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냉정한 시선으로 술 마시는 아버지를 분석하는 사이, 아버지는 신문 한면쯤을 읽고 어렵사리 엉덩이를 일으켜 친하지 않은 노동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니까 술은 고된 노동을 연장할 수 있는 일종의 진통제였다. 하루 세병씩 꼬박꼬박 소주를 마셨지만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은커녕 술꾼도 아니었다. 진득이 앉아 술이 제 영혼을 삼키도록 허용하는, 그러니까 작은아버지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알코올중독이라 할 만하다. 아버지는 3초 영감, 진통제 삼키듯 술을 털어넣었을 뿐이다. - P59

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 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고, 아직도 휴전 중인 데다 남북의 이데올로기가 다르니 의견의 합치를 보기는 진작에 글러먹은 일, 게다가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주제도 아니다. - P65

다만 당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 당했다. 아버지는 선택이라도 했지,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겠다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군들 빨갱이의 딸을 선택하겠는가. 선택할 수만 있었다면 나는 당연히 이부진이나 김태희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빨갱이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황사장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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