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위로
배정한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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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위로 #배정한

도시의 여백이자 공간적 해독제로 역할하는 공원은 19세기에 처음 등장했다. 최초의 공원은 근대 산업도시의 여러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공간으로 개발되었다. 공원은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비싼 땅에 쓸모와 효용을 배제하고 자리를 차지하는 공원은 일상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주는 위로와 환대의 공간이되었다. 이곳에서 인간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이 책은 조경학자 배정한 교수가 전 세계 여러 공원을 걸으며 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다. 공원의 구조와 미학, 공원이 도시와 사회 또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학자로서의 관점과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저자는 “산다는 건 결국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공간과 장소, 즉 자신의 자리를 잡(으려)고 사는 게 우리의 일상이다.”라고 말한다. 의,식,주 중 의와 식은 어느 정도 평등해진 시대를 살지만 주(공간과 장소)만큼은 여전히 계층별 차이와 부의 수준에 따른 간극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한다. 좋은 자리에서 거주하고 노동하며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데, 자본주의 도시에서 공원은 공공 공간으로서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제3의 장소나 마찬가지다. 이런 공원이 많은 도시가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집과 직장 근처에 가능한 공원이 많아야 함을 이 책은 다양한 사례로 보여준다.

책에는 공원으로서 잘 된 사례뿐만 아니라 서울로7017이나 여의도공원처럼 졸속 프로젝트 결과인 아쉬운 사례도 담는다. 결국은 사람이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발길이 편하게 닿아야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샤로수길, 익선동 같은 SNS시대와 맞물려 우후죽순 탄생한 공간 사례도 재미있다. 몇년 전 인증샷으로 붐볐던 일부 공개된 용산공원을 두고 ’꼭 외국 같아‘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반대로 해외에 가서 여기 ‘꼭 한국 같아’라는 말은 나쁜 뜻일까? 씁쓸해진다.

책의 서두에는 당신의 공원은 어디입니까?라고 물음을 던진다. 해외의 인상 깊은 공원들도 많지만, 집에서 가깝고 자주 갈 수 있는 공원이 나의 공원 아닐까. 나의 공원은 집 근처 호수공원이다. 얼마 전 이 넓디 넓은 호수공원에서 집고양이 한 마리를 잃어버려 애타게 찾고 있다는 전단지를 보았다. 반려인이라 이 실종 전단지에 마음이 아퍼서 공원을 산책할 때마다 실종된 고양이를 생각했다. 한 달이 되도록 찾지 못하다 결국 기적처럼 고양이를 찾았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고양이는 실종 지점 가까운 곳에서 발견 됐다. 놀라웠다. 한 달이 넘도록 공원을 표류하던 고양이의 생명력이 강한 걸까? 아니면 이 공원이 작은 생을 품어줄만큼 신통한 걸까. 공원을 오가며 고양이를 배려해준 사람들의 작은 베풂도 한 몫했을 거다. 공원은 사람도 동물도 살게 해준다.

“노을 지는 쪽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개성 없는 신도시의 무표정한 풍경이지만 공기는 투명하고 빛은 예리했다. 복잡하게 뒤엉킨 습한 생각들을 바람에 말리며 걷다가 놀라운 경험을 했다. 내 발과 땅이 대화하는 느낌, 나 자신을 세상으로 여는 느낌, 풍경을 만나는 주도권이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 아무런 목적이 없었기에 가능한 경험이었다. 이동이나 답사처럼 특별한 의도를 갖는 걷기와 달리 그냥 느릿느릿 걷다 어슬렁거리며 떠돌다 옆길로 새는, 우연에 내맡긴 자유로운 걷기가 시간에 속박된 신체를 해방시켜준 것이다.” p.267

#그곳을걸으면눅눅한머릿속이바삭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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