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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가 있던 자리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첫 페이지의 몇 문장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마음이 쿵 떨어졌다.
'아니야, 이건 아니지. 이렇게 시작하면 끝을 어떻게 맺으려고······'
해나의 여섯 살 난 아이의 돌연사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시작과 동시에 나를 해나로 만들어 버렸다.
해나의 마음으로 겪게 된 아픔. 그걸 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랑하는 자녀를 돌연사로 잃은 어미가 무슨 수로 마음을 추스르고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참담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었다.
지난해 4월. 수많은 해나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생겨났고 그것을 지켜봐야 했던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해나가 되었다.
물론 세월호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심지어 많이 벌어진다.
그 어떠한 명백한 원인과 과정이 있더라도 이별이란 이해할 수도 없고 어려우며 아픈 법이다.
살다 보면 불가피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이별들도 있지만 그것을 감내하는 것은 100세 된 노인이 80세 된 자녀를 먼저 보내는 일이라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이란 그런 것이라며 아픔을 삭이기 쉽지 않다.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 도대체 왜. 제발 아니었으면.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지. 거짓말이었으면.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그날 그렇게 하지 말걸. 내가 그날 이런 말을 해서 그랬을까. 내가 그 전날 밤 꿈을 불길하게 꿔서 그랬나. 그런 꿈을 꿨다고 말하고 가지 못 하게 할걸.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말해주지 못했는데.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표현해주지도 못했는데. 아니 내가 해 준 게 뭐가 있지.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하지 말걸. 이럴 줄 알았으면 저렇게 할걸. 원래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해볼까.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적 없다고 해볼까. 아니야 미안해. 너는 아름답고 고마운 존재였는데. 너를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다니 내가 미쳤었나 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겠어.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이유라도 알아야겠어. 너는 가고 없는데 나는 숨 쉬고 먹고 살아가고 있다니 그럴 자격이 내게 있을까. 미안해. 돌아와. 나도 같이 가.... 의 끝없는 반복.
이 무시무시한 고통의 쳇바퀴 속에서 빠져나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이 과정이 쉬운가? 나는 궁금하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군가를 잃은 사람은 극심한 상실감과 슬픔 속에서 자신의 실제 감정과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도 감을 못 잡은 채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르면 잊힌다고들, 옅어진다고들, 시간이 약이 된다고들 말하지만 살아보니 시간이 약이 된다기보다는 그저 덮어두게 되는 것 같다. 이해가 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게 아니고 그냥 그런 사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고 그대로 건드리지 않는 거 정도?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위도 위로가 되지 않고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알고 보면 너무나 세상에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지만 당장 그 순간에는 자신의 아픔이 가장 크고 깊은데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겸손해지는 것 같다. 다들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는 애틋함, 동지애로.
어떤 이야기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위로 하나마나 거나 위로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끝없이 말해주고 외롭지 않게 지극히 돌보아주어야 한다.
<해나가 있던 자리>는 바로 그 위로다.
들추고 싶지 않은 아픔이었지만 끝나지 않은 그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 해나가 있던 자리를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따뜻한 위로는 넘치지도 않고 조심스럽고 그리고 고맙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을 빌려 마음을 읽어주고 손을 잡아주고 등을 쓸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데 다만 그러려다 보니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을 그리 길게 살아간 사람들도 아닌데 다들 통달한 사람들처럼 혹은 현인들처럼 보여서 비현실적인 것도 없진 않다.
그러나 지난 일 년 그리고 그 외 무수한 해나들에게 이런 위로가 언제 있기나 해 보았는가를 생각할 때에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이 이야기를 위로를 못해줄망정 조롱을 해 대던 사람들과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무관심했던 사람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다시 떠올려야 하는 아픔과 그 아픔을 직시하는 게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안으로 단단히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는 해나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