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철학
G. 레이코프 외 지음, 임지룡 외 옮김 / 박이정 / 2002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마음과 정신을 신체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서구사상의 한계를 지적한다. 서구의 사상만이 아니라 종교 역시 그와 같이 보는 바가 있는 것 같다. 불교에서는 해탈에 이른 성인을 아라한이라고 일컫는데 모든 생사고락의 현세적인 것들 너머의 초월적인 그 무엇을 상정한다. 거기에 도달하려면 몸과 몸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기에 수행하고 또 수행한다.

반면 <몸의 철학>은 마음은 본유적으로 신체화 되어 있다고 파악한다. 마음은 몸이고 생각은 신체의 기능이며 신체가 작동한 결과이다. 그 생각을 우리는 은유화 된 언어를 통해 해낸다. 언어가 없이 생각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인 것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 역시 아무리 의도적인 것을 상정하더라도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옆에서 아무리 뭐라고 토를 달아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로 염두에 둔 것 같은 경향을 보인다. 이를테면 인생에 대한 설계, 기획 역시 무의식적인 선택의 결과일 수가 있다. 이성과 합리 역시 무의식적이라는 것이며 이는 별개로 존재하는(초월적인) 정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몸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성과 합리는 원래 냉정한 것이 아니며 감정적인 활동의 결과물이다.

이 대목은 확실히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순수하게 객관적이거나 초월적인 이성에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통로가 없다.

 

종교는 있다고 본다. 기독교가 죽고 불교가 무력해지더라도 인간이성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미래사회의 새로운 종교로 등극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의 마음이나 추상적인 개념들을 저 위 초월적인 어딘가와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패턴인 은유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시간도 마음도 자아도 도덕성도 그러한 사고 패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인지적 무의식의 작용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 사고의 대부분에 직접 의식적으로 접근하지 못한다.

 

<코르푸스>라는 책에는 몸에 관한 한 나는 나에 관해 영원히 모를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지각하는 것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되 나는 그것을 인식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으로 다초점 렌즈를 사용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참고가 된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렌즈를 통해 지각으로 전달되는 그 순간의 충격을.

 

내가 나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데 타인에 관해서야 더 말할 것이 없겠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끝없이 남의 말과 행동에 관해 비평하고 분노하고 단정 짓는다. 이 책을 잘 읽으면 자신의 잘못된 이러한 습관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제동이 잘 안 걸리더라도 실망할 일은 아니다. 최소한 다시 생각해 보려고 할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더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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