
역시 기도가 아닌 병원에서의 수술로 고칠 수 있는 것을 보며 믿음을 갖고 있음으로써의 이익 같은 게 없는 거 아니냐며 낙심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 그 상황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름의 이해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우리 삶에 개입하시지 않는다거나, 우리가 바르게 구하지 않았다거나, 아직 때가 아니라거나...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 하듯이 예수라는 복권에 숫자를 써 넣은 듯이 기도를 한다. 들어주시면 좋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성경에 나오는 엘리야
같은 사람은 우리와 다른 사람일거라 생각한다. 다니엘이나 엘리야 같은 사람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들이고 그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직접적인
개입을 많이 하셔서 기도를 더 잘 들어주신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그렇다면 왜 어떤 기도는 성취되고 어떤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는것일까. 이것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17장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다.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기도하는 우리는 누구인지, 무엇을 기도할 것인지 등등.
그런데 솔직히, 다 읽고 난 지금도 기도가 어렵다.
책에서는 뭐랄까 나로서는 좀 생소하다 싶을 만큼 권세있는 기도를 들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기도라기 보다는 선언이나 선포처럼 들려서 그랬던 것
같다. 또한 저자는 종종 책과 영화를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음.. 나 역시 C.S. 루이스를 좋아하긴 하나 모든 기독교단에서 다
논란없이 수용하기에 적절하고 합당한가에 대해 약간의 우려가 있었달까.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성별하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연합하여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 하나님 앞에 여쭙는 것, 끝까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것,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마음에 다시 되새겨보았다.
어느 날 밤, 내게 울면서 전화하셨던 그 집사님의
이야기를 듣던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짧게 기도했었다. 지혜를 구하는 기도. 한 마디도 허투루 하지 않고 실족하게 하지도 않을 대답이 당장 내게
필요해서였다. 그러나 내겐 믿음도 지혜도 없을 뿐이고. ㅠㅠ 간신히 이야기 한 것은 이것이었다. 기도하고 믿기만 하는 것으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이 탄탄대로에 안전하고 좋은 일만 생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울도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참수당하거나 십자가를 지셔야
했다고.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P. 256 바울은 초기 기독교라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싸울 때, 몹시 곤혹스러운 기도 응답이 주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을 고쳐주었다. 귀신들을 내쫓았다. 수많으 사람에게 구원을
소개했다. 죽은 사람이 그로 인해 살아났다. 하지만 그는 돌에 맞아 시체처럼 버려졌다. 세 번이나 배가 파선했다. 다섯 번은 39대의 태형에
처해졌다. 수없이 많이 불면의 밤을 보냈다. 더위, 배고픔, 추위로 고생했다. 하늘이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도 이렇게 살았다. 그는 숭고하고,
능력 있고, 승리를 국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바울은 은퇴한 후 하와이 같은 낙원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꾸지도, 그렇게 살지도 않았다.
그가 아는 낙원은 단 한 군데뿐이었다. 우리는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했다. 이 세상이 부분적이라는 사실이 섭섭하지 않은가? 기도 중 일부만이
응답된다는 사실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있는가? 진정한 성숙이 필요한 대목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 나라의 길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키우시는데 이 성장의 목표는 고통 없는
삶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품을 조성하신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도 그분을 택하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성품을 새기고, 예수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한 생명은 지속되는 것이며 기도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온전하고
완전하게 다 이루실 것임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 뜻 가운데 이루실 것임을 믿으며 기도할 뿐.
다 읽고 나니 기도가 아닌 믿음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산을 옮기는 믿음에 관한 것 말이다. 그 믿음의 가장 확실한 무기인 기도에 대해 들려주고 있는 책이다. 산을 옮기는 기도. Mo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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