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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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비탈에 복숭아 나무를 심는 아빠를 보며 가족 모두가 극렬히 반대했었다. 반평생 직장인이었던 사람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사서 고생 그만하고 편하게 살자 했었다. 아빠는 들은 체도 없이 바득바득 나무를 심고 키웠고, 그러길 다섯 해가 지난 즈음부터 내 주먹보다 훨씬 큰 복숭아가 아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박스에 가지런히 담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해야 본전 혹은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것 같으니 여전히 농사꾼은 아니고 농사 ‘꿈나무’ 라는 말이 더 적합해 보이지만, 피부가 흙색이 되도록 아빠는 참 고집스럽고 부지런하게 매년 복숭아를 키워낸다.

그런 농사꿈나무 아빠의 고생이 마음 아파 그만하라 노래를 부르지만, 그 수혜를 가장 톡톡이 보고 있는 게 바로 나다. 아빠의 농장서 가장 크고 실한 복숭아는 공판장이 아니라 딸이 사는 거제로 향한다. 이리저리 치이면 쉽게 상처받고 무르는 과일이라 포장을 얼마나 야무지게 해서 보내는지, 몇 년 동안 거제로 내려온 복숭아들은 상처 하나 없이 갓 딴 듯 토실토실 탐스럽고 깨끗하다.

단점 혹은 상처란 역시 쉬이 무르는 부분이니, 이를 ‘복숭아’라 칭한 제목이 기발하고 절묘하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남궁인 작가의 음치 고백도 좋았고, 씩씩하고 치열한 투사 같은 김신회, 임진아, 이두루 작가의 글에서는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 무른 속내가 보인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뭐든 잘해 보이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에 한껏 부풀리고만 사는 몸에 스르르 힘이 빠진다. 무너지거나, 어설프거나, 뭘 좀 못해서 더 아름다운 이들의 이야기. 이들의 문장은 무른 복숭아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복숭아 박스에 고운 종이와 테이프를 감는 아빠의 손길과 닮았다. 어설프고 투박하나, 조심조심 정성스런 마음으로 전해진, 반갑고 귀한 아빠의 복숭아같은 이야기였다.

“인간은 책 속에 사는 캐릭터가 아니다. 방금 내뱉은 말과 전혀 다른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내가 있다. 그를 굳이 세울 필요도 없고, 어깨를 잡고 이쪽으로 데려올 필요도 없다.” (임진아)

“말이라는 추상은 기술과 자본 없이도 무한하기 짝이 없다. 무형의 무한을 존재 가능하도록 만드는 언어라는 도구는 단말기도 충전기도 필요 없는 필승의 오락이다.” (이두루)

“나무가 되지 못한 갈대처럼 흐느적거리며 다행히 아직까지는 부러지지 않았다. 대쪽 같은 믿음이 있어서 버티는 게 아니고 어쩔 줄 몰라서 이리저리 번민하다 살아남고 강해진 사람. 그런 내가 이제는 조금 마음에 들었다.” (김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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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락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조이스 박 옮김 / 녹색광선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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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단편의 공통점은 결국 인간의 생이 환멸과 고통, 연민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끝으로 향하는 어떤 결정적 순간들은 방향과 모양이 각기 다르다. 미혹되었으나 그 길로 가지않은 이도 있고, 그 길로 가다기 소중한 것을 잃은 이도있다. 또한 이미 끝인 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도 있다.

작가가 보여주는 삶의 찬란한 어느 순간, 인생을 뒤흔드는 이와의 만남은, 도덕 등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다. 변덕스럽고, 부조리하고, 충동적이다. 싸구려 큐빅같다. 그리고 인간은 어김없이 그 반짝이는 순간을 부여잡고 일생을 불나방처럼 살면서 제 젊음과 나머지 시간을 태워 없앤다. 설령 그 순간을 부여잡지 않고 돌아선 이 역시 미련 혹은 후회로 비슷하게 매듭지어진다. 어떤 방향을 향하든 ‘보아라, 파국’이다.

그런데, 이 파국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불완전함과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는 세상의 확장이랄까, 긴장하며 아등바등하게 하는 어떤 쇠사슬이 스르르 툭 끊어진다.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반짝인 만큼 불안하게 살았을 피츠제럴드의 삶, 이를 고스란히 담은 그의 문장들은, 어쩌면 ‘엉망진창이어도 눈부신’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자 한 건 아니었을까.

책 표지에 검은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여성의 그림이 붙어 있다. 책을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의 내용을 이만큼 잘 표현한 그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가리고 있지만, 그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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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없는 여자들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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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3년에 그것도 그 시대 남성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아 몇 번이고 작품과 작가 정보를 확인했다. 시점으로 보면 조지 기싱이 버지니아 울프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고, 이 소설의 등장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유년기 즈음이 여성 인권과 관련된 혁혁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조지 기싱의 Odd Women(원제) - 메리 바풋, 로더 널과 같은 이들- 이 페미니즘의 초창기 저변이 되는 셈일 것이다. 물론 이들은 허구이나, 조지 기상이 사실주의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이들은 부정할 수 없는 실존 인물이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런 무명의 삶이 켜켜이 모여, 비로소 버지니아 울프 시대를 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런 풀뿌리같은 이들을 기억하게 한다.

매든 가 유약한 자매들의 안타까운 몰락, 메리와 로더, 그리고 에버라드의 대화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페미니스트 1세대의 활동과 고민들, 매든 가 막내 모니카의 가부장적 남편 위도우선의 폭력과 집착, 인물 하나 하나의 성격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가 그 시대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미행과 폭력까지 일삼는 위도우선, 그의 경제력을 보고 도피성 결혼을 한 모니카는 결국 아이를 낳다 죽고, 그 아이 마저도 핏줄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다. 더욱이 그 불행한 결혼은 주변의 이들에게도 불필요한 오해를 낳아, 어렵사리 마음을 열고 사랑을 시작해보려 한 젊은 남녀(로더와 에버라드)를 영원한 이별로 이끌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피부양자로만 살아온 모니카의 언니들은 제법 많은 돈을 상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관념의 무지와 소극적 태도로 남의 가정집에서 혹사당하거나, 가난한 현실을 이기지 못해 알콜 중독자가 된다. 이는 그 시절 전형적인 여성상이었을 것이고, 메리와 로더는 이러한 여성들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직업학교를 열고 강의를 하는데, 메리의 사촌동생인 에버라드는 그러한 사촌누나를 지지하면서, 그녀와 함께 일하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성품의 로더에게 호감을 느낀다.

에버라드와 로더는 결국 맺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끝내 그를 얻진 못했지만, 용감하게 사랑을 해 보고자 마음을 열었다는 그 사실 자체로 스스로의 열등감을 치유하는 경험으로 삼고, 더욱 유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로더. 심지어 에버라드와의 불화의 씨앗이 된 모니카 마저도 용서하고, 되려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를 응원한다. 메리가 로더에게 보여준 큰언니의 포용력과 신의 역시 뭉클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줄 알고, 끈끈하게 연대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근사했다.

무엇보다 끝내주게 재밌었다. 빅토리아 시대 남성 작가가, 심지어 Odd 하다 표현될 정도로 희귀한 여성들의 감정을 어쩜 이토록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조지 오웰이 사랑했던 작가라고도 하는데, 왜 이런 작품이 여태 유명해지지 않았는 지 그게 이상할 따름이고. 의심할 수 없는 필독서이고, 고전이다. 밤새 몰아치듯 읽고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다. 전격 쌍따봉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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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보급판)
파이돈 편집부.리베카 모릴 지음, 진주 K. 가드너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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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위대한’ 이라는 형용사의 정의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고정불변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에 따라 달라지고, 심지어 개인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이 단어의 정의를, 이상하게 단 한 번도 의심하거나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것. 내가 알고 있던 ‘위대한’ 이라는 정의란 어떤 특정 주류, 권력자의 시스템 안에서 가공된 것이니, 지금은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에게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발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책 제목의 ‘위대한’ 은 내가 알던 그 ‘위대한’이 아니었다.
 
그 확장된 ‘위대함’ 안에서, 책은 423명의 이름을 소환한다. 지워졌거나, 빼았겼거나, 잃어버렸거나, 존재하였으나 주목받지 못한 이름들, 그리고 그들의 작품, 유명세와 상관 없이 고루 딱 한 점씩과. 알파벳 순의 구성 역시 사려깊다. 시대와 장르 같은 인위적 구분으로 그 이름과 작품을 가두지 않는다. 체계와 구분이 (특히 예술에)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란 듯이 책의 구성으로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은, 젠더 이슈로 해석되거나 홍보 될 작품이 아니다.  ‘확장’과 ‘전환’ 의 책이다. 여성, 남성의 구분이 아니라, 그 구분의 기준과 사고를 바득바득 지운 후 필드에 등판 할 선수들을 최대한 확장해서, 하나의 인격체 혹은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정의. 책은 그 정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책의 작품과 해석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순간 ‘여성 예술가’ 의 것이라는 전제가 무의미해진 상태가 되는데, 이로서 확장된 그리고 온전한 ‘예술 세계’로서의 감상이 가능함을 경험하게 된다. 책은 페미니스트 아트의 장르가 아니라, 바로크부터 인상주의, 표현주의, 포토 저널리즘, 팝아트, 퍼포먼스, 수많은 장르를 포괄하고, 이로서 예술 역사에 여성이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또한 바네사 벨이나 요코 오노가 조금 더 유명세를 탄 가족이나 연인의 이름이 아닌 독립된 예술인으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부분이 특히 뭉클하다. 성별, 특수한 관계를 떠나 독립된 존재로서의 가치를 보여주는 구성 자체로, 내 안의 낡은 성벽들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부끄러운 자각이라면, 알고 있었던 몇 몇의 작품이 ‘당연히’ 남성 예술가의 것이라 생각해왔다는 것. 의도적으로 혹은 당연히 지워진 그들의 이름이, 이제서야, 이제라도 기억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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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달래 아리 - 그래서 고양이 집사로 산-다
윤성의 지음 / yeondoo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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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울다 웃다 혼자 생쑈를 했다. 1부는 고양이와 여행의 콜라보 챕터라 그냥 뭐 딱 종합선물 세트 같았고, 2부 고양이와 함께 하는 일상 이야기는, 칼칼한 고양이 한 마리를 모시고 사는 집사로서 공감 또 공감하며 (사실은 막 펑펑 울어가며) 읽었다. 집사라면 박수 치며 공감할 에피소드들이 잔뜩 들었다.
 
달래, 아리, 그리고 삐노 세 남매를 모시고 사는 오빠 혹은 형아, 눈이 흘러내릴 정도로 심한 알러지를 달고 살면서도 고양이 까페를 찾아 다니고, 여행 때마다 고양이들의 외쿡 간식을 선별해 사오는 집사 라이프가 재기 넘치는 문장들에 소복하게 담겼는데, 마냥 유쾌하고 즐겁다가도 문장 한꺼풀 아래 스민 깊은 사랑이 느껴져 읽는 내내 마음이 저릿하고 몽글거렸다. 이는 필시 고양이를 사랑으로 오래 섬세하게 지켜본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문장이었다. 그리고, 유쾌하게 덤덤하게 서술해나가는 여행 이야기, 일상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보듬는 일의 온기와 무게가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장서도 캐치되는 작가님의 성정상, 불조심 포스터처럼 대놓고 ‘생명은 소중합니다’ 하진 않지만, 충분히 그 무게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필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결국 덕후의 진한 사랑고백의 책이니, 읽고 있으면 퍽퍽 떨어지던 인류애 게이지도 서서히 상승된다. 인간만 잘 살겠다고 지지고 볶아봐야 그런 세상 별 볼일 없다는 거 이제 쫌 알 때 됐지 않나. 고양이 소리 내어가며 만드는 비생산적이고 유쾌한 털복숭이들과의 시간을 엿보자. 바삭바삭하게 말라버린 일상이 모처럼 촉촉해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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