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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선물 - EBS <부모> 김영훈 박사가 체험한 효과
김영훈 지음 / 국민출판사 / 2014년 1월
평점 :
아빠의 선물. 내가 아빠도 아닌데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바쁜 아빠를 대신하여 내가 아빠 노릇까지 (그게 가능하다면) 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건가?
둘째를 낳은 후 둘째가 아직 6개월 정도밖에 안되었을 때 남편은 <아버지 학교>에 참가를 했었다. 아버지 학교니까 남편만 참여하여 한 사흘쯤인가 일주일인가를 강의를 들었는데 그 마지막 날엔 모두 자기 아내를 데려오라고 했다며 함께 가자고 권했다.
우린 그때 미국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는 사람도 없다 보니 갓 두 돌을 넘긴 어린 딸과 고작 6개월밖에 안된 젖먹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아이들은 너무 어렸고 남의 손을 타 본 적이 없었고 남에게 하루 동안 어린 두 아이를 맡긴다는 게 대단히 미안한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된단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 학교가 개설된 곳에 가까이 살던 남편의 선배님께 어린 두 아이를 부탁드리고 내가 강의 중간 휴식시간마다 나와서 아이들 밥을 먹이고 수유를 한 후 돌아가 다시 강의를 듣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참 못마땅한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 학교라는 취지도 좋지만 그럼 그동안 아이들은 누가 돌보란 말인가 이걸 위해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번거로워지고 아이들은 생전 첨 엄마와 떨어져 내내 울었는데 맡아서 아기 봐주시던 남편의 선배님은 (나이 50이 넘으신 남자분. ) 또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말이다...
하지만 다행히(?) 강의는 좋았다. 거기 가 있는 동안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 배운 것도 많았고 그 후로 남편과 나는 많이 바뀌기까지 했다. 아버지 학교 강의에서 맨 처음 들었던 말이 인상 깊게 남아 있는데 그건 "바쁜 아빠는 나쁜 아빠입니다."였다. 그 말 한마디에도 이미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님에도 정말 이 땅의 아빠들 중엔 너무 바빠서 의도치 않게 나쁜 아빠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바쁜 사람을 부지런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여기는 관념도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도 참으로 많고. 어쩌다 쉬는 시간에도 쉴 수 없는 아빠들은 무슨 죄인가. 아빠들로서는 해 본 적 없는 육아가 낯설고 힘들고 아이들 역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뭔가 모르게 불편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EBS 부모에도 많이 나오는 김영훈 박사님이 쓴 책으로 김영훈 박사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소아 신경과 전문의다. 따라서 아이에게 꼭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엄마가 아닌 아빠만이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쓰고 있다.
4개의 장으로 나누어 첫째 장에서는 놀이의 선물을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선물로 장난감을 준다는 게 물론 아니다. 아이와 충분히 놀아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의 제목이 아빠의 선물이므로 놀이를 선물해 주라고 쓴 것이고 아빠들이 해 주는 몸놀이의 중요성과 좋은 점 들을 들려준다.
두 번째 장에서 하는 이야기는 습관의 선물이다. 습관의 뇌에 대한 설명부터 습관을 들여주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나에게도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해 주면 되겠다는 뜻이 아니라) 도움이 되었다.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도 중요한 이야기였다는 뜻.
세 번째 장에서는 관계의 선물을 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관계는 아빠와의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여 문학, 경제, 철학, 수학, 과학 등을 망라한 관계까지 넓혀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열정의 선물을 해 주라고 쓰고 있다. 딱 봐도 좋은 이야기들, 그런데 딱 봐도 너무너무 어려운 이야기들...
모두에 밝혔듯이 아빠들이 바쁘다고, 바쁜 아빠가 아무리 나쁜 아빠라 하더라도 의도한 바가 아님에도 아빠들이 바쁘다고 그게 아빠들 탓만은 아니라고 쓴 건 이 때문이었다. 딱 봐도 좋은 이야기지만 딱 봐도 어려운 이유는 그럴 여건이 안된다는 뜻이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마음만 있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정말?
우리 아버지는 댐, 저수지, 농지정리 등의 일을 하셨었다. 설계, 감독 등을 하셨기 때문에 현장 근무를 많이 하셨다. 출장도 잦았고 때로는 아예 집을 떠나 현장에서 사셨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오후) 집에 오셔서 다음날 교회에 가셨다가 월요일 새벽 다시 현장으로 가셔야만 했다. 아버지는 나어릴 때 집에 안 계실 때가 많았다. 아빠를 따르고 좋아했지만 그리고 아버지는 함께 하는 시간들 동안 최대한으로 우릴 위해 애써 주셨지만 그 시간이 결코 길지 못했고 나중에 아버지께서 여유가 생기셨을 무렵엔 우리 남매가 학교생활로 바빠졌었다.
이 책의 내용에 크게 동의하면서도 이 책의 실효성에 대해선 그래서 자신이 없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아빠대신 해 줄 수는 있지만 아빠를 대신해 주는 게 맞는 걸까 하는 데에 대해서는 역시 확신이 없다.
남편은 미국에서 살 때엔 아이들과 굉장히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해 주었었다. 그러나 귀국 후엔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해졌다. 같은 사람임에도.. 그 사람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닌 것이다.
솔직히 이 땅에 사는 많은 아빠들은 이 책의 내용을 몰라서 못한다기보다는 알아도, 원해도 못할 때가 많고 사실은 이 책을 진득하게 앉아 읽을 여유도 없을 것 같다. 그게 문제...
서로서로 도와가며 양해해가며 아이들에게 가장 맞고 좋은 선물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사실은 그게 아빠들 본인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것만큼은 분명하다. 결국은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
책의 내용을 실천해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정말 좋겠다. 그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니 내가 심통이 난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