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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에서 부르는 노래 - 2023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박숲 지음 / 청어 / 2023년 5월
평점 :
연애에는 공식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선은 여자가 남자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야만 연애가 시작된다. (희귀하지만 그 반대도 가능하다) 넌 치마를 입으면 예뻐. 난 머리 긴 여자가 좋아. 남자는 은연중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여자는 또한 은연중에 남자의 취향을 따라간다. 사건은 그렇게 시작된다. 아니, 그렇게 할 때 사건이 만들어진다. 나의 기준을 버리고 남자를 따라 가는 게 싫어 그의 프레임을 거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짝사랑으로 끝나고 만다. 평생 짝사랑만 하는 사람들의 고질병은 남의 기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그가 나를 어떤 기준으로 보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해 지지부진한 관계를 이어간다. 그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려면 상대가 어떤 프레임으로 나를 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그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 잠시 행복을 누리지만 곧 시들해지는 위기가 찾아올 수도 있다. 남자의 요구는 점점 다양해지고 때로는 거칠어진다. 여자를 통제하려고 한다. 여자는 숨이 막힌다. 도저히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판단되면 그녀는 그의 프레임을 뛰쳐나온다. 연애는 깨질까?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남자가 여자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이 쳐놓은 프레임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여자를 따라 간다면 연애는 계속될 것이다. 깊어질 것이다.
부모 자식 사이는 어떨까. 부모도 자식에게 프레임을 씌운다. 너 하고 싶은대로 해. 네가 알아서 선택해, 라고 말하지만 대체로 거짓말이다. 특히 아버지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프레임으로 자식의 인생을 좌우하려고 하면 자식은 숨이 막히는 고통에 시달린다. 자신의 삶을 살기 어렵게 된다.
자식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만 '나'의 인생을 찾고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방법은 연애의 공식과 비슷하다. 어느 정도 성장했다면 아버지의 프레임에서 뛰쳐나와야 한다. 거기가 그의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우빈의 아버지는 지독하게 폭력적이다. 짓밟고 두들겨패는 일이 거의 일상이었다. 우빈은 자신의 적성과 특기에 따라 인생을 사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렵다. 얼마나 지독한지 아버지는 심지어 자식에게 살인자라는 프레임까지 비밀스럽게 걸어놓고 그것을 무기로 자식을 지배하고 자기 입맛대로 관리한다. 더 이상 숨쉬기가 어려워졌을 때 우빈의 발버둥이 시작되고 마침내 집을 뛰쳐나온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을 죽여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집착하는 아들의 목숨, 그것을 가장 비참한 형태로 훼손해 죽여버리는 것. 그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집을 나와 어느 허름한 여관에 머물지만 기타 소리가 그의 자살을 방해한다. 게다가 너무 엉터리로 쳐서 그런 소리 속에 뭍혀 인생을 끝낸다는 것은 너무 비참하고 모욕적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우빈은 안 되겠다 싶어 여관을 나가 기타소리를 찾아나선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지점에 계속 마음이 갔다. 죽음을 결심한다는 것은 상속을 거절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동안 아버지가 이룬 성취, 자식에게 무기처럼 휘두르는 그것을 거절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가 서야 가능한 일이다. 집을 나오는 순간 그와 같은 용기는 기적이 되어 다른 세상을 열어젖힌다.
감옥에서 출소하고 나면 주머니에는 돈 한 푼 없지만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 우빈이 맞이한 타자들은 다행히 아버지와는 다른 보통사람들. 그들은 우빈에게 어깨를 내어줄 것인가. 스스로의 삶을 파괴하기로 결심한 우빈은 루시퍼를 연주하는 주체가 되어 원하는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줄거리가 탄탄하고 꽤 재미있는 소설이다. 상처 받은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이웃과 연대해야 하며 타자로서의 그들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아버지라는 늪에서 빠져나온 우빈에게 이웃이라는 새로운 신이 등장해 손을 내밀고 어깨동무하고 음악의 길을 열어나가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나 역시 그의 미래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