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어제 뭐 먹었어? 4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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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따뜻하고 잔잔해서 좋아요. 시간 날 때 레시피 따라 해봐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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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
존 카메론 미첼 감독, 존 카메론 미첼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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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이상, <헤드윅>

Hedwig and the Angry Inch

 

 

 

 

내 책상에 앉으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영화 <헤드윅>에서 인상깊었던 장면들을 담은 인화 사진이다. 지나치게 화려한 배경과 그보다 더욱 자극적인 주인공 헤드윅의 옷차림. 부담스러울 정도로 진한 화장과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가발.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그의 아픔, 고독, 혼란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낸다.

 

<헤드윅>은 먼저 뮤지컬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영화로 각색되어 2001년에 개봉하였다. John Cameron Mitchell은 감독,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주연 배우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파격적인 스토리라인과 주인공의 섬세한 연기에 Stephen Trask의 아름다운 음악까지 더해져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한 편의 예술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영화 <헤드윅>은 동 베를린에서 태어난 한셀 (Hansel Schmidt) 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셀은 철학과 미국 락 음악을 좋아하는 "slip of a girly boy" 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셀은 미군 병사인 Luther Robinson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둘은 결혼을 결심한다. 한셀에게 이 결혼은 답답한 공산주의 동 베를린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남녀 커플이어야 한다. 이에 한셀- 이제는 "헤드윅"-은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되지만, 싸구려 수술의 실패로 인해 그에게는 여자의 가슴 대신 다리 사이에 일인치의 살덩어리만이 남게 된다.

 

몇년 후, 남편 Luther에게 버림받은 헤드윅은 록 밴드인 '엥그리 인치'를 조직하여 캔사스 변두리의 바를 전전하며 노래를 불러 생활한다. 그녀는 우연히 만난 16세 소년 토미와 음악적으로 교감하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토미는 그녀를 배신하고 그녀가 만든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발표하여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 후 대스타 토미는 플래티넘 레코드 기록을 세우며 전국 콘서트를 개최하고, 헤드윅은 그를 따라다니며 그가 공연하는 공연장의 옆에 위치한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공연을 하곤 한다.

 

결국 헤드윅은 토미와 재회하게 되는데, 이 둘이 같이 있는 것이 파파라치에게 목격되면서 토미의 표절 의혹이 불거지고 그의 인기는 사라진다. 반면 헤드윅은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하여 마지막 씬에서는 쓰러져가는 식당이 아닌 어느 클럽에서 공연한다. 그녀는 자신이 항상 쓰고 다니던 거추장스런 가발과 현란한 옷을 벗어 던지고 진한 화장도 지운 뒤, 처음으로 그녀 본연의 모습으로 노래한다. 공연이 끝난 뒤, 헤드윅은 어두운 거리를 발가벗고 거닐며 드디어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한다.

 


주인공이 갖은 불행과 시련을 견뎌내고 자아를 찾는다는 내용의 감동 스토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헤드윅의 이야기가 유독 안타깝고 감동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그녀의 지나친 강인함 속에 숨어있는 나약함이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헤드윅은 절대 울지 않는다. 울긴커녕, 자신의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허나, 이렇게 매사에 당당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그녀가 실은 가발과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자신을 감추기 바쁘다는 사실은 가히 모순적이다. 너무 딱딱하면 부러지기 쉽다는 말처럼, 겉으로는 아무리 강한 척, 두려운 게 없는 척 하던 헤드윅도 사실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위태로운 상황에 있었던 건 아닐까.

 

 

영화에 감동과 재미를 더해준 부수적인 요소들이 많다. 이 포스팅에 "영화 그 이상" 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헤드윅>이라는 한 편의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녹아 들어있다. 음악은 물론이고, 미술, 애니메이션, 신화까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재미있게 다룬다. 일부러 근엄하게 꾸며낸 영화보다도, 이렇게 자연스레 여러 가지의 예술을 접목시킨 영화야말로 진짜 "예술 영화"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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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 여자로 길러진 남자 이야기
존 콜라핀토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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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자에서 여자로, 그리고 다시 남자로.

비극적인 실화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

 

 

 

 

어떻게 이 책을 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몇년 전 미국에서 책방을 둘러보다가 별 생각없이 집어든 책이었던 것 같다. 원래 성이나 심리에 관한 책을 좋아했기 때문에, 제목 밑에 'The Boy Who Was Raise As A Girl' (여자로 길러진 남자아이) 이라는 문구를 보고 단번에 계산대에 올려놓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 책은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주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다. 나만의 '고전'이라고나 할까. 엄청나게 몰입해서 잠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을 만큼 나에게는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분노, 슬픔, 후회, 희망 등 수많은 감정들을 오갔으며 마지막 장을 읽은 후에도 한동안 벙쪄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2000년도에 출판된 John Colapinto (존 콜라핀토)의 책 은 남자로 태어나 여자로 길러진 소년의 비극적인 실화를 다룬 작품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2002년도에 이은선에 의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 비극적이며 감동적인 이야기는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 재닛 라이머 부부는 건강한 쌍둥이 남자아이 둘을 낳고 브루스와 브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나 8개월 후, 브루스는 포경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의사의 실수로 생식기에 심한 화상을 입고, 더이상 생식기를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너무나 급작스레 다가온 사고에 절망하던 젊은 부부는 어느날 자신을 구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의사를 만난다. 바로 성심리학계의 거물인 존 머니 박사다. 머니 박사는 지나치게 급진적인 사상과 독단적인 성격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마침 양성 신생아들의 성 전환을 연구하고 있었던 그는, 브루스야말로 아동 성전환 실험대상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브루스가 여성으로 잘 성장해주기만 한다면, 이는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완벽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니 박사는 특유의 화려한 언변과 가식적인 태도로 라이머 부부를 안심시킨 뒤, 브루스 (이제는 '브렌다') 와 브라이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비상식적인 실험을 가한다. 아직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섹스를 한다면 여자와 하고싶냐 남자와 하고싶냐,' '자위를 해본 적은 있느냐'는 등 민망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약과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포르노를 보여주기도 하고, 심지어 동생 브라이언에게 누나 위에 올라타 어른들이 성관계를 하는 모습을 흉내내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라이머 부부는 머니 박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

 

브렌다를 여성스럽게 만들려는 주위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렌다는 '여성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의 강요로 인해 치마를 입고있을 뿐이었지, 걸음걸이나 말투, 행동과 관심사는 남자아이에 가까웠다. 남동생 브라이언보다도 훨씬 더 남성적이어서, 브라이언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면 오히려 브렌다가 나서서 주먹으로 해결하는 식이었다. 브렌다는 금세 문제아로 낙인되었고 옮기는 학교마다 매번 왕따가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전혀 알지 못했던 그녀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왜 같은 여자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는지, 가슴이 봉긋하게 자라는 자신이 왜이리 혐오스러운지 온통 의문들으로 가득하다.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나는 사실은, 브렌다가 자살을 생각할 만큼 불행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이 와중에도 머니 박사는 이 "쌍둥이 케이스"를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로 삼으며 의학계에서 명성을 쌓아갔다는 것이다. 그는 될 수있는 한 많은 인터뷰에 출연해 "쌍둥이 케이스"의 성공적인 결과에 대해 떠벌렸으며, (실명은 밝히지 않았지만) 브렌다가 여성으로서의 삶에 완벽히 적응했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15살이 되어서야 출생의 비밀을 알게된 브렌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남자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지난 14년간 겪었던 온갖 아픔과 상처를 딛고 브렌다는 '데이비드'가 되었다. 성인이 된 데이비드는 물론 아직까지도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곤 하지만 제인이라는 여성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존 머니 박사는 아직도 "쌍둥이 케이스"에서 유추해낸 '환경결정론'을 주장하며 케이스의 엄연한 실패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브렌다' 라이머


데이비드 라이머

 

 

 

*

 

여기까지가 본문의 줄거리이다. 그런데 한글 번역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2006년에 재출판된 First Harper Perennial Edition은 데이비드의 충격적인 소식을 다룬다. "A Tragic Update"라고 제목붙인 이 글에서 존 콜라핀토는 데이비드 라이머의 권총 자살 소식을 전한다. 안타깝게도 그의 남동생 브라이언은 몇년 전 이미 자살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콜라핀토는 "It was a horrible shock to hear that David had killed himself; but I cannot say it was a complete surprise" (데이비드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정말 끔찍한 정신적 쇼크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완전히 뜻밖의 일은 아닙니다.) 라고 한다.

 

왜 브루스에게는 온갖 불운이 겹쳐야 했을까. 왜 하필 라이머 형제가 포경수술을 받던 날 소아과 전문의들이 전부 자리를 비워 경험 없는 일반의인 휴오 박사가 담당의사로 배정되었을까. 왜 쌍둥이 중에서 브루스가 먼저 수술대에 올랐을까. 그리고 라이머 부부는 왜 하필 그 시간에 존 머니가 나오는 시사프로그램을 시청했을까. 도대체 왜 브루스에게는 마치 짠 것처럼 이러한 우연들이 닥쳐 불운을 낳게 되었을까.

 

브루스에서 브렌다로, 브렌다에서 다시 데이비드로. 이 사람의 삶을 살아보지 않은 우리는 아마 그 아픔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명성에 눈이 먼 의학계의 욕심에 의해 한 사람의 인생은 너무나 처참히 짓밟혔으며, 결국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대의 비극으로 끝나게 되었다. 인간은 실험쥐가 아니다. 실험쥐에게도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하는 판에, 어쩜 이리도 잔인하게 한 인간을 실험삼아 희생시킬 수 있을까. 그저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을 인간에게 덜컥 실험해보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도 소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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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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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끼치도록 잔혹한 무관심의 덫,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살다보면 이상한 날이 있다.' 자원관리부의 정수관 대리에게 그 날은 아침부터 재수없고 억울한 일들만 가득한, 한마디로 기분 나쁜 하루였다. 아침에는 사용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고급 면도기가 부러져서 수염을 반밖에 깍지 못했다. 게다가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십오층에서 걸어 내려가야했다. 내려가는 도중에 육층과 오층 사이에서 엘리베이터에 끼어 대롱거리는 다리 두 개를 보았다. 하지만 이미 출근 시간에는 여유가 없었고, 그는 엘리베이터에 낀 사람을 '구해낼 힘도 시간도 없었다.' 경비나 119에게 알리려고는 해봤지만 경비는 순찰중이었고 사람들은 핸드폰을 빌려주지 않았다. 정신 없이 버스에 올라탄 그는 이번에는 버스카드와 지갑을 몽땅 두고오는 바람에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벌였다. 그 와중에 덤프트럭 한 대가 버스의 정면으로 돌진해 버스 앞면과 충돌해버렸고 기사는 죽은 것 같았다. 한동안 경찰에게 잡혀있다가 황급히 다른 버스에 올라탄 그는 성추행범으로 몰려 버스에서 쫓겨났고, 결국 먼 길을 걸어 회사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탄 회사의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린 것이다. 일단 급한 대로 같이 타고 있던 여자를 먼저 내보내고 여자가 관리인을 불러오기로 했는데, 몇 십분이 지나도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가까스로 구출된 그는 거지꼴이 된채로 '회사 내 자원 재활용 문제에 관한' 중대한 브리핑을 했다. 다행히도 오후의 회사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고, 그는 퇴근하는 길에 우편물을 확인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문득 아침에 엘리베이터에 끼어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이 단편 소설은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낀 것을 보고도 구해주지 않았던 한 남자의 기나긴 변명이자, 타인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한 현대인에 대한 고발이다. '현대인'이라고 칭하면 마치 남의 이야기인 듯 한데, 사실 이건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키보드 앞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는 당신과 나의 변명이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낀 것보다는 자신의 '중대한' 브리핑이 더 걱정이었던 정수관 대리. 버스 기사가 트럭에 치여 죽은 걸 보고도 서둘러 다른 버스에 오르기 바빴던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가 과연 과장된 것일까? 절대 아니다.  우리는 분명 누군가가 구해줄거야- 라고 자신을 안심시키며 서둘러 다음 버스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리고는 친구에게 문자나를 날리며 우리가 받은 정신적 쇼크에 대해 얘기할 것이다.

 

처음 이 글을 읽고 나는 현대인들의 무관심과 잔인함에 대해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에 어쩜 그리 냉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마음 속으로 그 '현대인'들을 마구 욕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행 열차에 올라타고, 아주머니도 아니고 그렇다고 할머니도 아닌 애매한 나이의 여성분에게 자리를 양보할까 말까 고민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 소설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다. 자원관리부 정수관 대리는 '현대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잠재적인 '나'다. 현대인들은 이렇네, 저렇네, 하며 혀만 끌끌 찰 것이 아니라 나부터 괜찮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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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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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2005년 '한일 우호의 해'를 기념해

두 나라의 대표적인 작가 공지영과 츠지 히토나리가

각각 여자 주인공 최홍(베니)와 준고(윤오)의 입장에서 풀어낸 이야기이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홍이야, 나이가 들면 자신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선생님에게는 독한 추억이 있나요? 아무리 몸을 씻어도 아무리 딴 생각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취기 같은, 그런 독한 기억이 있느냐고요?"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그건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지. 결혼은 좋은 사람하고 하는 거야."

"있잖아, 쏘아 버린 화살하고 불러 버린 노래하고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린 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짜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동시에 한없이 무겁고 울적하게 해버린 글. 고작 스무 살의 어린 나이인 내가 최홍의 심정을 어찌 완벽히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런데도 내 마음이 아파오고 눈물이 났던건, 스물아홉의 그녀 역시 지금의 나처럼 혼란스럽고 위태롭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고 집착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또 뒤돌아서 후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는지도.

"한국 여자와 일본 남자의 사랑 이야기." 그들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스물두 살의 베니는 화를 냈을까. 그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봐줄 수는 없냐며 토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스물아홉 살의 최홍은 알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차이의 장벽은 은근슬쩍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큰 것이라는 걸. 벽을 보고도 보지 못한 체 하는 것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할 때 그들의 사랑은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데에는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베니가 되고 최홍이 되어 그녀의 아픔을 몸소 경험한 것만 같았다. 십오 년 동안 자신만을 바라보고 기다려준 민준을 결코 사랑할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 조국과 가족과 친구를 버릴 수 있을 만큼 온 마음을 다해 준고를 사랑했던 그녀. 그녀가 경험한 이 모든 것들을 나도 경험할 수 있을까? 그녀처럼 미친듯이 사랑도 해보고 쓰라린 상처도 받게될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펼쳐볼 것이다. 지금의 내가 베니와 같다면, 그때의 나는 최홍과 닮아있을 것 같다.

결국 그녀의 "사랑 후에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픔, 슬픔, 고독, 후회, 분노, 절망, 그리고 가슴 한 켠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의 감정같은 것? 글쎄, "사랑 후"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를 처음 본 그때부터 매순간 그를 사랑해왔다. 그를 원망하고 그와의 모든 추억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진정 사랑이었다면, "사랑 후" 같은 건 아예 없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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