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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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 소설하면 늘 앞 순위에 꼽는 작가 미쓰다 신조. 그의 매력은 소설 속 분위기와 배경 묘사에서 잘 드러나지만 개인적으로 마음이 더 가는 부분은 과거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과오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식민지화와 침략전쟁을 시작한 나라의 국민이니까요." (p36) <검은 얼굴의 여우>는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을 배경으로 고립된 탄광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살인의 배경을 추적한다.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모토로이 하야타는 일본 패전 후 삶에 회의를 느낀다. 모든 걸 내려두고 정처 없이 떠돌던 하야타는 밑바닥까지 내려가 자신을 되돌아보고자 전후 일본 재건의 최전선의 현장이었던 탄광으로 향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아이자토 미노루의 주선으로 탄광 넨네 갱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시작한 일이었기에 고된 노동은 견딜만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갱구에서 느끼는 공포는 극복하기 어려웠고 날로 심해지기만 한다. 동료에게 고충을 털어놓던 하야타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검은 여우 가면을 쓴 여자' 이야기를 듣는다.


평소 민속학에 관심이 많던 하야타는 탄광에서 여우 신이 갖는 의미를 탐구하며 자신이 느끼는 공포를 다스려보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넨네 갱이 붕괴하는 참사가 일어나고 동시에 탄광 마을에서는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의문의 살인사건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미쓰다 신조가 호러 미스터리의 대가인 만큼 '호러'에 방점을 두고 책을 펼쳤는데 역사를 배경으로 한 주제의식에 묻혀 호러 부분이 다소 약했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그 부분을 상쇄시킬만한 매력 포인트가 많은 소설이었다. 당시 광부들의 고된 삶과 탄광촌 내의 일상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그 시대를 살다 온 듯 푹 빠져 읽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만주에서 벌어진 일제의 광기에 가까웠던 착취, 강제 징용·징병 등 식민지 수탈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당시 조선인의 시점에서 보기엔 불편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과거를 드러내며 인정하는 태도 그 자체가 참 좋았다.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하얀 마물의 탑>을 먼저 읽어 뒤바뀌었지만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게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소설인 것 같다. 앞으로 모토로이 하야타는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세 번째 작품 <붉은 옷의 탑>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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