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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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소인들에게 둘러싸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묶여있는 장면이다. 또 하나는 바다에서 배 수십 척을 줄에 매어 끌고 오는 장면.

주로 소인국에서의 장면들이 강렬하게 남아있고 어릴 때 걸리버 여행기를 읽으며 나도 그런 나라에 가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내게 이 책은 흥미진진하고 재미난 동화책이었을 뿐이었는데 내가 20대중반 즈음이었을 때 걸리버 여행기는 동화가 아니라 풍자소설이라는 걸 어디선가 듣고서 곧장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영국이나 유럽의 역사와 관계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던지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하는 1부와 2부만 재미나게 읽었지 3부와 4부는 작가가 도중에 바뀌었나 싶게 지루하게 읽었고 특히 4부 후이늠국(말의 나라) 여행기 부분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동화책에 왜 1,2부만 있는지 알겠다며.



그래도 언젠가 다시 읽어야지, 재밌었는데, 인상깊은 대목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하며 기억하던 책이었고 드디어 엊그제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읽을 땐 감탄하며 읽었다.

재미있어서 감탄, 통쾌해서 감탄, 부끄러워져서 감탄, 묘사가 뛰어나서 감탄...!

걸리버가 실존인물처럼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걸리버가 이런 나라에 정말로 다녀온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편지글로 시작하는 형식의 앞부분부터 읽어가다보니 책속으로 빠져들면서 이런 터무니없는 얘길 믿게 되더란.



걸리버 여행기는 크게 4부로 되어있다.

1부는 릴리펏(소인국) 여행기, 2부 브롭딩낵(거인국) 여행기, 3부는 라퓨타(날아다니는 섬),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드립, 일본 여행기 그리고 끝으로 4부는 후이늠국(말의 나라) 여행기이다. 책의 말미에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연보와 해제, 작품 해설이 수록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걸리버의 이 환상적인 여행기로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는 풍자를 통해 정치사회와 인간의 문명을 비판한다. 객관적 시각에서 인간 행태를 보게 되니 낯이 뜨거우면서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그런만큼 통쾌한 기분이 동시에 들기도 했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달걀 깨뜨리는 방식을 두고 다투는 대목이 있다.



(p.55 달걀을 먹기 전에 그것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위쪽의 넓은 부분을 깨서 먹는 방식이 널리 인정되어 왔다. 그런데 현 폐하의 할아버지가 소년 시절에 계란을 먹으려고 오래된 방식으로 그것을 깨다가 그만 손가락 하나를 베고 말았다. 그러자 황자의 아버지인 황제가 모든 신민들은 달걀의 밑 부분, 즉 갸름한 부분을 깨어서 먹어야 한다는 칙령을 내렸고 이에 불응할 경우 엄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했다. 우리의 역사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 칙령에 크게 분개했고 그리하여 이 문제로 여섯 건의 반란이 발생했다. 그 결과, 한 황제가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황제는 황위를 잃었다.)

어처구니 없지만 우리는 종종 이와같은, 혹은 이보다 더 하찮은 이유로도 다툰다.



(p.70 릴리펏인들은 도덕성이 결여된 자는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그런 결핍을 결코 보충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런 위험한 자에게 공직을 맡겨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지않은가. 공직자의 도덕성은 퍽 중요하다.



(p.104 마음이 크게 동요한 상태였지만 릴리펏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의 주민들은 나를 산악 인간이라고 부르면서 이 세상에 일찍이 나타난 적이 없는 가장 경이로운 존재라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제국의 함대를 한 손으로 틀어쥘 수 있었고 그 제국의 역사서에 기록될 만한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내가 한 명의 릴리펏 사람이 되어 아주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보일 것이니 나로서는 얼마나 창피한 노릇인가.)

걸리버는 소인국에서는 거인이지만 거인국에서는 소인이 되었다. 이와같이 인간의 모든 가치는 상대적이다.



(p. 105 철학자들은 그 자체로 크거나 작은 것은 없으며 비교에 의해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는데 과연 맞는 말이다.) 그 자체로 크거나 작은 것은 없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모든 걸 서로 비교하고 견주어가며 가늠하고 판단해 온 것 같다.



소인국에서의 사건들이 더 재밌다고 생각해왔는데 새롭게 읽으며 거인국편에서 깨닫는 바가 더 컸다.

(p.181 상호비교는 나 자신을 아주 한심하게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p.261 이 나라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고 생각되는 나이인 여든이 되면 그들은 다른 여든 살 노인에게서 드러나는 우둔함과 결점을 전부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절대 죽지 않는다는 끔찍한 전망 때문에 더 많은 결점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독선적이고 역정을 잘 내고 탐욕스럽고 심술궂고 자만심이 강하고 수다스러울 뿐만 아니라 남들과 친분을 쌓지도 못하고 모든 자연적인 애정에 무관심합니다. 스트럴드브럭은 자식과 손자를 빼면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팽배한 감정은 부러움과 공연한 욕심입니다.) 모든 노인이 이러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의 인간이 나이 들어가면서 깊어지고 넓어지며 너그러워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런 모습이 더 강화되는 것을 보게되는 것이 사실이다. 늘 경계하며 스스로를 단속하여 이런 모습의 노인은 되지 말아야지..



1,2,3부를 거치며 풍자와 비판이 강해지는데 4부까지 가면 인간비하인가 자학인가 싶은 느낌이 들 정도가 된다. 설마 우릴 진짜 야후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걸리버 여행기는 인간과 인간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새롭게 읽어보니 3부 4부가 더 인상깊다.

재미와 깨달음을 동시에 주는 책. Gulliver's trav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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