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트렌드 모니터 - 대중을 읽고 기획하는 힘
최인수 외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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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이 어린 팀원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일 편하게 하려면 승진해야죠."


승진하면 편하게 일한다... 솔직히 그 말을 듣는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자기가 파트 리더나 팀장 해 봤어? 내가 대표한테 치이고 자기들 업무 지시 조율하고 결과물 감독하면서 팀 꾸리는 게 얼마나 속이 타는 일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참고로 이 꼰대스러운 생각을 한 나는 왕초보 중간관리자다. 마냥 사수 밑에 있을 사원일 줄 알았고, 잘 올라가봐야 주임이나 대리 깜냥밖에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덜컥 팀장이 되어버렸다. 뭐 아직 사원 말년차~대리급으로 실무 하고 있을 나이라 나중에 혹시라도 직장을 옮기면 팀원 1로 돌아갈 확률이 높지만.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 걸어다니는 트렌드 세터,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상징인 신입사원이 아니라(내가 사원 시절 그랬다기보다는 그냥 신입 상징이 그렇단 소리) 신입 직원과 세대차이를 느끼고, '꼰대' 소리 듣는 게 더 익숙한 중간관리직이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 세대를 n세대라 호칭하는 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이제 어린 세대를 이해하려 따로 z세대라 규정하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고, 그들의 문화를 알기 위해 함께 섞이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으로 자료를 찾아봐야 할 판이 된 거다.



물론 이렇게 된 시간 흐름이 한탄스럽거나 하지는 않다. 한 집단의 문화를 조사하며, 그곳에 머물면서도 구성원으로 100% 녹아들 수 없는 상황에서 보이는 것도 있으니. 그런데 뭔가 관찰하려 해도 내가 직접 발로 뛰어 갈 수 없는 곳이 더 많고, 체험한 곳에서 사람들 일일이 붙잡고 인터뷰 진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때 이렇게 트렌드 키워드를 분석하는 회사에서 발간한 자료를 쭉 보고, 거기에서 내가 필요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게 얼마나 재밌게요?😁



여기서, 인사이트라는 단어를 내가 참 좋아한다. 직역하면 통찰력인데, 영어로 써보면 in+sight. 내면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통찰력은 자신이 파고드는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쌓인다.



전문가가 될 수록, 즉 위로 올라갈 수록 선천적인 감각보다 후천적인 공부와 노력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그리고 우리 마케터들에게 가장 기본기가 되는 연구과제는 당해년도, 그리고 이듬해 트렌드에 대해 미리 알아두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것도 그렇고, '내년도 트렌드'란 것은 하나하나 뜯어보면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쭉 모아놓고 전년도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뭔가 다른 점이 보이며, 이 점을 최대한 물고 늘어져서 인사이트를 뽑아내야 한다. 



이 점을 생각할 때, 팀원 감독이나 하면서(그렇다고 실무에서 완전히 빠지지도 못했다고! 아 억울해ㅠㅠ) 편하게 일하는 중간 관리자는 사실 일 편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중간관리직은 어쩌면 실무 최전선에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실무자들의 결과물을 가지고 뭘 진행하려면 결국 관리자가 흐름을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시장에 맞는 우리 콘텐츠를 내놓을 능력은 계속 갈고 닦아야 하니 말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내 나이가 걸렸기 때문이다. '꼰대'가 된 나를 받아들였지만,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실무를 하고 있어야 할 때니까. 그래도 그냥 이 책을 한 번 읽는 것으로 불안감은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맞는 역할이 관리직이든 실무자든, 자기만의 시간으로 살아가면서도 세상의 흐름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모든 기획자와 마케터의 역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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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매년 말 이듬해 트렌드에 대한 연구서적은 꾸준히 나온다. 개인적으로도 몇 년 전, 다른 직종에서 종사할 때 마이크로 엠브로밀에서 진행하는 조사에 몇 번 참여해본 적이 있었다. 당시 주제 선정, 인터뷰어의 질문이나 집단조사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떠올려 볼 때, 그곳에서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낸 트렌드 분석 도서라면 읽어볼만 할 것 같았다. 실제로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사 배경, 근거 데이터가 탄탄하고 설명도 풍부하다.



이 책을 토대로 생각해볼 때, 내년 기획의 핵심은 '외로움'을 보는 색다른 시각이 아닐까. 모두에게 CS 마인드가 요구되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살롱 문화를 찾아가는 소비자들, 그들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은 '외로움'이다. 그러나 2019년-2020년을 덮고 있는 외로움이라는 감성은 남이 쉽게 이해할 수 없고, 굳이 이해를 받기 원하지 않는 개인적인 것이라는 점 역시도 문화와 마케팅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또, 몇 년 동안 노력 과잉 사회에서 지쳐버린 이들이 세상에 제기하는 의문인 "공정한 사회". 물론 사회에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공정함은 등장한다. 이 공정함 역시도 지금 사람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엮어 생각해볼 수 있을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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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라면 2019년도 12월, 지금쯤 책장에 이 책 한 권 꽂아두고 있어야하지 않나 싶다.



우리 회사의 타겟은 Z세대는 아니지만(물론 항목마다 주제에 대한 성별/연령대별 시차를 확인할 수 있다.), 몇 번 더 정독하고 그 흐름만은 숙지해둬야겠다. 이 책에서 기점으로 삼은 젊은 세대가 느끼는 그 감정은 알게 모르게 위로 스며들어 올라와서, 이미 꼰대가 되어버린 윗세대들 역시도 어느덧 아무렇지 않게 Z세대의 그것을 공유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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