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종’의 지침이 없었다 하더라도 당당한 시위였다. 안성교는 상고 취지서에서 시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가급적 관사에 접근하지 않고 단천 읍내 시가지에서 천도교인과 보통사람 모두 600여 명이 맨손 맨주먹으로 길거리에 똑바로 서서 ‘조선민국朝鮮民國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단천분대에서 분대장 이하 헌병이 불쑥 나와 보병총을 난사하며 해산을 명했다. 안성교와 함께 주모자로서 ‘맨손 맨주먹으로 똑바로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을 최덕복에게 ‘십여 년 전’ 일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에게 ‘독립’은 자신과 동료를 죽이거나 죽이려 했던 사람들과 함께 나라를 만든다는 결심이었을지 모른다. ‘만세’는 그것이 일본의 지배하에서 노예처럼 사는 삶보다 낫다는 외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