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87p) 읽은 책을 다시 읽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다시 보지 않겠다는 생각이 강하기도 하고, 새로 산 책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드물게도 읽은 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우주알'이 들어온 것처럼 어떻게 끝나는지 알고 있는 상태로, 시간 순서를 맞추려 노력하지 않으면서 읽어보고 싶었다. 이야기의 뼈대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다. 학우를 살해한 남자는 자신의 범죄가 학교 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로 받아들여져 구 년을 살고 나온다. 교도소에서 나온 남자는 학교에서 사랑에 빠졌던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녀가 일하는 출판사에 둘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보내게 되고 그 계기로 둘은 만나고 연애를 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연애는 남자가 살해한 학우의 어머니가 그 남자를 살해하면서 끝나게 된다. 끝만 놓고 보면 이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결국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고, 피 냄새만 자욱하지 않은가. 그런데 '우주알'이 들어온 주인공은 이 일을 반복적으로 겪는 중이다. 그는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죽음이 나쁜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결국 비극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내일 죽는다고 해도 지금처럼 살 수 있겠는가?" 수 많은 자기 계발서는 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 인생은 바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죽는다는 사실을 정말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우주알'은 두 사람에게만 들어간다. 학우를 죽인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죽인 학우의 어머니. 우주알의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살해를 한 사람에게만 들어가는 우주알은 어쩌면 생생한 죽음의 감각이 아닐까. 죽음의 감각을 받아들인 남자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생의 자리를 찾는다. 자신의 아들의 죽음 속에 매몰되어 있던 어머니도 역설적으로 자신의 남편과 함께 살아갈 자리를 고민할 수 있게 된다. 끝은 중요하다. 끝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끝이 있음을 알고도 하는 선택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포구 현석동의 이름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고 한다. 고려시대 뱃사공이었던 손돌은 강화도로 피난 가려는 왕을 태우고 가다가 의심을 사서 죽임을 당한다. '이 전설에는 다소 이상한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었는데, 손돌은 오백 년 뒤에 다시 뱃사공으로 이 동네에 환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청나라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도망가는 인조를 배에 태웠다가 오백 년 전과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것이다'.
1,2 강 두명 신청합니다 ^^ 인문학 스터디 올해도 파이팅입니다
1,2,3강 모두 2명 신청합니다. 최태섭님의 책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강연도 기대됩니다
1,2강 2명 신청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