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우산 글라이더 청소년 문학 5
김민혜 지음 / 글라이더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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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로 인해 마음에 께름칙함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가장 흔한 방법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전후관계가 어떻게 된 일이고 누구의 잘못이 큰지를 디테일하게 따져보기보다 눈을 감아버린다. 그게 가장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셀프 기억상실은 여기서 나왔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겪는, 일종의 병이지만 아무도 병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상대방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도 안 생긴다. 잊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여져진다. 


그렇다고 이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은 그 사건을 잊을 수 있지만 무의식은 아니다. 그곳은 우리 마음 지하 깊은 층에 위치하는데 그 안에 언제까지나 저장된 채 사라지지 않는다.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고 노인이 되어도 그대로 보존된다. 심지어는 할머니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고 치매에 걸려 모든 세상사를 잊었을 때 마음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곳으로 직행하는 일도 생긴다. 치매 노인들의 이상한 퇴행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치매노인까지 갈 것도 없다. 지하 깊은 층에 있는 불쾌감은 이렇게 가두어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듯 간간이 발버둥을 친다. 생각지도 않은 순간 격한 감정을 드러내게 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심사를 꼬이게 한다. 더구나 난생처음 사귀어본 남자친구와의 일이라면 어떨까. 그 기억이 더 오래 갈 것 같지 않나. 그렇다면 왤까. 나쁜 기억, 불쾌감은 왜 사라지지 않고 이렇듯 저장되어버리는 것일까. 


아마도 출구가 막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하 깊은 층에 저장된 가스 같은 나쁜 기억이 사라질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이 일단 지상, 즉 의식으로 떠올라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사라지든지 말든지 할 가능성에 놓인다. 물위, 혹은 지상이 출구이다. 그곳만이 나쁜 기억을 없애줄 바깥이다.  


여기 나쁜 기억을 가진 한 소녀가 있다. 이름은 지나. 


이 여자애 역시 그 동안 그 기억을 덮어둔 채 살았다. 애써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기억을 함께 만든 윤지완, 그 남자애가 아이돌 가수가 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존재로 나타난다. 아이쿠!


길가다가도 (음악소리를 듣고) 윤지완을 떠올리게 되고 라디오나 티브이, 유튜브를 보다가도 윤지완과 맞닥뜨린다. 뉴스를 볼수도 없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편해졌다. 세상이 온통 윤지완 천지여서 도망갈 데가 없다.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가 없다.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은 대체로 딱 이지점에서도 버틴다. 자기만의 독방에 혼자 숨어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한다. 


다행히 이 소설의 주인공 지나는 다른 선택을 한다. 생각해보니 미심쩍은 것을 물어보고 사과하고 화를 냈으면 될 일을 그렇게 하지 않아 오해가 생긴 거였다. 그때 용기를 냈으면 되는데 왜 그걸 여태 방치해 괴로움을 자처하고 말았는지. 지나는 나쁘게 저장된 기억을 수정하기 위해 윤지완을 만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상대는 유명한 아이돌인데 무슨 수로? 더 다행스러운 건 이 소녀, 여기서도 굴하지 않는다.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이런 생각이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고 계산을 하지 않는다. 윤지완과의 사연이 얽힌 우산 하나 달랑 들고 윤지완의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행에 나선다. 서울에 가서 윤지완을 진짜 만나는지, 오해는 푸는지, 그것은 그대가 소설을 읽고 알아내야 할 일이다. 


나는 지나를 응원하기로 했다.  


지나, 힘내라! 읏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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