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게임 - ‘좋아요’와 마녀사냥, 혐오와 폭력 이면의 절대적인 본능에 대하여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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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은 언제나 재밌는 주제다. <지위 게임>의 저자 윌 스토는 인간의 무의식에 숨어 있는 ‘지위 욕구’에 대해 뇌과학,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을 경유하여 분석한다. 책은,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크고 작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게임을 한다’는 건 지위를 쟁취하기 위해 경쟁한다는 은유다. 이 관점 하나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다단한 세상만사가 읽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우리는 사소한 관계에서부터 학교, 직장, 정치, 온라인까지. 삶의 갖가지 리그 안에서 서로 적이 되어 경쟁하거나 편이 되어 연대하고 승리하거나 패배할 수 있다.

이 지위란 수많은 형태로 나타나는데, 나이처럼 단순한 것에서부터 외모, 재력, 재능, 문화 등. 현대 사회에서는 주로 합의된 상징을 내면화하여 지위를 드러낸다. 이 지위 욕구는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불가피한 것으로 저자는 이를 쟁취하기 위한 게임을 세 가지로 나눈다.

지배 게임, 도덕 게임, 성공 게임

“지배 게임에서는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한다. 도덕 게임에서는 남달리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진다. 성공 게임에서는 단순히 이기는 차원을 넘어서 기술이나 재능이나 지식을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돌아간다.” p.63_지위 게임의 세가지 변종에서

이 세 가지 게임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혼재되는 게 일반적이다.

애플을 예로 들자면, 애플은 혁신을 도모하면서 성공 게임을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광고할 때는 게임을 하고, 특허권 침해로 경쟁사들을 고소할 떄는 지배 게임을 한다.(p.64)

“공식적인 제로섬 게임에 자주 노출되는 현실이 21세기에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과 불안과 탈진의 원인으로 보인다.”
p.145_제로섬 게임 중

“사실 인생은 상징으로 이루어진 게임이고, 신념은 침략자의 깃발 못지않게 상징적일 수 있다. p.215_이념이라는 영토, 신념의 전쟁 중”

이 게임은 시대를 거쳐 가며 룰을 바꾸어 나간다. 1980년대 이후 출현한 ‘신자유주의’ 게임은 더 자유롭고 규칙에 덜 얽매이며 더 개인주의적이 되었다.(328p) 게임에서 이기기란 한층 더 어려워졌다. 더 경쟁적이고, 물질적이고, 더 자기에게 집중해야만 가능해진다. 미국 여피족의 성공은 이를 증명한다.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은 많은 사람이 명성과 부를 쫓길 촉구한다.

“우리는 개인주의자들이다. 승리가 우리의 능력에 달렸다고 믿는 시대에는 승리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의 잘못, 오로지 우리의 잘못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패자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존재가 된다.”
“심리학은 이처럼 실패 신호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명칭을 붙여주었다. 바로 완벽주의자다.”
“신자유주의적 꿈속에서 산다는 것은 일종의 지위 불안에 시달리는 과정이다.” p.331_너 자신을 사랑하라 중

문제는 이 게임판의 룰도 영원하지 않다는 거다. 2008년 세계 금융경제 위기 후 더 이상 개인의 노력만큼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이 확산하였다. 온라인 플랫폼의 급진적인 정서는 오프라인까지 확장되어 인종, 성별, 계층을 초월하길 꿈꾸지만, 이는 금수저 신화라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태어날 때부터 로또에 당첨된 이들이 승자가 되어 그들만의 리그에서 특권을 만들어 내고 평범한 이들은 그들을 선망하고 모방하고 분노할 것이다.

“엘리트가 누리는 특권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게임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다. 엘리트는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고, 그들이 우리를 초라하게 만들지 않은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p.353_공정과 불공정 중

책은 지위 게임의 작동 원리를 간파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규칙 일곱 가지를 제시한다. 이 게임에 말리지 않을 필살기를 전수받는 양 무척 흥미롭다. 짧게 몇 개만 소개하면 한 가지 게임에 매몰되기보다 여러 다양한 게임에 참여하길 추천한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심리학자들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을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협상하고 거래하는 집단으로 보길 바란다. 끝으로 이 모든 세상이 거대한 공모의 장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는 승리가 아니라 게임을 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결론의 몇 문장이 너무 좋아서 계속 맴돌고 있다.

“그 누구도 세상 모든 사람과 경쟁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선망하고 경외하는 슈퍼스타도, 대통령도, 천재도, 예술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면 위안이 될 것이다. 약속의 땅은 신기루다. (중략)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라 결승선이 없는 게임이라는 진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최후의 승리가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과정이다. 끝없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며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p.406_꿈을 꾸고 있다는 자각 중

책을 읽으면서 이 모든 게임판에서 로그아웃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살아 있는 한 벗어날 수 없는 이 리그에서 초연할 수 없을까? 이탈된 낙오자가 아니라,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인삼밭에서 누가 뭐라든 홀로 해맑은 고구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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