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없는 여자들
조지 기싱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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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3년에 그것도 그 시대 남성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아 몇 번이고 작품과 작가 정보를 확인했다. 시점으로 보면 조지 기싱이 버지니아 울프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고, 이 소설의 등장부터 버지니아 울프의 유년기 즈음이 여성 인권과 관련된 혁혁한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으니, 조지 기싱의 Odd Women(원제) - 메리 바풋, 로더 널과 같은 이들- 이 페미니즘의 초창기 저변이 되는 셈일 것이다. 물론 이들은 허구이나, 조지 기상이 사실주의 작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이들은 부정할 수 없는 실존 인물이라 짐작할 수 있다. 역사엔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런 무명의 삶이 켜켜이 모여, 비로소 버지니아 울프 시대를 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이런 풀뿌리같은 이들을 기억하게 한다.

매든 가 유약한 자매들의 안타까운 몰락, 메리와 로더, 그리고 에버라드의 대화와 행동에서 느껴지는 페미니스트 1세대의 활동과 고민들, 매든 가 막내 모니카의 가부장적 남편 위도우선의 폭력과 집착, 인물 하나 하나의 성격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가 그 시대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미행과 폭력까지 일삼는 위도우선, 그의 경제력을 보고 도피성 결혼을 한 모니카는 결국 아이를 낳다 죽고, 그 아이 마저도 핏줄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른다. 더욱이 그 불행한 결혼은 주변의 이들에게도 불필요한 오해를 낳아, 어렵사리 마음을 열고 사랑을 시작해보려 한 젊은 남녀(로더와 에버라드)를 영원한 이별로 이끌고. 아버지의 그늘에서 피부양자로만 살아온 모니카의 언니들은 제법 많은 돈을 상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관념의 무지와 소극적 태도로 남의 가정집에서 혹사당하거나, 가난한 현실을 이기지 못해 알콜 중독자가 된다. 이는 그 시절 전형적인 여성상이었을 것이고, 메리와 로더는 이러한 여성들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주체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직업학교를 열고 강의를 하는데, 메리의 사촌동생인 에버라드는 그러한 사촌누나를 지지하면서, 그녀와 함께 일하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성품의 로더에게 호감을 느낀다.

에버라드와 로더는 결국 맺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가장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끝내 그를 얻진 못했지만, 용감하게 사랑을 해 보고자 마음을 열었다는 그 사실 자체로 스스로의 열등감을 치유하는 경험으로 삼고, 더욱 유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가는 로더. 심지어 에버라드와의 불화의 씨앗이 된 모니카 마저도 용서하고, 되려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 그녀를 응원한다. 메리가 로더에게 보여준 큰언니의 포용력과 신의 역시 뭉클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줄 알고, 끈끈하게 연대하는 이들은 너무나도 근사했다.

무엇보다 끝내주게 재밌었다. 빅토리아 시대 남성 작가가, 심지어 Odd 하다 표현될 정도로 희귀한 여성들의 감정을 어쩜 이토록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조지 오웰이 사랑했던 작가라고도 하는데, 왜 이런 작품이 여태 유명해지지 않았는 지 그게 이상할 따름이고. 의심할 수 없는 필독서이고, 고전이다. 밤새 몰아치듯 읽고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다. 전격 쌍따봉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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