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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최승근 지음 / 두란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날마다 따뜻한 품에 안아 주시고 거룩한 이시간 예배당에 나와서 주님 말씀 듣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부르는 찬양이 어릴 적 주일 학교 다닐 때 늘
부르던 입례송이었다. 지금도 교회에 가면
다른 곡에 앞서 이 노래부터 떠오른다.
어릴 땐 교회와 성전만큼이나 예배당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 교회는 예배하는
곳이다.
나는 4대째 크리스찬인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집이
교회이고 교회가 집인 듯이 그곳에서 배우고 친교하고 먹고 나누며 자랐다.
교회에는 나의 지나간 많은 시간과 기억들이 들어있다.
그만큼 친숙하고 친밀한 장소이지만 예배당에서 만큼은 대단히 엄격하고 엄숙하며 경건하게 예배했다.
어릴 때 우리교회 분위기는 침 넘어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하고 숨 소리마저 죽인 엄숙함 속에서 예배했었다.
어린이 예배는 물론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천진함이
가득했지만 증조할머니부터 온 식구가 다 예배하는 대예배에 자주 참여했던 내게 느껴졌던 대예배의 모습은 그랬었다. 다들 평소와 다른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나아왔으며 잡담을 나누거나 떠드는 분위기도 없었고 피아노와 오르간 그리고 현악기로 반주하는 찬양대의 아름다운 찬양이 울려퍼지는 경건한
예배였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복장, 다양한 악기(드럼, 기타...), 박수치며 하는 찬양 등등.
사실 내게 있어 그런 모습은 참 낯설었었다. 찬송가를
그렇게 시장통에서 부르듯이 디스코박자로 빠르게 목청껏 불러대는것도 못 마땅했고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온 자리에서 찬송가보다 복음성가
위주로만 부르는 것도 좋지 않았었다. 통성으로 고래고래 부르짖어야만 하나님께서 더 응답해주신다며 소리내 기도하라는 것도 힘들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그러한 변화 가운데서 나는 많은 갈등을 했었다.
그러나 나 홀로 그런 변화들을 거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너무나
보수적이며 고리타분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나도 새로운 예배에 익숙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더 하는 것 같다. 예배 중에도 수시로
휴대전화가 울리는가 하면 심지어 앉은 자리에서 통화를 하기도 하고 바스락 거리며 사탕을 까먹고 화장실 들락거리고... 예배하러 나온 사람들이
맞는가 싶을 정도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미국에서도 크고 유명한 교회를 가 본 적 있는데
그곳은 거대한 극장 같았다. 한편의 공연을 감상하듯 예배를 "보고" 나오면 관련 서적들이 즐비한 크고 좋은 서점도 교회 내에 있고 다과와 식사
혹은 차를 마실 수 있는 푸드코트와 카페도 있었다.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을 키즈카페에 버금가게 마련해 놓은 교회도 있었고... 워낙
현대인들이 교회를 떠나가다보니 그런 시도들을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교회 안에 카페가 있거나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본다. 그것들이 나쁘다고만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들이 주류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예배하는 곳에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고 가장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예배다.
또한 교회가 추구해야 할 것도 더 크고 더 높은
건물과 더 많이 모이는 덩치만 큰 교회여서도 안되고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 또한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예배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그
사랑과 은혜가 넘쳐 소금과 빛이 되는 삶을 살며 삶이 예배가 되고 저절로 섬기는 삶을 살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크리스찬다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새벽기도, 주일
예배, 주일 저녁 예배, 수요 예배, 금요기도회, 철야 기도.... 등등 숱한 예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른 예배자가 드물고 바르게 예배할 줄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고 그들이 모두 그만큼 많은 예배를 드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악하고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비그리스도인보다 못한 무늬만 그리스도인들도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절박한 심정으로 읽었다.
<예배>
예배...? 우리가 늘 하는 그 예배? 그것에 대해
새롭게 할 말이 있다는 건가?
이 책을 읽으면 우리의 예배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올바른 예배자인가, 나는 예배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그렇게 예배하고 있는 가 ... 하는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과 기대감으로.
이 책에서는 예배학자 최승근 교수가 6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왜 예배를 통해서 변화되지 않을까, 예배는 무엇인가,
예배는 어디에서 드리는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는가, 누가 예배를 드리는가, 언제 예배는 은혜로워지는가...
읽으면서 느낀 건 예배하는 우리 평신도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예배를 집례하고 인도하는 인도자, 설교자, 목회자분들이 읽기에 더 적합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같은 평신도가 읽으면 예배하는 자세와
생각을 바르게 갖게 될 것이지만 나 혼자만의 변화에 그칠 뿐인것에 비해 목회자분들이 읽으면 더 도움이 될 듯해서다. 그러나 성도들이 하루 아침에
180도 달라지고 은혜가 넘쳐나는 예배법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이고 원론적이며 그래서 쉽지 않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쉽지 않고 눈에 띄는 변화를 단번에 얻을 수 있는
비법이 없다고 하여 이렇게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다시 예배를 회복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예배 인도자들은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중요한 의례로서의 예배에 대해서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물론 중요한 것은 각각의
예배자이니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삶의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께로 바르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책은 빠르게 읽히지만 얼핏 빨리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특히 예배와 신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가 부분이
내겐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바르게 예배하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아가는 예배자들 또한 많아지기를,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