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친밀한 타인들 - 소중한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관계심리학
조반니 프라체토 지음, 이수경 옮김 / 프런티어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친밀하다는 것은 관계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Together, closer; 친밀한 타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이 책은 소중한 사람과 더 가까워지는 관계 심리학에 대해 다룬 책이다. 작가 조반니 프라체토는 이탈리아인으로 인문 심리 과학자라고 한다. 과학자가 쓴 관계 심리학이라니 뭔가 낯설다. 전작으로는 감정과 신경 과학에 대한 글이 있었다. 과학자이면서 소설과 극본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단다. 이 책에서도 과학적 설명이 나오는데 그것이 이해를 돕는지 이해를 방해하는지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신선하긴 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타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사람마다 지향하는 관계의 밀도가 다르겠지만 나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친밀해야지"라고 여기는 사람이라 먼저 가까이 다가가고 경계를 허무는 편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나와는 반대로 친밀한 관계를 부러 거부하기도 한다. 나중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언젠가는 이별하게 되므로,라고 이야기했다.)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는 것을 차단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그들에게는 그러니까 나처럼 마구 허물없이 다가가려는 사람이 상당히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관계는 혼자 맺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아름다운 관계는 친밀함을 지향하느냐 마느냐를 떠나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는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특히 1인 가족이 증가하고 고독사가 흔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로 인하여 대면하여 누군가를 만나고 어울려 지내는 것을 조심하게 된 요즈음 내 친구들과 친척들은 이따금씩 카톡과 밴드 등을 통해 생존신고를 해준다.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취한 그들의 연락은 우리가 직접 만난 지는 오래됐지만 서로 친밀하다는 정서를 느끼게 해 주고 외롭지 않게 해 주는 것 같다. 따로 떨어져 지내지만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해 주는 것, 혼자가 아니라고 믿게 해주는 것, 그 친밀함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소중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은 심리와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 아니었다.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도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소설 모음 같달까. 다만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스토리 사이사이 혹은 앞뒤로 관계 심리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담긴'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읽어가는 동안 받은 느낌은 관찰카메라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본 후 그에 따른 설명을 듣는 그런 느낌이었다.
여덟 개의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하여 보여준다.
관계의 선택, 관계의 유지, 관계의 균열, 관계의 방향, 관계의 깊이, 관계의 재발견, 관계의 보상, 관계의 의미가 그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관계의 선택에서는 관계의 과부하에 걸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관계의 유지에서는 성숙하고 오래된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관계의 균열에서는 안정적 관계를 흔드는 충동과 우유부단함을, 관계의 방향에서는 주기만 하는 사람과 받기만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관계의 깊이에서는 진짜 원하는 사이를 만들기 위해 감수해야 할 것들을, 관계의 재발견에서는 죽음 앞에서 재설정되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관계의 보상에 대해서는 상대가 아닌 진정한 나를 마주할 기회에 대한 것을, 그리고 관계의 의미에서는 친밀한 타인들이 내 삶에 주는 선물을 이야기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그리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저자가 곁들인 심리학, 신경학, 생물학적 정보를 읽어가며 나는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각 장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는데 다만 동성 간의 사랑과 관계가 너무나 일상적 이기라도 하듯 등장하여 당황스러웠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만 집중하여서 선정적인 것은 없었지만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고 관계의 다양성과 중요성은 이해했으나 내가 맺는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데에는 역시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밑줄을 그은 몇 부분을 소개해 보자면 이러하다.
p. 238 사랑은 자기 자신을 방어하려는 태도에서는 자라날 수 없다. 사랑은 부족함과 미숙함 속에서 가장 단단하게 자라나며, 용기로써 두려움을 덮어버리는 힘을 갖고 있다.
p. 263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미 있는 도움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뜻한 애정과 위로 그리고 사회적. 정서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그런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p. 278 상대에게 상처 주려는 마음이 없다면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법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친밀한 관계를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관계를 보여주어 생각하게 해줄 책. Together, clo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