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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 여자로 길러진 남자 이야기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남자에서 여자로, 그리고 다시 남자로.
비극적인 실화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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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몇년 전 미국에서 책방을 둘러보다가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이었던 것 같다. 원래 성이나 심리에 관한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목 밑에 'The Boy Who Was Raise As A Girl' (여자로 길러진 남자아이) 이라는 문구를 보고 단번에 계산대에 올려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 책은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나만의 '고전'이라고나 할까. 엄청나게 몰입해서 잠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을 만큼 나에게는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분노, 슬픔, 후회, 희망 등 수많은 감정들을 오갔으며 마지막 장을 읽은 후에도 한동안 벙쪄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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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도에 출판된 John Colapinto (존 콜라핀토)의 책 은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진 소년의 비극적인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2002년도에 이은선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비극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론과 재닛 라이머 부부는 건강한 쌍둥이 남자아이 둘을 낳고 브루스와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나 8개월 후, 브루스는 포경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의사의 실수로 생식기에 심한 화상을 입고, 더이상 생식기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너무나 급작스레 다가온 사고에 절망하던 젊은 부부는 어느날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의사를 만난다. 바로 성심리학계의 거물인 존 머니 박사다. 머니 박사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사상과 독단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마침 양성 신생아들의 성 전환을 연구하고 있었던 그는, 브루스야말로 아동 성전환 실험대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브루스가 여성으로 잘 성장해주기만 한다면, 이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완벽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니 박사는 특유의 화려한 언변과 가식적인 태도로 라이머 부부를 안심시킨 뒤, 브루스 (이제는 '브렌다') 와 브라이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비상식적인 실험을 가한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섹스를 한다면 여자와 하고싶냐 남자와 하고싶냐,' '자위를 해본 적은 있느냐'는 등 민망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약과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동생 브라이언에게 누나 위에 올라타 어른들이 성관계를 하는 모습을 흉내내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라이머 부부는 머니 박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브렌다를 여성스럽게 만들려는 주위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렌다는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의 강요로 인해 치마를 입고있을 뿐이었지, 걸음걸이나 말투, 행동과 관심사는 남자아이에 가까웠다. 남동생 브라이언보다도 훨씬 더 남성적이어서, 브라이언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면 오히려 브렌다가 나서서 주먹으로 해결하는 식이었다. 브렌다는 금세 문제아로 낙인되었고 옮기는 학교마다 매번 왕따가된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왜 같은 여자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는지, 가슴이 봉긋하게 자라는 자신이 왜이리 혐오스러운지 온통 의문들으로 가득하다.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나는 사실은, 브렌다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이 와중에도 머니 박사는 이 "쌍둥이 케이스"를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삼으며 의학계에서 명성을 쌓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될 수있는 한 많은 인터뷰에 출연해 "쌍둥이 케이스"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 떠벌렸으며, (실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브렌다가 여성으로서의 삶에 완벽히 적응했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15살이 되어서야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브렌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남자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지난 14년간 겪었던 온갖 아픔과 상처를 딛고 브렌다는 '데이비드'가 되었다. 성인이 된 데이비드는 물론 아직까지도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곤 하지만 제인이라는 여성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존 머니 박사는 아직도 "쌍둥이 케이스"에서 유추해낸 '환경결정론'을 주장하며 케이스의 엄연한 실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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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렌다' 라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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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라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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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본문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한글 번역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2006년에 재출판된 First Harper Perennial Edition은 데이비드의 충격적인 소식을 다룬다. "A Tragic Update"라고 제목붙인 이 글에서 존 콜라핀토는 데이비드 라이머의 권총 자살 소식을 전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남동생 브라이언은 몇년 전 이미 자살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콜라핀토는 "It was a horrible shock to hear that David had killed himself; but I cannot say it was a complete surprise" (데이비드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정말 끔찍한 정신적 쇼크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뜻밖의 일은 아닙니다.) 라고 한다.
왜 브루스에게는 온갖 불운이 겹쳐야 했을까. 왜 하필 라이머 형제가 포경수술을 받던 날 소아과 전문의들이 전부 자리를 비워 경험 없는 일반의인 휴오 박사가 담당의사로 배정되었을까. 왜 쌍둥이 중에서 브루스가 먼저 수술대에 올랐을까. 그리고 라이머 부부는 왜 하필 그 시간에 존 머니가 나오는 시사프로그램을 시청했을까. 도대체 왜 브루스에게는 마치 짠 것처럼 이러한 우연들이 닥쳐 불운을 낳게 되었을까.
브루스에서 브렌다로, 브렌다에서 다시 데이비드로. 이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우리는 아마 그 아픔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명성에 눈이 먼 의학계의 욕심에 의해 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처참히 짓밟혔으며, 결국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인간은 실험쥐가 아니다. 실험쥐에게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 판에, 어쩜 이리도 잔인하게 한 인간을 실험삼아 희생시킬 수 있을까. 그저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인간에게 덜컥 실험해보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