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려라, 소년 물장수 ㅣ 탐 청소년 문학 33
박윤우 지음 / 탐 / 2023년 6월
평점 :
전체적으로 매우 품격 있는 글체였습니다. 가려야 할 것과 드러내야 할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적절하게 안배되면서 파격적인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있게 잘 읽히는 글이었습니다. 한창 배워야 할 어린아이들이 노동 현장으로 내몰리고 월급도 못 받는다는 설정은 그것이 아무리 일제강점기라고 하더라도 가슴을 메이게 하는 데가 있습니다.
<달려라, 소년 물장수>의 가장 큰 미덕은 리얼리티에 천착한 서술자의 태도일 것입니다. 어디 한 군데 과장을 하거나 인위적인 거품을 통해 포장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오직 충실하게 당시의 삶을 복원하고 재현해내는 데만 집중합니다. 일제강점기만 하더라도 기존의 주류역사가 배제해온 것, 누락시켜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버렸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민족적 현실을 거론하며 독립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에 매진하자는 주장만이 당시 유효한 투쟁 구호였습니다. 논쟁도 주로 여기서 발생했습니다. 열 몇 살에 불과한 아이들의 월급 몇 푼 정도야 끼어들 자리도 없었고 존중 받기도 어려웠지요. 나라가 독립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생각도 강했습니다.
소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문제가 소설의 단독주제가 되기에는 주제의식상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하찮다는 취급을 받지 않았을까요. 비슷한 맥락으로 독제타도를 외치던 서슬 퍼런 1980년대를 기억합니다. 당시 아주 사소한 학내 문제 같은 것은 그것이 당장의 교내 생활에 있어 아주 곤란한 문제였어도 집회장소로 가져가기에는 누구나 꺼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져가더라도 개량주의, 수정주의라는 욕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오직 독제타도만이 올바른 구호라고 판단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일제강점기 밀린 월급 문제는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가 아닙니다. 당장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월급이 밀리더라도 굶어죽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랬는데도 우리는 왜 그렇게 커다란 구호만을 내걸고 싸웠을까요? 당시의 신간회가 이러한 사업에 주력했음을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래서겠지만 신간회는 주류역사에서 그저 곁가지로 취급당해 온 게 사실입니다. 이 소설 <달려라, 소년 물장수>는 신간회라는 애국 단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바가 있습니다.
혁명세력을 단결시키자면 민족의 주요모순 아래 세세한 것들을 집결시킬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얼마든지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하위구호를 하위구호 자체로 찢어 놓기만 하고 하나로 모으고 통합하지 않았다면 3.1운동 같은 것은 가능하지 않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2000년 이후의 버전입니다. 주류역사에서 삭제 당하고 배제되어온 민초들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알차게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역사를 이렇듯 끝없이 다시쓰기 해야 할까요?
하나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1930년대로 돌아가 그 시절을 다시 살아 내거나 그 시절을 다시 바꿀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버전으로 그 역사를 다시 쓴다는 것은 지금의 삶을 바꾸자는 것이고 바뀐 시각으로 그 시대를 다시 보면서 의미를 전도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놓쳤던 부분을 복원해야 가능해집니다. 그래야 온전한 역사, 살아 있는 진정한 역사입니다. <달려라, 소년 물장수>는 우리들이 놓쳤던 것에 다시 초점을 맞춤으로써 굳어버린 우리 역사의 근육을 말랑말랑하게 되살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