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비 소녀 - 권오순 시인의 「구슬비」이야기 즐거운 동화 여행 129
전병호 지음, 공공이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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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권오순 시인의 구슬비 이야기


구슬비 소녀


글 : 전병호 / 그림 : 공공이

출판사 : 가문비어린이


- 즐거운 동화 여행 129

- 소년한국우수어린이도서 




오순은 다정한 부모님과 언니 둘, 여동생 둘이 있다.

오순은 아기였을 때 소아마비로 인해 평생 다리를 절어야 했다.

오순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

일본말과 일본글을 가르치는 학교에는 가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생각이 성숙했던 오순은

다리를 저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지만,

대신 공부를 더 많이 하기로 마음 먹었다.

오순은 한글을 읽고 외우고 썼다.


하루는 아버지가 읍내에서 책을 한 권 사 갖고 왔다.

방정환 선생님이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면 

내일의 희망인 어린이들에게 독립의 꿈을 심어 주어야 한다 생각하고

만든 잡이 '어린이'였다.

그때부터 오순은 어린이의 애독자가 되었고,

한 푼 두 푼 바느질해서 모은 돈으로 한글 대사전을 사서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아름답게 갈고 다듬어 쓰는 것,

오순은 이것이 불구의 몸을 가진 자기가 할 수 있는 

항일 운동이며 독립 운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순은 자신의 마음을 시로 쓰는 것을 즐겨했다.

서울로 시집 간 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로 썼고,

동생들과 즐겁게 들로 소풍 갔던 일을 시로 썼고,

뜰에 핀 꽃을 보고 시를 썼고,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시를 썼다.

오순의 시가 어린이에 실리자 더 열심히 시를 썼다.

하지만 일본 순사의 방해로 잡지사인 개벽사는 문을 닫고

어린이도 폐간되었다.

어린이를 담당하던 이 선생님이란 분이 매일신문사로 자리를 옮겨

오순의 시를 신문에 실어주었다.


1937년 오순이 구슬비를 써서 아동문예에 보냈을 때,

일제의 탄압으로 잡지사가 문을 닫았다.

이 선생님은 구슬비 원고를 갖고 만주 용정으로 갔다.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이 동시를 많이 발표한

가톡릭 소년을 찾아가서 구슬비를 꼭 실어 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




이 선생님은 오순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갈고 다듬어

시를 쓰는 것이 곧 항일운동이며 독립운동이라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구슬비가 잡지에 발표되게끔 힘 쓴 것이다.

오순의 간절한 뜻이 하늘에 닿았는지 해방 후에 작곡가 안 병원 선생이

구슬비를 읽고 작곡해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이 되었다, 대한독립만세!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북쪽에서 소련군이 밀고 내려왔다.

오순은 구슬비가 노래가 되어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어머니와 고향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남한에서도 오순의 삶은 힘들었다.

북한 공산군이 남한으로 쳐들어왔다.

오순은 저는 다리로 먼 길을 걸을 수 없어

피난도 가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언제 폭탄이 날아와 곁에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순은 두 번이나 공산군이 점령했던 서울에서 살아남았다.

폭탄 맞아 지붕이 날아간 방에서도, 공산군에게 끌려갈 뻔 했다가도 살아남았다.

오순은 어머니와 고향이 그리워 자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전쟁고아를 돌보며 살았다.

그리고 계속 시를 썼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을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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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구슬비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나 또한 임신했을 때 태교로 많이 불렀고,
우리 딸도 흥겹게 부르고는 한다.
둘이 같이 부를 때 정말 신 난다.
음을 빼고도 노래하듯 리듬감이 살아있는 가사가 재미있고
표현도 무척 예쁘다.
행복감이 잔뜩 느껴지는 이 구슬비의 지은이를 몰랐다, 여태….

그리고 이토록 큰 아픔과 슬픔을 가진 삶을 살았을 거라고는 더욱 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글을 보석처럼 갈고 다듬어 시 쓰는 일에 평생을 바친 권오순 시인,

시인의 굳은 마음과 행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

불편한 다리를 가지고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다.

이러저러 이유로 쉽게 우울해 하는 내 자신을 반성한다.

우리 나라가 건실하게 존재하고 우리의 말로 자유롭게 대화하고

우리가 주인인 이 땅에서 실컷 웃으며 하루를 보낸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고 있다.

이런 오늘은 선사해주신 권오순 시인께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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