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은 서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비껴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우리 삶은 둘 다 모두 유린의 역사라는 점에서, 우리는 피를 나눈 형제나 결혼한 부부와 같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루치에가 육체적인 사랑을 유린당하고 그녀의 존재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가치를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인생 또한 원래 의지하고자 했던 가치들을 빼앗겨 버렸다. 그것은 그 기원으로 돌아가서 보자면 아무 죄도 없는 결백한 것들이었다. 그렇다. 결백한 가치들이었다. - P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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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 P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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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노동 운동이, 모욕당한 이들과 정의를 갈구하는이들이 들고일어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회는그들과 더불어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지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데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교회는 압제자들과 연합하여 노동자 운동에서 하느님을 들어내 버렸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그 운동에게 하느님이 없다고 비난을 하려드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바리새인 같은 위선인가! 사회주의운동이 무신론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거기에서 우리에대한 신의 비난을 본다! 가난한 이들과 시련을 겪는 이들에게 우리가 마음을 베풀지 않는 데 대한 비난을.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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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거리 이름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학창 시절 내가 왜 그토록 독일어를 하지 않으려 했는지 상기시켜 주는 단어인 ‘Vergangenheitsbewaltigung (과거사 극복)’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단어에는 ‘과거’라는 의미와 ‘인정하고 극복하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결합되어 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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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다시 돌아올 수 없이. 우리 삶의 모든 중대한 순간들은단 한 번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을 전혀 모르는 척해서도 안 된다. 현대인은 속임수를 쓴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중대한 순간들을 모두 교묘히 피해 가려하고, 그렇게 해서 아무 것도 지불하지 않은 채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죽음까지 가려 한다. - P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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