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피아니스트의 뇌 - 뇌과학으로 풀어낸 음악과 인체의 신비
후루야 신이치 지음, 홍주영 옮김 / 끌레마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가 내게 음악전문지를 한
권 보내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은 온통 영어로 쓰여 있었다는 거. 그래서 그때의 나는 읽어내기 엄청 어려웠다는 거. -_-+
그래도 친구는 읽을 줄 아니까 보냈겠거니 하는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되게 열심히 읽었더랬다.
그 책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피아노를 칠 때 필요한 세 가지 C가 있다.
그것은 Concentration, Coordination,
Confidence이다."
덕분에 피아노 칠 때마다 생각한다. 맞는 말이라며 동의하면서.
이렇게 한 30여년 전, 그런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던
것에 비해 이 책에서는 피아니스트의 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피아노는 참 파워풀한 악기이다. 남성을 위한 악기라고도
할 정도로.
물론 파워라는 것은 피아노를 깨부수는 그런
힘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걸을 때
살금살금 걷는 것이 어쩌면 더 힘이 필요한 것처럼 그런 조절하는 힘이 필요하다. 당연히 강한 터치도 필요하고. 그것도 1분에 1800번이나 타건해야 하는 그런 곡을 연주할 능력과
힘도 있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수개월씩 연습에 매진해야 하는 힘도 필요하다.
그리고 피아노는 여느 악기에 비해 습득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악기이다.
게다가 대단히 다양한 신체기능을 다 이용해서 연주하게 되어 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고, 어깨는 편안하게 내리고, 등과 허리를 세운 채 바르게 앉아, 발로는 페달을 밟으며, 어깨와 팔, 손과 손가락을 이용하여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악기도 그렇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피아노는
양손을 각각 다른 음과 리듬으로 서로 다른 음자리표를 봐 가며 화음으로 연주하는 악기이기 때문에
보다 많은 집중과 연습이 필요하다 하겠다.
대부분 첫 악기로 선택하는 게 피아노인 경우가 많고
그만큼 어려서부터 꾸준히 다루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피아노를 통해 얻게 되는 이점도 많다. 가령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을 쉴 새 없이
계산하고 소리를 머리로 떠올리며 마음으로 듣는 훈련이 거듭되다 보니 공간지각력이 향상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운전면허를 따러 운전연습
학원에 갔을 때 강사 선생님이 내 전공(피아노)을 듣더니 "그럼 뭐 보나 마나 운전은 잘 하겠네."라고 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피아노
전공자들은 운전을 다들 잘 하더라나. 음... 나도 운전을 배우며 숨어있던 내 재능의 1인치를 발견한 기분이 들긴 했었다. 카레이서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니.. 그러나 지금은 도로의 차들이 무서워서 운전 안 한 지 오래됐다는.-_-+ 여하간 피아노를 오랜 세월 연습하다 보면 어떤 능력이 필요하고 어떤
능력들이 부수적으로 생기는지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내가 피아니스트들을 연구한 게 아니어서 일반화시키거나 단정 지을 수 없었던
것일 뿐.
그랬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모든 것들이 명확해졌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팔과 손가락의 훈련으로 이뤄낸 결과가 아니라 뇌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게 해 준 책이다.
저자인 후루야 신이치는 의학, 공학, 음악을 융합시킨
음악 연주 과학의 선구적 연구자라고 한다. 공학과 의학을 전공했으면서 또한 수준급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가 피아노와 신체의 움직임 부분을 연구
분야로 삼았던 것.
이는 꽤 중요한 분야이다. 왜냐하면 꽤 많은 피아노
연주자들이 혹독한 연습을 하다가 병을 얻어 피아노를 더 이상 못 치게 되는 일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나는 피아노를 못 칠 만큼이나 연습한 일은
없으나 그런 나조차도 건초염과 수근관증후군 등이 있으니 내게도 나름의 직업병이 있는 셈. 후배 한 명도 독일 유학 중에 마지막 졸업 연주를 앞두고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하다가 그만 팔을 못 쓰게 되어 버렸다. 오랜 세월의 피아노 연습과 유학 생활을 졸업연주 한 번을 앞두고 다 접어야 했던 그 후배
마음이 어땠을지.
이 책은 따라서 어느 누구보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면 좋겠다고 권할만한 책이었다.
내게도 피아니스트의 뇌와 신체 고장을 다룬 5장이 가장
도움이 되었고. 그 외의 뇌와 귀와 신체 움직임과 피아노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내용들은 흥미로웠다. 그리고 피아노를 배우긴 했으되, 심지어
전공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연습량과 그에 비례하는 보잘것없는 레퍼토리 덕분에 상대적으로 악보를 접할 일이 엄청 적었던 나는 초견연주에 정말 자신이 없는데
그래서 초견연주에 대해 다룬 대목도 관심이 많이 갔다. 하기야 자신 없는 게 초견연주 뿐이랴마는..
읽으면서 생각한 것 중에는 피아노를 통해 변화되는
뇌발달도 있겠으나 타고난 음악적 재능도 상당히 크다는 것과(그러나 책에서는 아무래도 피아노를 통해 뇌발달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더 중점적으로
일반인이 뇌와 비교하여 설명하는 게 많다.) 연습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의 뇌는 피아니스트로서는 단련이 덜 되었겠구나 하는 다소 안타까운 결론도
개인적으로 얻은 책. 피아니스트의 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