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지음, 이유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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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그림책 리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성인의 입장에서 그림책은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로 다가오기 때문에. 작가가 분명 어린 독자를 대상으로 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에 그림책에 담긴 숨은 뜻을 찾아보려 애쓰게 된다. 이 작품은 특히 그랬다. 스웨덴의 그림책 작가 엠마 아드보게의 작품인 책은 북유럽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화풍으로 어린 시절 학교 배경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들은 학교 체육관 뒤편에 땅이 움푹 파인 곳, 구덩이에서 논다. 선생님, 어른들은 위험하다고 가지 못하게 하는 금단의 곳. 그래서 그럴까? 아이들은 더욱 구덩이에 심취한다. 별 거 없이도 참 재밌게 놀던 어린 시절. 놀이터에만 나가도 탈출놀이, 신발던지기, 술래잡기 등등 하루 온종일을 보낼 만큼 잘도 놀았다. 하지 말라는 건 더 열심히 했다. 학교 정문을 두고 괜히 담을 넘어다니는 일탈을 한다던가, 어른들은 가지 말라는 지름길을 굳이 찾아내 다닌다거나. 모험적이었다. 정형화된 어른들이 보기엔 너무도 자유로운 아이들. 분명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 고양이 봄이도 그렇다. ㅎㅎ 아기고양이 시절은 걸레받이 뜯고 싱크대 밑에도 들어가던 우리 봄이. 이제 너무 얌전해져 영혼을 담아 장난감을 흔들어도 시큰둥)

놀다가 다치기도 한다. 무릎에 피가 나고,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친구들의 주목을 받는다. 어느 덧 상처는 아물고 딱지가 지고 새 살이 돋는다. 작가는 구덩이와 딱지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삶의 은유를 불러 일으킨다. 구덩이는 모험, 딱지는 실패 후 재생. 우리는 모험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고 용기를 얻는다. 실패의 경험은 우리에게 단단한 내공을 준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언제 그랬냐는 듯. 의연하게 털고 일어선다. 어쩌면 오랫동안 잃어버렸을지 모를 구덩이와 딱지의 경험. 작가는 두려움 없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두 권의 책을 천천히 음미하고 나니 어쩐지 작은 용기가 생기는 기분이다.

#문학동네 #문학동네그림책서포터즈 #뭉끄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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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 마녀의 수상한 죽 가게 - 다 타버린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당신에게
나우주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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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잘 나가던 죽 가게 사장 마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회의를 느낀다. 이른바 번아웃 증상.
인생 뭐 있어? 쿨하고 가볍게 살고 싶어도 사실 뭐가 많은 게 우리네 인생인거죠. 마음을 심하게 앓던 마녀는 붙잡고 있던 죽 가게도 접고 이리 저리 떠도는 삶을 살다가 자연 근처 새 터전에 자리 잡게 되고, 이 책은 번아웃을 이겨내려는 과정을 판타지스럽게 그려낸 에세이와 픽션을 결합한 에픽이다. 책 속에서 마녀가 집착하는 죽 끓이기는 우리 저마다 매달린 일 또는 마음을 빼앗긴, 자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무엇일 거다. 바쁘게 사는 게 미덕이라며 너도 나도 갓생을 살길 바라는 평범한 우리네 삶에도 어느 순간 왜?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하는 근원적인 물음과 회의가 찾아온다. 인생을 사는 누구든 적든 크든 생을 앓는 법. 가을이면 자연의 순리대로 낙하하는 과일 감은 말한다.

📝“내 가치는 내가 살아 존재했다가 사라지고, 다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으로 충분해.”

마녀가 오랜 방랑의 과정에서 겪는 에피소드에는 감뿐만 아니라 농어, 지네, 민들레 등의 다양한 생물이 의인화 되어 마녀에게 말을 건다. 힘들어하는 마녀에게 이들은 각자의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든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욕심 많은 인간만이 주어진 현실을 못마땅해하고 버거워할 뿐.

마녀는 끝내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정답은 모르지만, 스스로를 챙기며 보듬는 법을 차츰 알아가고 언젠가는 조금씩 마음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힘들었던 이야기도 이렇게 귀엽게 표현해 들려주는 거 보면 마녀는 이제 괜찮은가 보다.
무조건 힘내라는 가식적인 응원의 메시지보다 묵묵한 공감을 전하는 책. 덕분에 나도 위로를 얻었다.

📝“거기서 끓어오른 것이니 거기서 해결해. 다른 누구도, 어떤 장소도, 어떤 약초도, 어떤 형상도 아닌 오직 거기 있는 너만이 할 수 있어.
내 마음의 뿌리, 단 하나의 진짜 나.”

📝“토닭도닭. 오늘도 죽 쑤는 하루지만 함께 살아냅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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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문병욱
이상교 지음, 한연진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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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낯선 새 학년, 새 학기.
새 교실에 모인 새로운 친구들,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아 가기도 전에 친구들이 이상한 애라고 쑥덕이는 아이가 있다.
아저씨 같은 이름을 지닌 문병욱이 바로 그런 아이.
병욱이는 늘 상 주머니의 손을 놓고 다니고 말 수도 적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런 병욱이를 친구들은 바보, 이상한 애라고 멀리 하지만,

예지에게 병욱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예지는 편견 없이 자기만의 눈으로 친구를 바라봐주는 유일한 아이.
예지의 열린 마음, 소신있는 태도는 직접 겪지 않은 소문으로 친구를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가 직접 겪고, 보고, 마음가는 대로 믿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이 따돌리는 병욱에게 한 걸음씩 다가간다.

미술 시간에 친구 얼굴 그리기를 하게 되는데,
병욱은 예지가 고마웠을까? 병욱이 예지를 똑 닮고도 예쁘고 정성있게 그려준다.
예지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예지의 용기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번져 하나 둘 편견을 벗고 병욱과 친구가 된다.

모두가 같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무리 중에서 한 아이만이 유일하게 자기만의 생각과
시선을 믿고 행동했을 때. 남 다른 그 작은 용기가 큰 변화를 일으킨다.
차츰차츰 딱 한 걸음씩 모여 교실의 풍경이 달라졌다.
하교 길에 힘차게 페달을 굴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병욱이가 더는 외로워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어디에나 있는 외로운 별에게 손을 내민 예지처럼 자신이 믿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내디딘다면? ☀️

#문학동네그림책 #문학동네그림책서포터즈 #뭉끄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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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말글 감각 - 빨리감기의 시대, 말과 글을 만지고 사유하는 법
김경집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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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시대는 끝나고 이른바 영상의 시대라고 한다. 언제부턴가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 검색창에 관련 영상을 찾아서 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어른인 나도 이러한데 태어날 때부터 스크린을 손에 쥘 수 있던 10대들은 오죽하랴. 영상이 글을 대체하는 오늘 날, 저자 김경집 교수는 오히려 글의 진가가 드러날 시대라고 한다.

글의 진가는 지식과 정보 전달의 기존 기능을 넘어설 때 있다. 검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조각 정보들은 분산적이고 통일성이 없으며 체계적 통찰력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에 반해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한 사람의 생각을 체계적, 논리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사유 능력이 생긴다. 지식의 조각이 아니라 총체적 안목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책에는 개념과 관념을 담은 사유의 언어들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입말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다양한 감각과 깊고 풍성한 감정의 언어들이 담겨 있다. 이런 어휘를 배우고 익혀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휘들이 담아내는 삶을 살 수 있다. 책을 통해 어떤 주제나 사건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전체의 틀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 이처럼 ‘판을 짤 수 있는’ 능력이 콘텐츠 생산의 핵심이다.

저자는 ‘낱말 만지기’, 즉 언어 만지기를 제안한다. 이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다. 관심과 시간을 들여 내가 쓰는 한 낱말을 관찰하고 ’생각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빚어진 낱말은 내가 진정한 언어의 주인이 되게 해준다. 낱말 만지기는 단순히 기호로서의 문자에 담긴 정보와 다르다. 나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입체적으로 알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제공자의 속도를 따라가야하는 영상으로 볼 때는 그 말을 ’만질 ‘여유가 없지만 글자는 다르다. 글을 읽을 때는 나만의 속도로 읽기와 멈춤을 할 수 있고,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언어를 사유할 수 있다.

문학의 쓸모는 무엇일까? 작가가 쓴 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읽어낼 힘을 준다. 독자들은 문학 속 인물들을 통해 결국 내 삶을 바라보게 된다. 소설은 다 읽고 나면 내 삶의 한쪽 귀퉁이와 겹쳐진다. 소설적 상상력은 우리의 삶을 훨씬 역동적이고 농밀하게 만들어준다. 다른 삶의 밀도를 대신 느끼게 된다.

나는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가? 남의 언어에 끌려가는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속도를 정하는 주인으로, 창조적인 생산자로 살고 있는가? 이 책은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언어’를 성찰하고 이를 통해 한 단 계 더 나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글의 힘에 대해, 더 나아가 글의 힘이 콘텐츠 생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를 상당히 얻을 수 있는 책이다.

📝언어의 길이는 사고의 길이를 결정한다. 과도한 언어의 축약과 언어경제성 의존의 습관은 어느 순간 긴 호흡의 사고를 막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뜻이다. p.21

📝글을 읽는 것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나의 속도에 맞추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글을 읽는 것은 매우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글의 중요한 힘과 매력도 바로 내가 ‘주인’이 되게 해준다는 점에 있다.
p.43

📝내게 낯선 언어는 내 삶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면 그 말이 갖는 삶과 세상을 살 기회를 놓친다. 따라서 내 삶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낯선 언어들에게 ‘말을 건네고’ 그 말을 자주 만져야 한다. p.167

📝 사유 없는 언어가 난무하는 세상은 부박하다. 천박하고 경솔한 언어를 쏟아내고도 추스를 생각 이 없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관계는 거칠고 칙칙할 수밖에 없다. p.267

출판사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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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신박한 정리 - 한 권으로 정리한 신들의 역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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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권으로 뽀개보겠다는 야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하면 막장 드라마에 버금가는 엽기적인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허구라고 여겼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사실 기록인 역사라는 골격에, 제우스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 및 후손들의 이야기들을 신화와 문학으로 미화한 우상화 작업의 결정체라고 한다.

현대인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만 하는 필요성은 무엇인가?
이유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서양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헬레니즘의 토대와 유럽의 지명이나 문화, 사상과 용어의 근간은 무수히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연결되고 뿐만 아니라, 각종 예술 분야와 학문 분야에서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할 수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미술 작품에서도 그림으로 그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고 신화를 모르고 보아도 멋진 작품이지만 알고 보면 이러한 작품에 이해와 감상을 강화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신화가 종종 실제 세계의 사건들과 그 시대의 통치자들과 엮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뭐니뭐니해도 신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암투와 연애, 모험, 또 등장하는 괴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원형적인 성격을 탐구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과 윤리적 딜레마를 보여줌으로써 시대를 초월한 통찰력을 얻게 해준다.
그런데 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온전히 섭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 많은 인물들과 각종 이야기들, 뜨문 뜨문 접한 일화들이 뒤섞여 너무도 복잡하게 여겨지는데, 실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 구성은 무척 단조롭다고 한다. 80퍼센트는 제우스의 형제자매와 여인들, 그 여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의 이야기다. 나머지는 제우스의 후손이 세운 그리스 왕가와 민간 전설에서 차용한 인물과 괴물의 이야기다.

이 책은 300쪽 분량에 아홉 장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일목요연하게 총정리 해놓았다. 신화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간단명료하게 서술되어 읽기 편했고 또 장황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체를 파악하기도 좋았다.
1장에서는 제우스가 신격화 되는 과정, 시초를 담았다. 언젠가 괴물 같은 이가 작은 사람을 잡아 먹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엽기적인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이는 아들을 잡아 먹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표현한 그림이었다.

2장부터 4장까지는 제우스의 가족과 그들에게 얽힌 신화를 다룬다. 한 번 쯤 들어봤던 익숙한 신화 속 인물을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이었다. 마지막 9장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쓴 주요 작가 및 작품에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언제, 어느 작가에 의해, 어떤 형태로 창작 되었는지 보여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1권으로도 잘 알려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는 천지창조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신격화에 이르기까지 250여 가지 에피소드를 연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록한 책 중 가장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전해진다.

그리스 로마 신화,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 신화의 전체를 간단명료하게 훑고 시작할 수 있는 입문서다.

출판사 서포터즈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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