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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야구 - 실패는 철저히 버린다, 오효주와 이정후의 깊은 면담
오효주.이정후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3년 12월
평점 :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게 된 이정후 선수와 아나운서 오효주의 대담 형식으로 쓰인 책이다. 문답과 단상 그리고 화보 같은 이정후 선수의 사진들이 담겨 있다. 아직 어리고 현역 선수인데 이렇게 책이 나오다니, 이정후 선수 대단한 거야 익히 알고 있는 바이지만 벌써 책이 나올 정도인가 하는 생각으로 읽어보았다가 책으로 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평범한 이야기들 같지만 정작 이렇게 살아내려면 결코 평범하지도 쉽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들려준다.
이정후 선수는 그 유명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 선수의 아들이다. 지금은 이정후 선수가 워낙 잘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종범의 아들이 아니라 이정후의 아빠가 이종범이라고 말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지만.. 이종범 선수는 아주 훌륭한 야구선수였다. 대단히 잘했고 잘해서 믿음직했다. 재능도 분명 있었겠지만 정말 많은 노력을 하는 좋은 선수였다. 그래서 이정후라는 선수가 이종범 선수의 아들이라길래 이정후가 신인이었을 때 나는, 그가 아빠를 닮아 운동신경이 좀 있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기대보다 훨씬 잘했고 놀랍게도 여태껏 꾸준히 잘하고 있다. 남들 다 겪는 슬럼프도 이정후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야구 경기 중에 이정후 선수를 보면 대담하고 평온해 보인다. 국제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나설 때에도 나 같으면 피하고 싶은 고약한 타석에 서는 것을 오히려 원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실제로 이정후 선수는 자신에게 그 타석이 돌아와 기회를 얻기를 바랐다고 인터뷰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나는 이정후의 그런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고 궁금했었는데 책을 읽으며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이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남들보다 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지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하는 선수였던 것이다. 아빠 잘 만나서,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 그 자리까지 가고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정후 선수가 워낙 잘 하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기라도 하다는 듯이 오해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인상 깊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면, 타격왕 경쟁을 할 때 매일 또는 매 타석 경쟁자들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신경이 쓰이죠. 그런데 경기에 막상 들어가면 생각이 안 나요. 지키려면 어쨌든 제가 안타를 쳐야 하거든요.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는 선수들이 못 치길 바라면 안 돼요. 단순한 거죠. 내가 쳐야 지킬 수 있고, 내가 쳐야 넘을 수 있어요. 제가 일단 치면 경쟁자들이 잘 치든 못 치든 상관없는 거예요."(p.48) 내게 부족한 부분이라 그랬는지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약간 부끄러웠다.
홈런 친 타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라이더 하나 커트하고, 또 하나 던진 슬라이더 실투를 잘 노려쳐 홈런을 만들었습니다. 그 상황을 더 자세히 직접 들어볼 수 있을까요?라는 이 질문에 이정후 선수의 답변은 "실투라기보다는 좋은 코스에 잘 들어온 공을 제가 잘 쳤다고 생각합니다. 파울이 났을 때는 제가 가지고 있는 리듬으로 타격을 하지 못했고, 홈런이 됐을 때는 내가 원하는 대로 준비를 했기 때문에 좋은 타구가 나온 것 같습니다." (p.59~60) 이 대답을 통해 나는 구석구석 들어오는 수많은 구위의 공을 쳐내기 위해 이정후 선수가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노력들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굴곡이 없다는 주변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두 배, 세 배 더 노력했어요." (p.70) 당연하게 얻어지는 것은 역시 없다. 열심히 하고 많이 한다고 해서 야구를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야구는 단체전이지만 개인의 기량도 아주 중요한 스포츠다. 굴곡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가 되려면 정말 부단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여전히 젊은 나이 아닙니까? 어리광을 부려도 이해가 되는 나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희는 야구선수인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잘하면 잘한 만큼 대접받고 사람들도 인정해 주고 내가 꿈꿔온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내가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고 하소연할 필요는 없죠. 그냥 잘하면 좋은 거예요. 대신 잘하면서 관심이 커질수록 그에 맞는 책임도 감당해야 하고요. 프로야구 선수이면서 개인 사업자들인데 받아들여야죠."(p.79) 만날 나이 핑계 대며 사는 나는 마구 부끄러웠다. 나중에 아들이 생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어떤 일을 하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올바른 목표 의식을 삼으면서 앞만 보고 계속 걸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어떤 일이 생기든, 목표만 바라보고 전진했으면 좋겠어요. 다가오는 결과 역시 순리대로 받아들이고요. 제가 그렇게 살아왔거든요."(p.216)
왜 이 책의 제목이 긍정의 야구인지 읽다 보면 끄덕이게 된다. 사실 아무래도 현재 가장 잘나가는 선수의 책이니 적당히 미화되어 있다는 느낌도 있기는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이정후에 대해 좋은 면만 보고 싶은 것은 이종범 선수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더 크고 넓은 무대에 나가 뛰게 되는 이정후 선수가 이제까지 해 왔던 것처럼 재미있는 야구를 하며 오래오래 잘 뛰어주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