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
금태섭 지음 / 푸른숲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대학 졸업할 무렵 나는 이사를 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동생이 나더러 같이 살자고 제의를 해 와서 그렇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나와 아직 대학생인 동생. 그렇게 둘이서 같이 살 집을 구했고 드디어 이사하기 전날. 나는 새 집에 잠시 들렀는데 그 빌라는 갓 신축한 곳이라 주변 정리를 채 마치지 않은 상태였었고 그래서 세를 내 주지 않은 빈 집을 하나 잡아 그곳에서 공사를 했던 인부들이 숙식을 하고 있었더랬다.

인부들이 쓰는 말투로 들어보니 중국에서 온 조선족인 분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중 한 분만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계셨다.

20대중반이 채 안된 내가 집을 보러 다니자 내게 그 경상도 사투리 쓰시던 분이 따뜻한 표정과 말투로 이렇게 물었다.

"학생은 고향이 어딘데..?"

느낌상, 그분은 혹시 동향사람 아닐까? 하는 기대감으로 그렇게 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약간 미안한 마음으로 (미안할 일이 아니었으나 어쩐지 그분의 기대를 망가뜨리는 기분이 드는 바람에) "광주에요." 라고 했다.

내가 '고향이 광주'라고 하면 사람들은 반응이 일단 비슷하다. 숨을 고른 후 "경기도 광주? 아님 전라도...?" 하고 확인 하는 것이 먼저.

나는 또 그럼 굳이 밉상으로 "전라도 광주가 아니고 광주광역시에요." 라고 하곤 했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라고 늘 그렇게 강조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어린 마음에 시골사람, 서울사람으로 이분화 하는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그렇게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게 고향을 물은 그 인부는 내가 광주라고 대답함과 동시에 내게서 두어걸음 뒤로 훅 물러서며 얼굴 전체에 불쾌한 표정이 번졌다.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나더러 주먹을 휘두르며 "학생이면 공부나 해. 정치에 관심 갖지 말고." 라고 내뱉었다.

아니 내가 뭘 어쨌게? 하는 심정이 된 나는 단지 고향이 광주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그런 대우를 한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상하여 지지않고 대꾸했다. "정치를 잘 하면 정치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겠지요." 라고.

그러자 그분은 다시 말했다. "정치를 잘하든 말든 상관을 말라니까~!!!" 하며 때릴듯이 덤비자 곁에 있던 연변에서 오신 분이 끼어들어 그분을 데리고 나갔다.

별 것 아닌 일화에 불과하지만 내겐 두고두고 마음을 다친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인터넷이 잘 연결되는 세상이 된 후로 더 심해졌다. 이런 이야길 하면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지나쳐 망상의 수준"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사는 내내 고향을 이야기 할 때마다 "아 나쁜짓(5.18)을 했던 사람들이 사는 곳!" 이라고 하거나 빨갱이요 종북이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걸 들으며 살다보면 피해의식이 분노로,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기도 하더라.. 나쁜 짓을 했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나쁜 짓이 벌어졌던 곳이라고 아무리 말해주어도 바뀌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덕분에 나는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틀림없이 헌법에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했는데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사회인 것 때문에도 나는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나 나는 야당을 지지하며 반드시 야당이 정권을 잡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고 발달하기 위해서는 여당도 야당도 서로 견제해가며 바르게 양립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해서도 모호하고 정말 국민을 대변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의심스러운 정당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정권을 오래 잡고 있었던 여권에서는 더 이상 좋은 게 나올 것 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야당을 지지한거냐고 묻는다면 어처구니 없겠지만 사실이다.

이런 세상에 승리와 출세가 보장된 여권에 줄 서지 않고 그래도 야권 주자로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1%의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번번이 무너뜨렸다. 꼭 이겨야만 하는 선거에서도, 이길 수 밖에 없어보이는 판도에서도 이기는 걸 못 봤다. 바꾸기만 하면 정말 잘 하긴 할건가? 하는 의심도 무럭무럭 자랐다. 솔직히 무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도 너무 많아서 야권을 지지한다는 말도 할 수가 없게 됐다.

그러는 가운데 지난 대선 때 안철수가 대권주자로 나왔다. 내가 평소 존경하던 박경철님과 이 책의 저자 금태섭 변호사.. 이런 분들이 그 캠프에 계셔서 어떻게든 정치에도, 우리나라에도 새 바람, 새 희망을 불러 일으켜 희망없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주기를 바랐다. 대통령이 되어 훌륭히 정책을 수행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어도 여전히 조롱과 비난의 대상인 김대중 대통령의 올바른 명예회복과 의심스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도 정권이 바뀌면 바른 평가와 재수사 같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졌었다. 온땅을 파헤쳐 놓은 4대강 공사도 재벌기업으로 더 많이 가는 특혜도 더 멀리 가기 전에 되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었다. 남북으로 나뉜 걸로 모자라 동서로 나뉘고 빈부로 나뉘고 남녀로 나뉘고 나이로, 학벌로, 성별로... 등등 조각조각 나뉘고 있는 우리나라가 다시 그 차이를 좁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가졌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앞서간 기대를 가졌던건지(그리고 내 멋대로의 바람이었지. 야권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하여 그 모든 걸 내가 원하는 쪽으로 정치를 할 것도 아니련만) 야권은 대선후보를 정하는데에 우물쭈물 (정치를 하는 분들에겐 어떤 시간이었는지 알 수 없었으니 내 눈에는 그저 우물쭈물로만 여겨졌었다.)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고 단일화를 하는가 했더니 대선에서 보기좋게 지고 그 후로 있었던 몇번의 크고 작은 선거마다 야당은 전부 졌다. 누가 조작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도 내리 지기만 했다. 투표하자는 말을 하는 게 무색할 정도로 지기만 했다.

그래서 이 책,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를 읽을 때의 내 심정은 정말이지 한숨이 백만번쯤 저절로 터져 나오는 그런 마음으로 읽었는데 이 책 참 솔직하다. 저자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기술하고 거기서 실패했던 야당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 잘 돌아보고 있는 책이다.

그때의 일을 알고 싶거나 야당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를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보면 좋겠다.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참 조심스럽다. 한 마디 잘못 꺼내면, 자신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면 다툼을 피할 길이 없기도 하고 때때로 안정적인 삶이 위협을 받기까지도 하는 것 같다. 그러니 함부로 읽어라 마라 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정치인이든 아니든, 관심이 있든 말든 많이들 읽고 생각도 좀 해 보고 관심도 더 가져보고 같이 고민도 진지하게 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음 참 좋겠다...

이 책은 진지하고 진심어린 프롤로그로부터 이어지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앞의 두 장은 대선 당시의 일들을, 세번째 장에서는 정치의 미래에 대해서 쓰고 있다. 읽으면서도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도 조바심도 일었는데 그 일들을 겪은 당사자들은 오죽했겠나 싶기도 하고 말 한 마디, 문자나 전화 한 통화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미덕은 선거에서 진 이유를 외부의 조건에서 찾아 핑계대는 식으로 둘러대고 있지 않다는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기는 야당이 갖춰야 할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있는데 ... 야당은 정말 그거 할 수 있나?

오랜 야당 지지자가 이런 슬픈 질문을 던져야 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음을 그들이 통감하고 (그럼에도 야당에 몸담고 있는 그들을 나는 존경한다.) 이기는 야당이 되어 주기를, 그리고 이긴 후에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고, 그것을 할 줄 아는 능력을 부디 가져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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