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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 성숙하게 나를 표현하는 감정 능력 만들기
전미경 지음 / 지와인 / 2020년 11월
평점 :
"가족 공동체의 힘이 강한 사회에서는 가족을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따라야 하는 대상이라고 여깁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일하게 생각할 것을 강하게 요구받습니다. 따라서 가족들이 함께 가게를 한다거나 기업을 운영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집단을 중시하는 동양권 문화에서, 특히 한국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감정적 폭력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족은 상부상조하는 운명 공동체'라는 가족 판타지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 가족 판타지를 잘 유지하기 위한 정서로 '죄책감'을 많이 이용하지요." (p.216)
이 내용부터 언급한 이유는 내가 그러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내 친정은 자율성이 보장된 가정이었고 그럼에도 대상 항상성(object constancy)이 강해서 자연스럽게 소속감이 형성되었으며 그랬기에 안정적이었다. 그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는 가정을 벗어나서도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거나 소속되지 않아서 외롭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반면 의도치 않게 그런 사회에 속하게 되었을 때에는 불편함을 느끼며 힘들었는데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으므로) 그럴 때 서로가 원하는 바를 잘 소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이 전까지는 내가 느끼는 불편이나 부당함이 그릇된 것인 줄 알고 소통으로 풀어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무리 불편해도 속한 사회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만이 마땅한 일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뒤로는 늘 부당함을 느끼며 속만 앓았던 것. 내 감정을 내가 억누른 채 관계를 맺으려다보니 사소한 일들이 상처가 되고 서로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기 어려우니까 감정의 교통정리가 안되어 타인과의 소통도 나 자신의 마음도 들여다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는데 정신의학과 의사가 쓴 글이며 여기서 주로 다루는 것은 '감정'이다.
감정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이라서 누군가가 억지로 혹은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자기 자신조차도 말이다. 내가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일이 있지 않던가. 주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더욱 그런 것도 같고.
이 책에서는 감정을 정체성과 관련이 깊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가치관도 반영하는 것이 감정이라고.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적절히 대응하는 감정 능력이다. 성숙하게 나를 표현하는 감정 능력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나의 자유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솔직하게, 상처 주지 않게 말이다.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이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나와 남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잘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은 이렇게 세상과의 소통 도구이므로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감정을 통해 남과 잘 소통하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고 그것이 감정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여기서 잠시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면 감정(emotion)이란 내적, 외적 사건에 의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일어나는 신체적, 심리적 반응으로 분노, 슬픔, 두려움, 기쁨, 사랑 등을 이른다. 이에 반해 기분(mood)은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지속되는 주관적 느낌의 흐름으로 특별한 이유 없이 생기기도 하며, 즐거움, 불쾌감, 우울함 등으로 정신의학에서 주로 다루는 것은 기분에 속하는 문제들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는 왜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어려운 것이 나 자신인가, 생각이 다르다고 왜 마음까지 다치게 될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가 알아채는 방법, 사람들과 거리는 두는 게 정말 좋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 나쁜 일은 왜 쉽게 잊히지 않는가에 대해, 왜 어느 특정인 앞에만 가면 어린아이처럼 굴게 되는가에 대해, 싫어도 감정 노동을 피할 수 없을 때의 대응방법, 나의 기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 외상 후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 타인을 공감하며 이끄는 사람이 되는 것, 감정 조절 능력 높이기에 대해, 도구적 정서 활용에 관해, 소속감에 목매지 않기, 자기 개념과 자기 체험에 대해서 등등을 이야기 한다.
읽을 때는 다 알 것 같았는데 막상 책을 덮고 나니 좀 어렵다. 이런 것도 다 연습과 나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바꿀 수 있고 변화할 수 있다는 저자의 조언.
내게 가장 큰 문제여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반추에 대한 것이었다. 저자는 반추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서도 제시해 준다. 이 책에서는 문제를 짚은 후 그럴 땐 어떤 방법이 좋고 그렇게 하여 최종적으로 얻어지는 상태를 이야기 해 준다. 예를 들어보자면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려 할 때, 반추는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이며 대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내가 이런 감정이 든 이유를 질문함으로써 나 자신을 들여다 본 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분별의 단계를 거쳐 다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책에서는 지금, 이 자리로 돌아오는 법도 이야기 하고 있다.) 성찰과 분별을 통해 마음을 원상회복시키는 것이다.
책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은 부분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덕목 중 하나가 진실성(authenticity)이라는 것이다. 가식이나 위선 없이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말하며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말한다.
살아가는 동안 솔직하면서도 상처 주지 않고 자기 공감과 타인 공감을 할 수 있으며 건강한 소통의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