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주를 느끼는 시간 - 밤하늘의 파수꾼들 이야기
티모시 페리스 지음, 이충호 옮김, 이석영 감수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어릴적 나의 부모님께선 무척 바쁘셨다.
아버진 댐과 저수지 공사관련 일을 하셨기 때문에 주로 현장에서 사셨고
30년 교직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께선 내가 자라는 내내 고3 담임을 맡고 계시느라 바쁘셨다.
부모님을 뵐 수 있는 시간은 해가 없는 시간이나
주말 아니면 방학과 휴가기간 정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의 충만한 사랑을 받으며 부재로 인한 결핍을 느꼈던 것 같지는 않다.
함께 한 시간의 양보다 함께 한 시간동안의 질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부모님을 주로 해가 없는 어두운 시간에나 뵙기 일쑤였고
그제야 시간을 낼 수 있는 부모님은 가끔 우리 남매를 데리고 밖으로 산책을 나가 주시거나
그 캄캄한 밤에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참 따스하게 남아 있다.
몇번 되지 않았을 그 시간이었지만 마치 어린 날엔 내내 그랬던 것처럼.
그러다 부모님께서는 "아~ 저기 저 하늘 한번 봐라. 별이 참 많고 별빛이 너무나 아름답구나!" 하시곤 했다.
하늘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정작 하늘을 보기위해 하늘을 올려다본 일이 많지 않았던 어린시절.
부모님이 가리키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떨땐 푸르고 어떨땐 까만 밤하늘에
총총히 떠올라 있는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괜한 기쁨과 감동을 동시에 느꼈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께선 별자리를 가르쳐 주시곤 했는데
카시오페아, 북두칠성, 북극성, 오리온 등을 부모님께 배웠고
그 덕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우리 남매를 보시며
나침반 보는 법이며, 천체 망원경을 사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어딜가나 하늘부터 본다.
별이 보이지 않는 대낮에도 저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 있음을 생각하며.
얼핏 보아도, 그리고 요즘처럼 밤하늘에서 별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어도
오래도록 하늘을 응시하고 있으면 하나씩 둘씩 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걸 몇 안된다고 생각하며 헤아리다보면 사실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별들이 우주에 존재하고 그 많은 별들이 일정한 규칙을 갖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며 존재함을 생각하다보면
그 가운데 작고 작은 지구라는 별, 그리고 그 가운데 아시아라는 대륙
거기서도 귀퉁이에 있는 조그마한 우리나라 속 우리자신을 느껴보게 된다.
나의 존재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보면 - 그렇게 우주를 품고 나를 생각해보면 -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보인다.
물론 나 자신도 겸손해진다.
이 책은 나처럼(?) 우주를 동경하고 사랑했던 과학저술가 티모시 페리스의 글이다.
우주에 대해 쓰고 있지만 과학책, 천문학책은 아니고
소설은 더더구나 아닌 실제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입장에서 쓴 책이며
수필이라기엔 무게감이 크고 깊은 오히려 학술적인 책이다.
우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읽으면 우주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길지도 모르고
하긴 어떤 경우엔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땅 위의 세상만으로 어지럽고 복잡하여 지루하고 어렵게 느낄지도 모를 일.
부록과 주석까지 포함하여 53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내용이 가볍진 않지만
어렵지도 않으며 아름답고 흥미롭고 배울 수 있는 점들도 많이 담겨 있다.
부록까지도 온갖 정성을 들여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쯤 이런 대목이 있는데, 그건 왜 낮에는 별을 볼 수 없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낮에는 별을 볼 수 없는 이유를 우리는 다 안다.
그건 태양이 밝기 때문에 그 빛에 가려져 별들을 육안으로 보기 어려워서다.
그런데 이 책에 이렇게 적고 있다.
<빛이 반드시 사물을 밝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어떤 것을 환히 밝힘으로써
우리가 보려고 하는 것을 가린다는 개념이 아주 흥미로웠다고... >
책을 다 소개하긴 어렵지만 이런 문장 하나하나가
책을 잠시 덮고 또다른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들을 제공해 주었던 것 같다.
우주의 저 많은 별들은 우리눈에 반짝 하고 빛이 비춰 닿기까지 수억 수백만 광년을 날아온 것이곤 한다.
그렇다고 생각해보면 어쩌면 지금 내 눈에 반짝거리며 보인 저 별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은 별일수도 있을지 모른다.
별의 수명을 마치고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별이
반짝이며 수백만 광년을 날아와 우리눈에 아름다운 밤하늘을 수놓았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이름모를 별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뿐더러 우주의 신비로움과 함께
결국에는 신의 존재에 까지 생각이 다다르곤 한다.
책을 펼쳐들고 맨 첫장을 넘기면 이렇게 쓰여 있는 문장을 만날 수 있다
머나먼 별들이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태양과 달과 지구와 모든 별자리의 관계가
당신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월트 휘트먼
그 질문을 마음에 담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해 보았는데
나로선 절대자의 존재와 사랑가득한 질서 나 자신의 크기 그리고 겸손에 대한 것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문장 아래엔 블랙 엘크의
모든 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라는 문장도 함께 쓰여 있는데
그 말이 옳다.
모든 곳이 세계의 중심이며 모든 인간도 그 하나하나가 우주이다.
세상이 드넓고 광활하다 한들 결국엔 우리 존재 하나하나가 태어나는 시간이 각자에겐 우주의 시작이며
그의 죽음은 그 각자에게 우주의 끝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렇다고 볼때 사람 하나하나의 존귀함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분량이 길고 덕분에 책도 무겁지만 읽고 나면 행복하고 벅찬 기분이 드는 책.
우주를 느끼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