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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기록
마르티나 도이힐러 지음, 김우영 옮김 / 서울셀렉션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50년 전 한국을 찾은 이방인이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책이라는 소개 글을 보았다.
50년 전이라면 내가 올해 마흔여덟이니 내가 태어날 즈음이겠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을 상상하며 책을 보았다. 나는 사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사진첩이려니 생각한 것과 달리 이 책의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사람은 사진가가 아니고 한국학자였다.
그리고 제목은 추억의 기록이지만 개인적인 기록도 아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 속의 50년 전 한국의 모습은 낯익은 듯 낯선 그런 모습이었다.
2020년에 보는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사진은 5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과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달나라에 우주선과 우주인을 보내던 시절, 스위스에서 하버드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던 여성에게는 지금의 내가 우리나라의 50년 전 사진을 보며 느끼는 느낌보다 더 낯설고 신기했을 것 같다.
저자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는데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그 이듬해 시댁 방문 겸 학문적 목적을 가지고 한국에 왔었다고 한다. 현재는 런던대 명예교수라 하는 이 저자는 연구를 위해 서울대 규장각에서 67년부터 69년, 그리고 73년부터 75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국의 전통의례, 풍습, 민간신앙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고 그 사진으로 이러한 책을 펴낸 것이었다.
책은 그가 찍은 사진과 그 시절의 기록을 담고 있는데 한글과 영어 두 언어로 적고 있다.
시골 풍경, 그 시절 여성들의 모습, 안택 고사, 양반가옥, 서원, 향교, 절, 동제, 그리고 경주 제주도 울릉도 등의 모습도 담고 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는 이 책에 담겨 있는 제사나 전통 장례 무당의 굿하는 모습들은 생전 처음 보는 아예 다른 세상의 것이기도 했다. 나뿐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불과 50년 전 사진임에도 상당히 생경한 모습들이 담겨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 시내 중심부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소에게 짚신을 신겨 달구지를 끌게 하는 모습이라든가, 삼실 잣는 할머니의 모습, 양주산대놀이, 작두를 타는 무당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여성을 배제시키는 각종 의례에 연구하는 학자이자 외국인이라는 특별대우를 받으며 참여하고 사진을 찍은 덕분에 이런 기록도 남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구경꾼으로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것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 아는 옛 모습을 보며 추억놀이 정도 할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이런 풍습이 다 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배우게 된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살고 있는 곳, 살았던 곳, 자주 갔던 곳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볼 수 있어 더 반갑기도 했다.
사진을 보며 한글로만 읽었는데 시간이 나면 영어로도 다시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게 과연 번역일까 싶게 글이 잘 쓰여 있어서 역자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보았는데 역자는 서울대 고고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과 코넬대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전공한 김우영 님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