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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롱 사 먹는 데 이유 같은 게 어딨어요? - 90년대생이 말하는 90년대생 이야기
이묵돌 지음 / 메가스터디북스 / 2020년 5월
평점 :
'나 처럼만 살지 말라'는 말이 진심이었다면, 다르게 꿈꿀 수 있는 선택지라도 몇 가지 던져 줬어야 했다. 우리라고 방 안에서 화면만 쳐다보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스스로 바라는 꿈도, 본받을 만한 어른도 찾지 못했을 뿐인데.(p.193)
슬퍼하라고 쓴 글이 아니었을텐데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몹시 슬펐다.
난 70년대 생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이묵돌은 90년대 생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이 태어나던 90년대엔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그때가 나의 이십대 시절이었으므로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가장 열정적으로 살았던 행복한 시기였다.
내가 그 시절을 기쁘고 충만하게 추억하기에 90년대 생들이 듣는 평가는 의아하게 느껴졌다.
2000년대 생이나 80년대 생들과 90년대 생들의 차이가 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그들에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왜 차이가 존재하는거야? 하며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90년대 생들을 이야기 하는 책들이 나오는 것이 엄청 신기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90년대생들을 알고 있거나 그들과 함께 뭔가를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체감할 만한 차이를 못 느낀 게 당연하다.
그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그냥 젊은 세대 정도로만 여겼고 2000년대 생부터는 내가 낳아 양육하는 또래들이므로 또 그 나름의 이해가 가능했다.
피라미드 내부의 벽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는 얘길 읽은 게 문득 떠오른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어"
그걸 읽었던 때는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한창 젊은 것이었던 그때의 나는 피식 웃음이 났고 그 낙서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 어른들에게 젊은 것들은 늘 버릇이 없게 보이겠지..
그런데 나는 기본적으로 세대 갈등은 윗세대의 책임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 최소한 어른이라면 자신들 역시 지나쳐 온 어린시절과 청년의 때가 있으므로 아랫세대의 미숙함, 미성숙함, 불안함, 반항 같은 걸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들도 같은 과정을 겪으며 자라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에 비하면 우리 이전의 세대들은 얼마나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가! 그럼에도 오히려 우린 그분들만큼 후세대에게 물려준 게 많지도 않고 헌신적이지도 않지 않은가!
제대로 물려주지 못한(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덕분에 90년대 생들의 현실이 지금과 같아졌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졌다. 그러나 변명을 해보자면 그것이 우리는 우리나름의 최선이었지 싶다.
아무튼 내가 버르장머리 얘기만 해서 그렇지 이 책은 단순하게 버릇이 있냐 없냐의 얘기가 아니다. 90년대 생들만을 위한 변명 혹은 변호 같으면서도 그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사실은 같이 살아가는 이 시대를 돌아보게 해주었다. 거창하게 뭔가를 얘기하고 있지는 않으나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적지 않단 생각이 들어서였고 그러면서도 우리 또한 그것이 최선이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너무나 슬퍼져버렸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의 제목과 목차들을 봤을 땐 이런 얘기가 책이 된다고? 무슨 알맹이가 있다고! 하고 생각했던 것이 다 읽어갈 즈음엔 완벽하진 않으나 어느정도의 이해를 갖게 된 것 같다.
목차는 이렇다.
90년대에 태어난 게 잘못은 아닌데/ 베이비붐도 아니고 저출산도 아니지만/ 당신들의 희망은 우리였지만, 우리의 희망은 당신들이죠/ 티끌 모아 태산인데 마카롱이나 사 먹는 이유/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니... 이제 와 이러기 있습니까?/ 외로워도 슬퍼도 울 수 없는 캔디증후군/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 했으면서/ 우리는 부모님의 부캐가 아니에요/ 1년도 못 버티는 습관성 퇴사 증후군이라/ 우리에게 말 걸지 않는 택시가 필요한 이유는/ 당신을 꼰대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 결국에는 우리도 꼰대가 되어간다/ 남녀 갈등? 사이좃ㅂ게 지낼 기회가 있기는 했나/ 어째서 섹스를 섹스라 부르지 못하고/ 불공평해도 공평하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았어야죠/ 이미 정해진 주인공들의 사회/ 게임이나 아이돌, 아니면 유튜브 밖에 없어서/ 미안해요, 세상에 미워할 사람이 부모님뿐이라서/ 지나간 세월을 돌려드릴 순 없어요, 그래도/ 태어난 게 잘못이 될 순 없는 거니까
저자가 90년대를 대표하거나, 이게 전부라거나, 일반화시켜 그들은 다 이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이들의 얘길 듣고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이든 혹은 꽤 많은 그들이 있든, 누군가가 이런 사고와 현실 속에 살고 있다면 근본적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개선해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책을 읽었다하여 그들을 다 알게 되었다거나 이해가 된다는 건 아닌데 난 뜻밖에 우리세대를 돌아보게 되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처음과 다르게 지금은 상당한 무게의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p.45 우리는 그런 식이다. 고작해야 마카롱 쯤 되는 고급 간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혹은 있었다는 것에서 퍽 대단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게 우리의 밋밋하고 추레한 삶에 아주 작은 특별함이나마 부여해 주는 것 같아서.
p.141 가장 염려되는 건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세대 간, 양성 간의 대화가 완전히 단절되는 일이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마주 보며 이해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제각기 다른 세대로 또한 성별로, 사회계층으로 거듭 분리되다가 마침내 모든이가 혼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미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동시에, 바로 옆방에 있는 사람과도 대화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데.
p.227 슬픈 일일지언정 잘못은 아니다. 그런 네가, 우리가 태어난 게 잘못이 될 순 없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