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장-폴 디디에로랑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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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랑에 잘 빠진다. 사랑하는 감정을 잘 느끼고 흠뻑 그리고 순식간에 빠져드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어떤 매력에 반하여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 실제로 희생과 헌신이 따르는 행위로 책임을 다하며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에 빠져드는 순간은 주로 책을 읽다가, 아니면 음악을 듣다가 일 때가 많고 책 속의 주인공이나 연주자 보다는 책의 작가나 작곡자에게 빠져드는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한때 베토벤을 연주하다 말고 시대를 거슬러 시간을 되돌려 베토벤을 찾아가 가정부 노릇이라도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더랬다. 가정부가 하고 싶었던건 물론 아니었고 괴팍한 베토벤이 나를 사랑해 줄 것 같은 느낌은 안 들어서, 그러나 나는 그에게 뭔가를 꼭 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들어서 생각했던 게 가정부였달까..

책을 읽을 때도 그 작가에게 빠져들 때가 많다. 드라마를 보다말고 드라마 작가에게 빠져들기도 하고. 드라마 작가가 여자일때도 많더만 상관없이 사랑에 빠지곤 한다.

6시27분 책 읽어주는 남자. 이 책은 제목이 참 시선을 끌었더랬다. 하지만 관심을 끌었을 뿐 솔직히 나는 책 읽어주는 남자에겐 큰 매력을 못 느낀다. 책은 내가 홀로 조용히 생각하며 읽는 게 좋지, 누가 읽어주는 건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래서 그다지 썩...

그런데 책의 주인공은 정말 같은 시각, 전철에서 늘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럼 그 읽어주는 책은 본인이 쓴 글이거나, 굉장한 감동을 주거나 이슈가 되는 유명한 글이거나, 오래도록 사랑받는 고전이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 주인공 남자는 책 파쇄하는 공장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매일 수톤의 책을 (잘 안팔려 버려지는) 파쇄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파쇄기 안에서 미처 잘려나가지 않고 살아남은 책의 낱장을 꺼내어 그것을 모아 들고 다니며 매일 같은 시각, 전철을 타고 가는 길에 읽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읽어주는 낱장들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었고 저마다 별개의 책, 별개의 내용이자 일부였던 것인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가 읽어주는 글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어느날 이 남자는 USB 하나를 습득하게 되고 그것을 집에가서 열어본 후 문서들이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 문서는 어느 쇼핑몰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어느 여성의 일기장임을 알게 되면서 본 적도 없는 그 여성을 좋아하게 되고 그녀를 찾는다.

설정이며 내용이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 이야기는 있을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전혀 없을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소재로 쓰여져 있는데 읽는내내 잠깐씩 나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다시 책을 읽곤 했다.

가령 이 책에서는 꽤 길게 이 책의 주인공 남자의 이름을 두고 이야기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 주인공 남자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 이름이 내겐 생소한 프랑스인 이름이었는데다 듣기만 해서는 의미도 모르고 어떤 뉘앙스도 느껴지지 않는데도 이름 자체를 두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대목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가기 위해서 불리워지는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느라 책을 읽다말고 생각에 잠기게 되기도 했고, 또 책 파쇄기를 묘사한 장면에서도 그랬다.

책 파쇄기와 함께 일 하는 사람이면서도 그 파쇄기를 무슨 괴물이나 되는 듯이 묘사를 해 놓았는데 읽으면서 느끼기를 파쇄기는 마치 책이라는 생명체를 잡아먹는 괴물과 같다고 느껴졌다고 할까.

그러니 거기서 살아남은 몇장을 고이 들고 돌아가 사람들에게 이어지지도 않는 그 낱장들을 굳이 소리내어 낭독해서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라도 하는듯한 인상을 받았던 것.

이렇게 책을 읽는 내내 곳곳에서 늘 무심코, 무심하게 넘겨왔던 일들을 다시한 번 생각해 보는 소소한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USB를 통해 읽게 된 글만으로 글의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는 마음도 물론 이해하며 읽었고.

책 읽기와 글쓰기라는 것을 통해 일상을 특별하고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감각적이고 표현도 재미나고 미소짓게 되는 사랑 이야기도 들어 있는 책.

이 글의 작가인 장 폴 디디에로랑에게는 내가 따로 사랑을 느끼게 되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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